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앞에서 안데르센을 만나다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0-11-22     백승종 객원기자

아말리엔보르 왕궁 북쪽 해안으로 걸어갔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인어공주 상이 거기에 있었다. 길이가 80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조각상이다. 앞에서 말한 칼스버그 맥주회사 사장 칼 야콥슨이 의뢰한 것이었다.

인어공주는 지금까지 여러 번 수난을 겪었다. 두상이 파손된 것만 해도 무려 세 번이었다! 2003년에는 조각상이 산산이 조각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위해를 가하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또 다른 이는 재미 삼아 이유명한 조각상을 공격한다. 때로는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기도 한다.

2004년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자 어떤 사람이 그에 항의하는 뜻에서 이 동상에 이슬람 여성의 전통 복식인 ‘부르카’를 입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거듭되는 위해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어공주는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인어공주를 만나고 싶어 하니까. 유명세를 치른다는 것은 이렇게 고단한 것일까.

인어공주는 알다시피 안데르센의 작중인물이다. 작가는 청년 시절 몹시 가난했다. 그는 한동안 뉘하운 운하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그곳은 부두 노동자들이 북적이는 선술집 거리였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멋진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곳이다. 한스와 나는 거기서 덴마크식 미트볼, 프리카델레르를 주문했다. 기름지고 소박한 요리였다. 우리는 칼스버그 맥주도 곁들였다.

우리의 화제는 자연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에 집중되었다. 그는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고아나 다름없었다. 참으로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였는지 안데르센은 열등감이 컸다. 자기 현시 욕구도 무척 강했다. 그는 십 년이 멀다 하고 자서전을 고쳐 썼다고 한다. 누구든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에서 회복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안데르센은 적어도 2백 편의 동화를 썼다. 『미운 오리 새끼』와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눈의 여왕』은 최고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런 작품은 그의 생전에도 인기가 높았다. 1846년 덴마크 왕실은 그에게 시민의 영예인 단네브로 훈장을 수여했다. 유럽 각국에도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세기 영국 문단의 총아였던 찰스 디킨스 역시 안데르센 애독자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안데르센이 동화를 창작하는 방법은 특이했다. 그는 전래동화를 윤색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창작의 신세계를 개척했다. “나의 인생이야말로 내 작품에 대한 최고의 주석이다.” 이 말처럼 안데르센의 작품은 자신이 직접 겪은 여러 가지 사건을 문학작품으로 승화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 그는 ‘미운 오리 새끼’ 자체였다. 평생 그는 사랑을 추구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는데, 그런 점에서는 인어공주이기도 했다.

안데르센이 동화만 창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작품을 정력적으로 생산했다. 특히 극작가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어린이만을 위해서 동화를 창작한 것도 아니었다. “어린이는 내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읽는다. 성숙한 어른이라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안데르센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복잡한 현실 문제를 우회적으로 고발하기 위해서 동화라고 하는 수단을 선택하였다.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았으나, 그로 말하면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슬픔과 악몽에서 쉬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게는 또 한 가지 고통스러운 굴레가 있었다. 그의 성적 정체성은 혼란스러웠다. 안데르센은 여러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였고 육체관계도 맺었다.

그러나 그는 이성애자이기도 하였다. 평생 그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찾아 헤매며 고단하고 외롭게 살았다. 그는 세상사에 영리하기는커녕 무능했다.

평생 많은 고초를 겪은 끝에, 아시스텐스 교회 묘지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한스와 나는 날씨가 유난히 청명했던 겨울날, 안데르센의 무덤 앞에 장미꽃 한 묶음을 바쳤다. 

※출처: 백승종, <<도시로 보는 유럽사>>(사우, 2020)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