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세한도(歲寒圖)가 다시 오기까지

이화구의 '생각 줍기'

2020-12-12     이화구 객원기자

엊그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박물관에 기증한 분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를 표했다는 기사를 보고 몇 해 전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읽은 세한도가 조선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생각나 몇 자 적어봅니다.

우리는 ‘추사 선생’하면 글씨를 잘 쓰는 명필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고증학, 금석학, 불학 등을 많이 공부한 천재학자라고 합니다

추사 선생은 10여년의 제주와 북청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 고된 삶의 과정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하고, 이로써 우리 문화사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보면 추사 선생을 200년 전 중국과 일본을 사로잡은 ‘한류의 원조’로 보며, “유럽에 다빈치가 있다면, 우리에겐 추사 김정희가 있다.”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추사 선생이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추사연구의 제1인자는 경성제대 교수를 지낸 일본인(후지쓰카 지카시)이었습니다. 그는 “청조학 연구의 제1인자는 추사 김정희” 라는 말을 남긴 바 있으며, 나중에 그가 죽고 그의 아들도 추사를 연구하다 아들이 죽기 전에 그동안 연구하고 수집한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모두 한국에 넘겨주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제가 2년 전 방문한 과천에 있는 추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추사 선생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은 ‘세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한도도 추사 연구의 1인자 일본인 교수가 휘문학원의 설립자인 민영익의 아들 민규식이 매물로 내놓자 직접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우리 조선인 한 분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교수에게 세한도를 구입하겠다고 하자 일본인 교수는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조선인 그분은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매일같이 찾아와서 사겠다고 하자 그 정성에 감동을 받아, 이 작품은 값으로 따질 수가 없어서 그냥 줄 테니 보존만 잘 해달라고 부탁을 하며 건네줍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걸작을 구해온 우리 조선인은 훗날 정치판에 뛰어들어 선거자금이 쪼들리자 사채업자에게 저당을 잡히고 맙니다. 그리고 돈을 갚지 못해 찾지도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값으로 따질 수 없어서 그냥 줄 테니 보존만 잘 해달라고 부탁을 하며 건네준 일본인 교수께서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를 상상하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정치판은 돈이 떨어지면 전당포에 물건을 맏기는 노름판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세한도는 미술품 소장가로 엊그제 청와대로 초청을 받은 분의 집안으로 들어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해간 일본 놈이나 프랑스 놈들을 욕만 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런 소중한 문화재가 조선에 남았어도 우리는 문화재 가치의 소중함도 제대로 몰랐을 것이며, 6.25전쟁 중에 상당 부분 파괴됐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 분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서양문화가 이땅에 들어오고 나서 우리는 조상님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의 상당 부분을 미신타파라는 미명하에 우리 스스로 폐기한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화구(금융인 37년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