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물결과 한국정치 개혁과제

'국회개혁' 주제 특별 기고-김영래(아주대 명예교수, 전 동덕여대 총장,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

2020-04-23     김영래
김영래 명예교수

84일 동안 잠을 잔 국회

민의의 전당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국회가 그동안 여야 간의 정쟁으로 국회 문을 닫았다가 국민의 비판이 거세지자 겨우 84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개회하였다. 지난 6월 28일 국회는 여야 원내대표 간의 합의에 의하여 84일 만에 본회의를 개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을 2개월 연장하는 안건을 의결하였다.

국회 본회의가 개회된 것은 지난 4월 5일 본회의 개회 이후 무려 84일 만이다. 그동안 여야는 민생은 제쳐두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싸움만 했다. 사실상 국회가 파업 내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일반 회사라면 3개월분 월급을 받지 못하는 무노동·무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었겠지만, 특권을 지닌 국회의원들은 세비 등 모든 것을 다 챙겼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민주정치의 전당인 대한민국 국회는 부끄러운 행태를 보여주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패스트트랙’ 처리를 놓고 국회의사당에서 발생한 여야 간의 충돌은 국회의원들이 모여 대화와 토론을 하는 무대라기보다는 아프리카 정글에서 맹수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먹잇감을 쟁취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싸우는 동물들 간의 전쟁터와 같은 모습이었다. 세계 경제순위 10위권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로 <3050 클럽>의 일원임을 자랑하는 선진국 한국 국회가 보여준 일명 ‘동물국회’ ‘폭력국회’ 는 후진국형 한국정치의 민낯을 여실 없이 드러냈다.

골목 싸움패들이 사용하는 빠루(노루발장도리)와 쇠망치가 등장, 세금으로 지은 국회 시설을 파괴하고 상당수 의원들은 물리적 충돌로 인해 병원에 실려 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30년 만에 발동된 국회의장의 경호권도 ‘동물국회’ 앞에서 무력화되고, 여야는 서로 상대방을 탓하는 비난 속에 고소·고발사태가 발생, 100여명의 많은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84일 만에 개회된 지금의 국회도 민생은 뒷전으로 팽개치고, 연일 정쟁으로 ‘식물국회’가 되어 국민의 세금만 축내고 있다.

국회는 과거에 잘못된 행태였던 ‘동물국회’ ‘폭력국회’를 방지하기 위해 소위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과거에 법안은 국회에서 재적 과반수 출석 하에 과반수가 찬성하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다수당이 과반수의 힘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여야 간의 폭력을 사용하는 사례가 있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이런 잘못된 ‘동물국회’의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2012년 여야정당이 합의 하에 통과된 법이 소위 ‘국회 선진화법’이지만, 이번 ‘폭력국회’로 인하여 국회의원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아 사실상 국회 선진화법은 무력화된 것이다.

‘정치꾼’(Politician)으로 가득 찬 국회

대한민국 국회는 올해로 개원 71년을 맞이한다. 국회는 지난 7월17일 제헌절 71주년 기념식을 맞이했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매우 따갑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국리민복을 위한 국정에 전념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 또는 내년 총선만 겨냥, 정쟁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발생한 국회 폭력사태는 내년 4월 15일 실시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구 획정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국회는 매 4년마다 정쟁의 핵심으로 등장한 선거구 획정 문제로 인해 여야 정당 간의 정쟁, 소위 ‘ 밥그릇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치인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바, 하나는 영어로 ‘Politician’과, 또 다른 하나는 ‘Statesman’이다. ‘Politician’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객’ ‘정치꾼’ 이라고 부를 수 있고, ‘Statesman’은 ‘정치인’을 말한다. ‘정객’ ‘정치꾼’은 최우선 관심이 다음 선거에서 내가 당선되느냐의 여부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반면, ‘정치인’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지도자이다.

이런 정치인의 대표적인 유형을 외국의 예로 든다고 하면 미국의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 같은 경우는 ‘New Frontier’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한 Statesman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 같은 사람은 워터게이트(Watergate)사건 때문에 탄핵 일보 전에 사임한 ‘정치꾼’인 Politician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Politician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음 선거, 또는 권력을 잡는 것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은 Statesman 유형의 ‘정치인’들이 아니라, Politician 과 같은 ‘정객’ ‘정치꾼’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국회의원 대부분은 경제, 사회, 안보, 교육, 복지, 저출산· 고령화 등 국정현안보다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연 ‘내가 당선될 수 있느냐’ ‘우리 지역구가 살아남느냐’ 에 더욱 관심이 있다. 이번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올라가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사활이 걸린 선거구 획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하게 되어 있어 금년 4월 15일까지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는 벌써 국회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관련법에 의하면 국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있는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선거구를 획정하여 국회로 넘기면 국회에서 금년 4월 15일까지 내년에 선출할 국회의원 정수와 선거구 획정을 결정해야 된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문제가 합의가 안 되어 여야정당 간의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문제는 정치인의 사활이 걸린 사항이기 때문에 최근 수차례에 걸친 국회의원 선거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이며, 이번 국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패스트트랙에 의한 선거법 개정 문제를 두고 내년 4월 총선거 직전까지 여야 간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정치는 제4의 물결 시대

