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타 잃은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설립 취지와 달리 활용"

[기획 연재] 소 브루셀라 백신의 감춰진 진실(5)

2020-12-12     박주현 기자

“2005년 11월 마침내 대한민국 국회 도서관에서 인수공통전염병 긴급 릴레이 정책 공청회가 열렸다. ‘브루셀라, 안심해도 되나?’라는 주제로 열린 공청회에 농림부 측은 야유회가 있다는 핑계로 불참한 것을 빼고는 모두가 참석했다. 

참석한 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은 피해 축산농가를 진심을 다하여 위로했고, 우리도 외국처럼 인수공통전염병을 연구할 수 있는 전문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후 일부 국회의원들의 발 빠른 의정활동으로 연구소를 잉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기공식(2010년 3월 19일, 자료사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전북대에 유치되는 시작단계에 접어든 순간을 백병걸 초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장(당시 수의과대학 교수)은 퇴임 후 2014년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이에 덧붙여 “2006년 11월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브루셀라병으로 소 500여 두를 살처분한 전북지역 농가 매립지 위에서 절규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며 "이 또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전북에 유치하게 된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 후 브루셀라병으로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과 인수공통전염병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 설립이 필요하다는 건의사항을 수용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등의 도움으로 드디어 국고 361억 원의 예산이 전북대학교에 배정되어 2010년 3월 익산에 웅장한 초현대식 연구소 건설이 시작되었다”고 백 전 교수는 설명했다. 

2010년 3월 19일 익산시 월성동 익산캠퍼스 동물농장 터에서 당시 서거석 전북대 총장,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이한수 당시 익산시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기공식을 갖고 첫 삽을 떴다. 연구소는 5만 1,348㎡에 지하 1층, 지상 5층(총 넓이 1만 2,515㎡)의 규모로 건립됐다. 

"전 세계 유수 실험실·연구실 네트워크 기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잉태"

백병걸 전 교수(2000년 전북대 수의과대학 교수 재직시절 모습)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한 백 전 교수는 “‘세계적인 연구소 건설’이라는 엄청난 사실은 마치 태풍전야에 밀려오는 뇌성처럼 나의 뇌리를 뒤흔들었다”면서 “1986년 미국 농림성 내 브루셀라병 연구소를 방문했던 기억과 외국의 차폐시설 등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났고, 곧 국내의 파스테르 연구소, 서울대 백신연구소 등을 방문하였으며, 일본 북해도대학, 교토 의과대학 실험동물실, 영국 Veterinary Laboratory 본부,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과 조지아대학교 특수 차폐시설 등 외국 현장을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한 다음, 미국 버지니아택 차폐(BSL-3 Level) 시설과 운영을 위한 정보를 S. M. Boyle 박사의 도움으로 얻는데 성공했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다.

백 전 교수가 당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연구소 운영 규정 확정과 소 브루셀라병, 소 결핵, AI, 광우병 그리고 경제적 손실을 예방할 수 있는 연구분야 등으로 특성화한 연구소를 만드는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당장 축산농가를 도울 수 있는 연구 영역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그것은 소 브루셀라병 연구 영역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초대 연구소장으로서 백 전 교수는 “이를 잘 활용하면 연구소의 운영과 연구 활동을 확장하는데 필요한 예산 당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나의 신념이었다”면서 “동양 최대 연구소라 함은 약 280여 평의 고가 차폐시설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병원성 미생물이 어떤 사고에서도 인체 감염을 차단하는 공조 시스템과 폐수 배출 시스템 등의 안전시설을 갖춘 차폐시설은 국내에선 처음이었다”고 강조하는 그는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차폐시설 즉, 생명안전성(Biosafty level III)을 갖춘 대학의 연구소의 운영과 이익 창출을 위한 운영 방안을 찾는 것은 늘 고민거리였다"고 회고한다. 

“건물 등 외형만 갖추어졌을 뿐 정체성 모호, 많은 아쉬움”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전경

백 전 교수는 그러나 “연구소 건물은 완공되었지만, 정부 지원예산이 없어 장비도 제대로 구입 못했고, 인원도 없어 연구소가 ‘개점휴업’이라는 지역 언론보도가 이따금씩 있었기에 퇴임 후에 연구소 내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았는데 연구소 유치 당시의 개념과는 다른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음을 곧 알 수 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연구소는 특수 건물인 만큼 무엇보다도 건물의 완공 검사 전에 건설업자로 하여금 정부로부터 특수시설 인준을 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였고, 그 인준이 수개월째 미루어지는 등 연구소 운영의 주 원동력이 되어야 할 브루셀라병과 결핵연구 분야가 폐쇄되었다는 점에서 아연했다”고 말한다.

