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위해 가슴 두근거리며 사는 세상을 위해!
신정일의 '길 위에서'
여기 저기서 불협화음이 들린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시대, 불신의 시대, 아니 광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전의 시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대는 종교가 그나마 사람들의 갈라진 마음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그 간극을 메웠으며 또 몇몇 종교 지도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등불로 자리 잡아 그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숭고하고도 진솔한 힘을 부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치 지도자들도, 종교인들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성전을 더 크게 짓고, 정치인들은 지역구를 관리하여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유치한 놀음에만 빠져 있는 것이다.
돈이, 권력이, 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이 시대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열과 불신의 시대, 고독하고 쓸쓸하고 삭막하기만 한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의지할 것은 옛 사람들의 진솔하고도 간절한 삶의 자세일 뿐이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이 지상에 어떤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원했을까?
“나는 지금까지 아무리해도 사람이 바보가 되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는다고 상상할 수가 없었어. 고독하게 된 인간은 곧 앞서보다 더 친밀한 애정을 가지고 서로 바짝 다가설 것이다. 그때야말로 그들은 자신들만이 서로를 위해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꼭 마주잡을 것이다.
불멸의 위대한 이상은 사라져버려, 새로운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신을 향하여 쏠려 있던 사랑의 위대한 덩어리는 자연이라든가 인간이라든가 그 밖의 온갖 풀잎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대지와 인생을 미치도록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무상함과 극한성을 차츰 깨닫게 될 것이므로 그것은 전과는 다른 특별한 사랑으로 바뀔 것이다. 그들은 예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현상이나 비밀을 자연 속에서 관찰하고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눈으로, 사모하는 남자가 연인을 보는 눈으로 자연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명이 한정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이것이 자신들에게 남겨진 오직 하나의 것이라고 알게 되자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당황하며 서로 입 맞추고 사랑하기를 서두를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일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행복을 느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자기의 부모나 마찬가지라고 직감할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기울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겠지.
설령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고 할지라도 상관이 없다. 나는 죽어도 그들 모두가 남을 것이다. 또 그들이 죽으면 그들의 아이들이 남을 것이다. 이 사상......사람들이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가슴을 두근거려 가며 살아가리라는 이 사상이야말로 사후의 재회의 사상과 바꿔져야 할 것이다.
아아, 그들은 마음속의 위대한 슬픔을 없애기 위해 서로 바삐 사랑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은 어떤가 하면 오만하고 또한 대담하면서도 서로 간에는 지나칠 정도로 유순하게 될 것이다.
저마다 타인의 목숨을 위해 전전긍긍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정하게 지내며, 지금처럼 그렇게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 아이들처럼 애무하게 될 것이다. 길가에서 마주쳐도 의미심장한 눈으로 서로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 때로는 애정과 우수가 어려 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에 실린 글이다. 신도 사라지고 구원도 사라진 시대에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세상은 그 모든 사물들이 서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그런 세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이 도래할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도 소설 속에서 이러한 세상을 원하면서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건 모두가 환상이야.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환상이야. 그러나 나는 너무 자주 이런 것을 꿈꾸어 왔어. 여태껏 이것 없이 살아갈 수 없었고, 또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야”
이러한 세상은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하고, 그 꿈은 어느 순간 산산조각 부서져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하고 그러한 시대를 갈망하는 것, 그것이 삶을 영위하게도 만들지만 초라하게도 만들고 가끔씩 크게 좌절하게도 만든다.
“지금은 일상적인 것에 매달려 깊이 사고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색 없이 그저 게으르게 무가치한 일에 정열을 낭비하고,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만을 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이념을 창출해 내려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미성년>에서 말한 이러한 시대에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인생 전체를 걸고 살고자 하는 욕망마저 없다면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 어지럽고 나라가 어지러운 이 시대, 이 초저녁에 봄밤의 꿈과 같은 생각으로 잠시나마 내가 나를 잊어버리는 이것도 사치일까?
/사진ㆍ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