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계속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동업이란 말은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누군가는 속임수, 사기 등을, 또 누군가는 마음고생, 파탄, 인간에 대한 환멸 등을 떠올릴 것이다. "다 해도 동업은 하는 게 아니다"란 말이 괜히 민간의 지혜처럼 전해오겠는가?
꿈꿀자유를 시작하기 전에 동업으로 출판사를 했었다. 돈 문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부딪히면 양보하리라 생각했다. 역시 길게 가지 못했다. 꿈과 목표가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짧은 동업을 통해 출판이란 과정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고,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한국에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꿈꿀자유를 플랫폼으로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지는 2년쯤 되었다.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 세 가지 분야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떠드는 건 좋아하지 않으므로 아는 걸 해야 할 텐데, 가만히 궁리해보니 의학(전공), 영미 대중음악(꽤 아는 데다 좋아한다), 영어(잘 모르지만 역사와 어원에 관심이 많다) 정도는 번역서든, 원저든 그런대로 안목을 가지고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법 좋은 책들을 많이 골라 놓기까지 했지만, 시간과 금전적 여건상 의학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무리해서 <재즈를 듣다>를 냈지만 출혈이 엄청났다. 의학 분야만 해도 도저히 커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회사를 키울까도 몇 번 생각했지만, 성격상 남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므로 내게는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때 나같은 사람들을 연결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영어라면 전문가가 얼마든지 있다. 운이 닿아 의기투합한다면 함께 번역서를 선정하고, 그 분이 번역을 하고, 윤문교정교열은 내가 하고, 제작은 우리 회사에서 한다. 비용은 공동투자하고, 똑같이 나눈다. 단, 자잘한 이견이 있거나, 초심이 흔들리면서 인간관계가 어긋날 수 있으므로 동업은 책 한 권 단위로 국한한다. 해보고 만족하면 한 권 더, 여전히 좋으면 또 한 권 하는 식이다. 그러다 신뢰가 쌓이면 아예 영어 라인은, 형식이 어떻든, 자연스럽게 동업관계가 될 것이다.
이걸 반복한다면 이론상 뭐든 가능하다. 물리학, 수학, 화학 등 과학 분야든, 미술, 음악, 건축 등 예술 분야든 계속 뻗어나갈 수 있다. 꿈꿀자유는 그야말로 수많은 1인 출판사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고... 환상적인 생각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으리란 것쯤은 안다. 무엇보다 내 성격상 천만금을 벌 수 있다 해도 스스로 같잖다고 생각하는 책은 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를 같잖다고 생각하므로 돈이 될 만한 책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업을 확장시킬 마음도 전혀 없다. 남들이 보기에 돈도 안 되고 힘들기만 한 출판사를 계속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다. 마흔 넘으면서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않기로 했고, 지금까지 그런대로 지키며 살았다. 그러니 성공을 위해 함께 하기 괴로운 사람과 일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이건 초대장이다. "나도 출판사 함 해 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대부분 생각에 그치지만, 용기 있게 시작하는 사람도 대부분 얼마 못 가 망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다면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을 충복해야 한다.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야 하고, 확실한 전문적 안목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번역가나 저자라면 훨씬 유리할 테고...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므로 의향 있는 분이 계시면 직접 통화를 해야 할 것이다. 어때요, 생각있으신지요?
※사진은 첫 번째 복간 예정작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