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고시생들이 바라본 ‘조국사태와 언론보도

주장-전북대 ‘정론재’ 고시반원 4명(박민웅,신유정,양지훈,박수림)

2020-04-23     박주현 기자

대학마다 언론계를 이끌어 나갈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언론 고시반을 운영한다. 주로 신문방송학과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지만 갈수록 참여하는 학생들의 전공이 다양하다. 이번 겨울호는 전북대 언론 고시반인 ‘정론재’에서 정론직필의 언론인을 꿈꾸는 4명의 재학생들로부터 지난 여름부터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사태와 이를 보도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사람과 언론>은 열린 공간, 공론의 장 역할을 위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편집부

왜 언론은 책임감 결여된 ‘어뷰징’ 기사들을 쏟아낸 것일까?

박민웅(국문과 4년)

역대 법무부 장관 중,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단연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한다. 후보자 지명 이후부터 사퇴까지, 약 3달 가까이 그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에 관한 기사가 신문의 첫 지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와 관련된 사사로운 사건 하나하나 알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처럼 ‘언론’의 공(?)이 컸다. 조사 기간 도중, 딸의 생일날 케이크를 사가는 조국 전 장관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도 뉴스가 되었고, 심지어는 주택 압수수색 당시 집 안에서 짜장면이 아니라 백반을 먹었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뉴스가 되었다. 말 그대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언론을 통해 뉴스가 되었다. 결국, 그는 지난 10월 14일 법무부 장관 사퇴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과도 같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조국 사태’의 승자가 과연 ‘언론’이라고 답할 수 있을까. 이번 ‘조국 사태’ 동안에는,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 사건에 큰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JTBC’와 같은 정의로운 언론은 없었다. 오히려 서초동에서는 ‘검찰 개혁’과 함께 ‘언론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만 커졌다.

이번 ‘조국 사태’를 다룬 언론의 모습은 이른바 ‘가차저널리즘(Gotcha Journalism)’과 ‘먹레이킹 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의 양상을 보였다. 오로지 국민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위해, 무책임한 보도를 무제한 반복했다. 이러한 행태에, ‘이준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권력 비판에 있어 우리나라의 언론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 도식적인 관행을 따르고, 그 관행을 따른 사실적 근거가 곧 기사라는 듯이 글을 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 중 하나의 사건이었던 딸의 대학 입시 논란과 관련해 특혜가 있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 성적이 합격한 대학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느니, 일반적인 스펙으로는 갈 수 없는 황제전형이라느니 등 앞뒤 맥락 없는 한 가지의 사실만으로 쓴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딸의 입시 관련한 사건은 한 입시전문가의 SNS상의 소신 발언으로 대부분 일단락되었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민간인이 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책임감이 없는 기사의 대가는 고스란히 한국 ‘언론’ 전체가 져야 한다는 것을 모든 언론사는 명심해야만 한다.

조국사태 언론보도, 대부분 기사는 ‘검찰발 기사’ 유감

그렇다면, 왜 언론사들은 이처럼 책임감이 결여된 ‘어뷰징’ 기사들을 쏟아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언론 산업’과 관련한 외부적인 요인과 시스템과 관련한 내부적인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언론도 시장경제의 영향을 받는 하나의 산업이다. 즉, 자본 수익이 없이는 언론도 존재할 수 없다. 현재는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언론사들이 포털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소비자들로 하여금 뉴스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언론은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언론사는 광고 수익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단지 많은 조회 수를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쓰는 데 바빴다. 이번 ‘조국 사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가 독자적인 보도망과 태도를 가지고 책임감 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특종이 될 것 같은 이슈가 있으면 모두가 달려들어 기사를 썼다. 이런 근시안적 태도를 가진 기사는 심층적인 보도를 할 수 없으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내부적인 요인은 바로 언론 내, ‘출입처 제도’이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를 추가 조사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것, 기관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관행은 전형적인 ‘발표 저널리즘’