“건물의 완공이나 장비의 구입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수의과대학 교수들의 참여인데 그러지 못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는 백 전 교수는 “만약 교육부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어렵사리 완공된 아시아 최대의 연구소라는 배가 방향타를 잃고 산으로 떠밀린다면 그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감히 몇 가지 의견을 제시도 해 보았으나 허사였다”고 말한다.

"교수들의 열정과 충정으로 국민 건강과 축산농가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만들어 보고자 했는데 완성을 못하고 퇴직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는 노학자 백 전 교수는 "근래 들어 전북도와 전북대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놓고 벌이는 논란과 모호한 정체성을 바라보면 더욱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기만 하다"고 호소한다.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되지만 차라리 이럴 바엔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의 실질적인 활용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데 동의한다"고 말한다. 

전북도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활용해 국립 감염병연구소 분원 유치를 시도했다. 기존 인프라와 연구 인력을 비롯, 5년여 동안 수행한 연구 경험들이 동물을 매개로 한 감염병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웠지만 전북대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브루셀라 연구 등 설립취지 살리지 못할 바엔 국가적 차원 활용 바람직”

전주MBC 보도(화면 캡쳐)

전북대는 전북도의 의견에 원론적으로 공감대를 나타내면서도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소속기관 전환 문제를 비롯 수의대를 보유한 대학으로서의 연구기능 위축 등을 들어 난색을 표시한 것이다.

전북도와 대학 측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감염병연구소 분원 유치는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0월 8일 질병관리청 산하의 감염병 연구센터를 국립 감염병연구소로 개편하는 질병관리청 조직개편 방안이 확정됐지만 국립 감염병연구소 분원 설치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지난 10월 22일 국립감염병연구소 장희창 소장이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방문해 시설 등을 돌아보고 양 기관 간의 공조체제 강화 의지를 보였지만 분원내지 감염병 연구기관 지정 등에 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는 확산 추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향후 코로나19와 같은 신·변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동물을 매개로 하는 인수공통전염병 연구 강화를 통한 효율적인 대비책 마련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에 백 전 교수는 “인수공통전염병 연구에 뛰어난 인프라를 갖췄던 연구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어렵사리 브루셀라 연구 등을 위해 전북대에 유치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본래 연구 및 활용 목적과는 달리 활용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농림부 예속, 밥그릇 유지 수단으로 전락...안타까워”

자료사진

가뜩이나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교수들이나 연구원들조차 방향을 잃고 지리멸렬한 상태로 전락하지 않을까 그는 걱정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소 브루셀라가 아무리 지역에서 발병해도 코로나19에 가려질뿐더러 백신 접종에 관한 후속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0여 년 동안 브루셀라병과 싸워오며 백신 접종을 주장하는 백 전 교수는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본래의 기능을 하루빨리 되찾아 이 분야에 더욱 충실한 연구로 시름에 젖은 축산농가들과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렵게 유치한 연구소가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특히 브루셀라병 연구와 백신 접종을 위한 기반시설을 외면한 채 다른 모습으로 가는 형태에 대해 노학자는 마냥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소 당초 목표 '가축전염병 연구'라는 점, 잊어서는 안 돼"

백벙걸 전 교수

백 전 교수는 “교수들이 또는 학장이 세부 전공 분야와 상관없이 연구소장을 돌아가며 맡고 있고, 소 브루셀라병 연구는 농림부 눈치 때문에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구소의 제 기능과 역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며 “획기적인 개선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추구했던 당초 목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축전염병을 위한 연구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되었고, 운영되는 연구소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며, 급하다고 실을 바늘 허리에 묶어 써서는 더욱 안 된다"고 후배 교수들에게 충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도 소 가축농가들을 찾아 브루셀라병에 관해 상담하며 백신 접종 실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 길을 30년 하고 있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걸 보면 소들과 질긴 인연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한우 축산농가들이 스스로 브루셀라 퇴치를 요구하지 않는 한 퇴치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