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출신은 싹부터 자르라고?, 드라마 ‘허쉬’의 불편함

드라마 비평

2020-12-13     김미선 시민기자
JTBC 드라마 '허쉬'(화면 캡쳐)

한 동안 드라마를 보지 않다가 지난 주말 우연히 드라마에 빠졌다. 제목이 ‘허쉬’라는 점에서 우선 시선을 끌었다.

드라마 시작부터 탐욕과 갈등이 득실대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언론사 내부, 그것도 서울 한복판 높은 빌딩에 자리한 일간지 편집국 내부의 모습이 조명됐다.

신문사 중간 간부들과 취재 기자들 주변 인물들을 묘사한 내용이다. 한때 언론사 취업 준비를 하며 실습(지금은 인턴과정과 같은 단계)을 했던 과거 추억을 호출해 준 드라마는 첫 회부터 주목을 끌었다.

JTBC 화면 캡쳐

우선 ‘허쉬’의 뜻부터 궁금증을 모았다. '침묵‘, ’고요'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드라마 평론가들도 있지만 앞으로 풀어나갈 내용이 점점 기대되는 제목이다.

11일 첫 방송된 드라마는 펜대보다 큐대 잡는 날이 많아 '고인물 기자'로 통하는 한준혁(황정민 분)과 ‘밥은 펜보다 강하다’는 ‘생존형 인턴기자' 이지수(임윤아 분) 두 주인공의 주목도가 높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주었다.

평범한 밥벌이 라이프 그려내겠다는 '허쉬', 그러나... 

앞선 지난 10일 드라마 발표회에서 최규식 감독은 “드라마의 제목 '허쉬'가 "진실에 대한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반어법적인 뜻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독은 "기존 기자 드라마가 사건들을 주로 다뤘다면, '허쉬'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면서 “사건들도 나오지만, 사건들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평범한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고 가족들과 동료들 간의 정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 감독은 '허쉬' 소제목이 음식 제목으로 돼 있는 것에 대해 "기자들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매회의 주제가 음식과도 연관이 있다. 일부러 작가님이 그렇게 정하신 걸로 알고 있다”며 “어떤 연관점이 있는지 찾는 것도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JTBC 화면 캡쳐

특히 '허쉬'는 8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하는 황정민과 '공조'와 '엑시트'로 흥행 보증수표가 된 임윤아가 호흡을 맞춘다고 알려지며 방송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드라마 평론가들 사이에선 '허쉬'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는 평을 할 정도다. 

인턴기자 역으로 출발한 임윤아와 사회부에서 디지털부로 물먹은(밀려난) 기자역을 맡은 황정민이 이끌어 갈 것을 은근히 암시해 준다. 

첫 회부터 신문사 내부 위계와 먹이 사슬 구조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낸 드라마는 2회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샷으로 언론사 내·외부 문제점들을 클로즈업시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지방대출신이니까 싹을 잘라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JTBC 화면 캡쳐

그러나 서울 언론사들이 암묵적으로 행해 왔거나 행하고 있는 지방대 출신 홀대와 서울의 특정대 출신 우대, 전형적인 간부들의 '권력 바라기' 구조, 뉴스 어뷰징(News Abusing) 만연 등을 현실처럼 재현해 공분을 자극시켰다. 

드라마 2회에선 특히 배우 경수진이 취업 장벽에 꺾인 인턴기자 역을 열연해 주목을 받았으나 너무 일찍 하차하게 돼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경수진은 12일 방송된 2회에서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매일한국 인턴기자 '오수연' 역을 맡아 열연, 많은 메시지를 남기고 하차했다. 

서울의 일간지와 방송사, 통신사 등 주요 언론사들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로 작용해 왔던 지방대 출신 하대와 극단적 선택을 생생하게 재현한 모습은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시작단계부터 불편한 진실을 여과 없이 노출시킴으로써 비판과 비난을 살만하다. 

이날 2회째 드라마에서 지방대 출신의 인턴기자 오수연은 '노 게인, 노 페인(No gain, no pain)'이란 제목의 유서를 인터넷 언론 등에 배포하고 인턴기자를 마감하는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 

앞서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지방대 출신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으니 '오수연' 이름만 도려내라"는 편집국장 지시를 당사자가 우연히 들은 것이 화근이 됐지만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고 우수한 재능을 보유했더라도 지방대를 홀대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홀로 남아 인턴기자 생활 마지막 날, 당직 근무를 대신한 후 선배인 한준혁 기자에게 "선배, 그동안 감사했다. 죄송하다"라는 문자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오수연 기자역을 맡은 경수진은 극중 정규직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비참한 감정을 허탈한 눈빛과 애처로운 눈물 연기로 극대화해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인턴기자는 인격도 없는 유령인가?

JTBC 화면 캡쳐

특히 언론사 내부의 냉혹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기 직전, 김밥을 먹는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은박지를 벗기는 연기자의 손 떨림은 외롭고 힘들었던 여정을 마치려는 인턴기자의 외롭고 힘들고 괴로운 결심을 고스란히 전했다.

짓밟힌 자존감에도 불구하고 씩씩한 인물을 완벽하게 표현했지만 정규직 언론사 기자를 그토록 꿈꿔 왔으나 이룰 수 없었던 인턴기자가 남긴 "아무것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고통도 없을 것"라는 유서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오히려 버거운 비난과 빈축을 짊어지게 됐다. 그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단의 선택을 하게 한 점, 특히 블라인드 채용이 여전히 언론사에서는 있으나마나 하다는 점, 게다가 정규직이라는 벽을 넘기까지 반 인격적이고 비 저널리즘적인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치욕스런 인턴과정이 여전히 상존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둘째, 이 드라마는 언론사 내부의 부끄러운 현실과 민낯을 고발해 주었으나,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너무 일찍 극중 인물을 하차시켰다는 점, 게다가 인턴기자들은 정상적인 인격체로서 취급하지 않고 마치 유령취급하는 모습이 액면 그대로 투영돼 불편하게 했다.

특히 인턴기자 꼬리표를 떼자마자 반전의 기회조차 없이 드라마에서 하차시킨 대목은 현실 세계에 너무 당연히 동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셋째, 아무리 드라마라곤 하지만 시작부터 극단적 선택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확산되는 우울증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더욱 자극시키지는 않았는지,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따가운 지적을 받을 만하다. 

매스미디어 사회적 역기능 더 이상 초래하지 않기를  

무엇보다 '지방대 출신이니까 지역에서 취업해야 한다'는 비뚤어진 인식, ‘인턴과정의 지방대 출신은 싹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서울언론의 그릇된 사고를 그대로 투영시킨 장면과 인턴기자들은 제대로 인격대우를 하지 않고 정규직과 높은 차별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매스미디어의 사회적 역기능을 노출시켰다. 

드라마가 이러한 천박한 인식을 끝까지 유지하고 간다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더 많은 드라마로 기억되고 남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내부의 문제점과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하고 있는 언론과 권력의 유착 풍토를 개선시켜주는 데 기여하리란 일말의 기대를 가져본다. 

/김미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