이다. 이 경우,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단지 출입처의 의견을 발표함으로써, 자칫 언론이 담당 기관의 보도자료만 전달하는 ‘대변인’ 노릇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조국 사태’를 다룬 기사도 전형적인 ‘출입처 제도’의 폐해였다. 대부분의 기사는 ‘검찰발 기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많은 언론은 주택 압수수색 당시, 그 과정에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하는데 일조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언론의 ‘출입처 제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1987년 언론 민주화 이래로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권언유착의 모습들이 보이는 이 시점, 이제는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기레기’, ‘한국언론사망’, ‘한국기자질문수준’ 등 언론을 비난하는 키워드들이 조국 사태 기간에 주요 포털 사이트들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언론이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다 했다면, 많은 국민으로부터 이토록 처참한 평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80년대 독재 정권의 ‘언론 통폐합’, 새 정권마다 끊임없이 논의되는 ‘공영방송’의 자격, 뉴미디어 시대에 따른 ‘가짜뉴스’ 등 사실, 대한민국 개국 이래 언론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조국 사태’를 돌아보며, 이제는 정말 대한민국 언론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


‘조국사태’, 언론은 과연 무엇을 다루었나?

신유정(사회학과 4년)

지난 8월에는 ‘8.9개각’에 따른 8명의 장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었다. 후보자 중 최대 관심사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속이었다. 개각 발표 이후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본인과 가족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였고 언론 또한 조 전 장관에 관한 보도를 쏟아냈다. 청문회를 앞둔 지난 27일에는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하여 검찰이 이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조 전 법무부장관 임명문제는 단연 최근 한 달 이상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꼽힐 것이다.

조 전 장관에 관한 언론보도의 양은 검색 키워드나 조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정확한 양을 파악할 순 없었지만 어마어마한 양이 쏟아져 나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일명 ‘조국 사태’를 두고 진보와 보수의 세력 갈등을 넘어 진보 세력 안에서도 입장 차가 상당하며 논란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사회적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언론이 조 전 장관과 관련된 사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건을 검증하기 위해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논의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조 전 장관과 관련한 언론보도는 ‘가차 저널리즘’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보도된 의혹을 몇 가지 나열하면 ‘조국 동생 위장이혼 의혹’, ‘조국 딸 표창장 위조 의혹’, ‘조국 딸 장학금 의혹’, ‘조국 사모펀드 투자의혹’, ‘조국 딸 부정 대학 입학 의혹’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들은 논란 검증을 위해 쓰인 기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검증 과정에는 힘을 뺀 보도였다. 한 사건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똑같은 질문만 반복하여 오히려 의혹을 더 부풀리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언론보도는 당사자가 논란에 대한 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사건을 교묘하게 다시 떠오르게 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하였고, 조 전 장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로 이어지게끔 만드는 보도가 지속적으로 생산됐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언론보도는 보도의 초점이 조 전 장관의 자질보다 도덕성에 과도하게 치우쳤다는 문제점이 있다. 분명히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보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후보자 자질과 정책 검증의 성격을 가진 보도가 생산되어야 했다. 하지만 후보자의 전문성이나 자질에 대한 보도는 극소수에 그쳤고 도덕성에 관한 보도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또한 이러한 보도는 후보자 본인이 아닌 딸이나 5촌 조카와 같은 후보자를 둘러싼 가족과 관련한 의혹이 주를 이었다. 보도의 내용이 조 전 장관이 사건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경위 파악을 중심으로 흐르지 않고 주변사람으로 범위가 확대되었고 이들과 관련된 의혹을 조 전 장관과 끊임없이 연관 지어 보도한 것은 거름더미를 갈고리로 뒤적거리는 ‘먹래이킹(mackraking) 저널리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검증되지 않은 의혹까지 계속 제기...신뢰 하락 스스로 자초

‘조국 사태’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언론은 단독 경쟁과 승부 경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은 오랜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하는 사건마저도 한두 달, 길게는 서너 달을 들여 기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탐사보도란 취재기간을 길게 잡아 끈질기게 분석하는 취재기법을 말한다. 탐사보도의 위력은 경우에 따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기도 하는데 ‘펜타곤페이퍼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이 이를 입증하는 사례이다. 탐사보도는 보다 깊이 있어야 하며,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에 대해 확실한 무엇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탐사보도는 4차 산업혁명이 수반하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신문 매체의 돌파구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초보적인 탐사보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지나치게 표현하자면 이를 사치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탐사보도보다는 단독 취재,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사생활을 뒷조사하고 흥미 위주의 기사를 생산하는 ‘먹래이킹 저널리즘’으로 빠질 위험성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사안에 대한 본질파악은 실패하게 된다.

