자하 신위, 서민들의 시정을 노래하다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0-12-16     백승종 객원기자

자하 신위는 시서화에 이름이 높았다. 그가 지은 시 가운데는 악부(樂府, 역사와 풍속 등을 한시로 기록한 작품)도 있었다. 귤산 이유원의 《임하필기》(제28권)에도 그 작품들이 수록었다.

신위의 악부는 서민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기록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고답적인 성리학 전성시대의 문장미학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한문학이 서민대중을 당당한 독자로 대접하는 근대문학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역사적 이정표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함께 읽을 세 개의 곡조이다. 하나 같이 무명씨의 시조를 한시로 번역한 것이다.

먼저 죽미곡(竹謎曲)에 나오는 노래 한 곡조를 꺼내보면 이러했다.

백가지 꽃을 다 심어도 좋으나 人間百卉皆堪種

대나무 만은 심지 않으리라 惟竹生憎種不宜

화살대는 가고 오지 않으며 대금은 원망스럽기만 하다 箭往不來長笛怨

가장 나쁜 것이 그림 그리는 붓대라, 그리움만 적을 뿐이니 最難畫出筆相思

상사의 괴로움을 이보다 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항간에 널리 알려진 시조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리라 짐작된다. 신위처럼 고명한 문장가들도 서민문학을 진지하게 수용하였으니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었나 싶다.

유명한 벽계수곡(碧溪水曲)도 나온다. 개성의 이름난 기생 황진이가 지었다고 하는 시조인데, 아래와 같았다.

청산리 벽계수야 靑山影裏碧溪水

쉬(빨리) 감을 자랑 말라 容易東去爾莫誇

일도창해(한번 푸른 바다에 도착함)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一到滄江難再見

명월(황진이)이 만공산(빈산에 가득함)할 때 쉬어간들 어떠리 且留明月映婆娑

벽계수는 왕실의 종친으로 한때 황진이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전한다. 황진이가 그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려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 사실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끝으로, 금로향곡(金爐香曲)에 나오는 노래인데 앞에서 읽은 곡조와는 차원이 다른 사연이다. 

금로(금향로)에 향진(향이 다탐)하고 누성(물시계 소리)이 그치도록 金爐香盡漏聲殘

어디 가서 누구에게 사랑 바치다가 誰與橫陳罄夜歡

월영(달 그림자)이 상 난간(난간 위에 올랐을)쯤에야 月上䦨干斜影後

맥(脈) 짚으러 왔는가 打探人意驀來看

난봉꾼 남편 때문에 속앓이 하는 아내의 심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시이다. 아내는 향불 피워놓고 그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건마는 그는 바람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달 그림자도 찾기 어려운 새벽이 다 되어서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제아무리 미워도 밉다고 야멸차게 밀어낼 수만은 없는 아내의 마음을 토로한 시가 아닌가.

이제 이렇게 마음을 꾹꾹 누르며살던 세월의 강은 저 멀리 흘러가 버렸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대서 사랑과 이별의 몽환과 통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살을 애는 아픔과 그리움은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곁에 남아 있다.

세월이 암만 흘러도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를 그만둘 수 없을 테니까. 하면 조선 시대의 사랑 노래는 지금도 얼마간 유효한 것이다.

※출처 : 백승종,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김영사, 2020)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