언론은 현재 사실 검증이 되지 않은 의혹까지도 계속해서 제기하고 그 관심을 키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지나치게 다루고 있다. 기울어지고 편파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보도하는 것은 잘못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의 신뢰도 위상의 붕괴와 같은 큰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언론은 그 영향력과 역할에 맞게 보도에 책임을 져야한다. 또한 언론의 의제 설정에 있어서 한쪽에만 지나친 관심을 주는 것은 오히려 다뤄져야 할 중요한 논의들을 가려지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조국 사태’가 떠오른 이후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일 갈등에 대한 보도는 ‘조국 이슈’에 밀려 언론의 주목도가 떨어지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언론은 의제설정과 의혹검증과 같은 언론의 기능이자 역할을 제대로 구현할 때 권력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론은 자신이 가진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처하는 언론의 자세 때로는 달콤, 때로는 쌉싸름.

양지훈(신방과 4년)

법과 도덕은 ‘밀월관계’다. 남자와 여자가 사귀기 전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법과 도덕도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도덕은 인간이라면 따라야 하는 ‘자연의 법칙’과, 이 자연을 활용하면서 인간 스스로 만든 사회적 관습이 서로 맞물려 생긴 것이다. ‘자살을 하면 안 된다’는 도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보통 지구를 벗어날 일이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인간은 중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고층 빌딩에서라면 누구라도 죽음을 피하긴 어렵다. 그런데 한 개인의 자살은 개인적인 일이면서 사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작게는 가정의 안정을, 크게는 국가의 구성원이 줄어드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도덕적 규범이 반드시 법과 일치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 정치학자 토마스 페인이 <상식론>에서 밝혔듯이 “개인의 자유는 국가가 존재해야할 이유”기 때문에, 국가가 이를 제한하는 타인의 자유, 혹은 국가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 법은 이 도덕적 규범 가운데 사회 성원이 지켜야 하는 최소 한계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도덕과 법, 둘 중 하나만 중요시되어서는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법은 기존 질서를 수호하는 경향이 짙다. 가령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법부가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는 피의자를 무혐의로 판단할 수 있다. 사회 성원의 인식이 변화하면 법도 따라 변해야 하는 이유다. 반대로 도덕이 더 중시되면 여론이 옳고 그름의 잣대로 왜곡될 수 있다. 제주도에 체류했던 시리아 이민족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사회 다수가 그들을 공동체에서 몰아내길 원하고, 하나의 도덕적 규범이 된다면 이들을 향한 근거 없는 비난도 합리화될 수 있다. 법과 도덕이 적절한 상호관계를 이룰 때, 사회에는 변화와 안정의 순환이 자리할 수 있다.

언론은 법과 도덕 사이의 ‘주선자’ 역할과 비슷하다. 초면인 남녀가 어색함을 풀 수 있도록 주선자가 먼저 서로를 소개하듯이, 법과 도덕 중 각자의 입장을 대신 전달하는 이가 바로 언론이다. 법이 사회 성원의 공통된 이해, 즉 도덕을 따라가지 못할 때, 언론은 법이 현실과 합치되지 못한다는 시민들의 견해를 공론장에 드러낸다. 가령 2012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관해 합헌 판결을 내렸을 때, 한겨레 21은 여성민우회 등 시민사회 단체의 입장을 지면에 실은 바 있다. 이는 법적 잣대의 전향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2018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은 사회 풍속을 반영하여 변화해야 하기에, 낙태 행위의 책임을 산모에게 지우는 것은 사회적 인식에 위배된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언론은 도덕과 법 사이이 간극을 좁히는 데 기여한다.

과도한 몰입, 사회의 공기 역할 잃게 될 수도

반대로 법이 도덕을 넘어서는 판단을 내릴 때도 있다. 법은 사람들의 욕구를 한정 짓고 사회의 자원을 폭력 없이 분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사회적 의제가 되고, 정당이 이 의제를 정책과 법안으로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체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또한 모두의 견해를 존중하는 다원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모두의 도덕적 판단이 옳다고 시민이 생각할 수가 있다. 도덕적 상대주의가 그것이다.

그런데 모두의 도덕적 판단이 옳다는 주장은, 그 판단을 상대방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상대주의적이다. 법은 모두의 견해가 옳다는 이유로 다수의 판단이 정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사회 성원들의 행동을 제약한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도 ‘주선자’ 역할을 자임한다. 가령 사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결정’이 다수 남성이 반대에 부딪힐 때, 언론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 실현의 주요한 요소인지를 해석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언론은 법과 도덕 중 어느 편에도 과도하게 개입해선 안 된다. 법과 도덕이 상호작용을 넘어 언론이 이 둘을 움직이려 할 때, 법과 도덕 간의 괴리는 더 커지기 때문이다. 가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비위 사실에 관해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인데도 언론이 조 장관을 비리의 핵심인물로 왜곡 보도한 것이 그 예다. 마치 주선자가 소개 자리를 잘 이끌어보려 개입하다가 오히려 서로에 관해 오해를 키울 수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언론은 법과 도덕 사이의 경계를 침범해선 안 된다. 대신 사법부와 대중 사이에 이해의 폭을 좁히는 역할을 맡을 수는 있다.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원의 내부 알력관계를 톺아 이것이 판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보도하는 태도가 그 예다. 언론은 주선자로 남아야 한다. 법과 도덕 사이에서 과도한 몰입을 할 때, 언론은 사회의 창, 공기로서의 역할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인선 시 엄격한 잣대만이 국민들을 실망케 하지 않을 것

박수림(경영학과 3년)

고위공직자는 국민을 대표해 나랏일에 결정권을 행사한다.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즉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뢰를 높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평소 행실을 모범적으로 하여 도덕성을 높이는 방법과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다.

특히, 국민들은 그들을 대신하는 자리인 만큼 대중의 도덕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후보를 원한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때마다 ‘부적격 기준’이 일정한 원칙 없이 진행되는 문제가 수반되어왔고 업무전문성이 뛰어난 수많은 공직자들은 매번 도덕성 검증에서 좌절했다. 따라서, 고위공직자 인선 시 자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도덕성 검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철저한 사전검증으로 소모적 논란 없애야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경우는 1900년대 이후 3명으로 거의 전무하다. 사전검증제도로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후보자 인선 단계부터 이와

같은 철저한 조사와 검증을 거친다. 특히 사전검증을 통과 했을 경우에 한해 공개 지명이 된다. 언론을 통한 공개 검증도 2~3개월가량의 엄격한 인사 검증을 통과한 후보에 한해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지명 후보자가 사전 검증 단계에서 허위진술을 했을 경우 이에 대한 책임도 엄격히 적용된다. 사전 검증이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기 않기 위해서다. 백악관에 제출하는 국가안보직위기술서의 경우 국가 공식 문서로 간주하고 임명 후보자가 의도적으로 허위진술을 하거나 사실을 은폐한 경우 벌금형이나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고위직 판검사에 한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상원, 하원, 상임위의 반대 표가 5분의 3을 넘으면 임명은 철회된다.

이와는 반대로, 얼마 전 우리 사회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 이후 서초동에서는 조국 지지 세력의 ‘검찰개혁’ 집회로, 광화문에서는 반대 세력의 ‘조국규탄’ 집회로 대립했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자격 적정성에 대한 논란, 일명 ‘조국 사태’에서 시작된 집회는 ‘도덕성 검증 마련’을 촉구해야 할 때임을 반증한다.

따라서, 우리 국회는 현실적인 공직자 도덕성 검증 범위를 설정하고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철저한 사전검증제도와 허위진술에 대한 적절한 처벌 등의 장치가 갖춰질 때 인사청문회의 반복되는 불필요하고 소모적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임명권자는 보다 신중하게 인사를 진행하길 바란다. 고위공직자 인선 시 엄격한 잣대만이 국민들을 실망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언론> 제7호(2019 겨울).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