한국정치는 현재 의 ‘제4의 물결’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16년 사망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로 변했다고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주장했다. 제1의 물결은 농업혁명, 제2의 물결은 산업혁명, 제3의 물결은 정보혁명이다.

앨빈 토플러는 2006년 발간된 그의 저서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앞으로 사회는 심층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제4의 물결>(Fourth Wave)시대로서 이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된다고 말했다. 앨빈 토플러는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으며,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측적인 분석을 했는데, 앨빈 토플러의 분류에 따라 이를 한국정치에 적용,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정치의 제1의 물결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의한 신생국가의 건설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신생국가를 건설하고 대한민국의 안보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상당히 논쟁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세력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을 통해 헌법을 개정, 영구집권을 꾀했는가하면,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4·19학생혁명이 발생, 대통령 직에서 사임하였다. 그러나 6.25한국전쟁 등 여러 가지 어려운 국내외 정치환경 하에서도 신생국가를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정치의 제2의 물결은 산업화이며, 이는 박정희 대통령시대를 의미한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과 역시 논쟁적이지만 오늘날 한국을 세계경제순위 10위권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수행한 경제발전5개년계획, 중화학공업 육성과 같은 성공적인 산업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유신헌법을 통한 유신체제와 같은 민주정치발전에 역행하는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과(過)이지만, ‘한강의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평가해야 된다.

한국정치의 제3의 물결은 민주화를 이룩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의미하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정치는 급속적인 민주정치 발전을 하였다. 이는 오랜 기간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비민주적 정치를 민주정치로 변화시킨 한국정치의 위대성을 의미하고 있다. 세계2차 대전 이후 무려 100여개 국가가 독립해서 신생국가가 됐는데 그 중에서 한국과 같이 발전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차 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독립, 신생국가가 됐지만 지금도 대부분 원조를 받고 있지만, 한국은 후진국에 원조를 주는 공여국가로 바뀐 유일한 나라이다. 2018년 영국의 〈Economist〉지에서 평가한 세계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67개국 중 21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치는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까지 성공적으로 수행, 발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이에 대하여 우리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으며, 세계 각국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치가 발전해야 될 제4의 물결은 무엇이며, 이를 위한 우리의 정치적인 과제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제4의 물결시대에 있어 한국정치가 당면한 주요 과제는 ‘선진복지사회’ 구현이다. 국회도 선진화법을 만들어 국회 운영 자체를 선진화된 정치로 변화시키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국회법을 무력화시켜 우리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는 선진화된 한국정치를 펼치겠다고 주장했지만 국민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정치리더십으로 실패했다. 역대 대통령들과 유사하게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2명의 전직 대통령은 법의 심판을 받는 있는 부끄러운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 건설이라는 기치 하에 소득주도성장과 포용국가를 정책 기조로 하여 최저임금인상 등을 통한 선진복지사회구현을 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일방통행 식으로 행하는 경제정책, 인사정책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최대의 실적으로 기대했던 남북관계 개선도 현재로서는 예측불가 상황이며, 특히 최근 야기된 일본의 대한(對韓)무역보복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점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환경에서 한국정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지 국민들은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임기 말년을 비극적으로 끝낸 한국정치를 볼 때, 한국정치가 과연 제4의 물결 시대가 추구하는 선진복지사회 구현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분노·패거리·공포의 균형이 한국정치

한국은 신생국가의 건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제3의 물결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세계가 부러워 할 국가가 되었다. 최근 한국은 ‘인구 5천만명·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상징하는 <3050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일곱 번째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우리가 일곱 번째 국가가 된 것은 우리도 정치만 잘하면 충분이 ‘선진복지사회를 구현할 제4의 물결’ 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정치의 현 상황은 제4의 물결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국민들로부터 한국정치가 불신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정치의 문제점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한국정치는 소위 ‘분노의 정치’다 정치를 이야기 하는 국민들 대부분은 여야(與野) 정당과 정치인에게는 물론, 진보· 보수집단 모두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고 있다. 보수는 보수대로 분노하고 진보는 진보대로 모두 분노하고 있다. 또 세대는 세대별, 지역은 지역대로, 계층은 계층대로 모두 ‘네 탓이오’ 하면서 분노에 차있다.

20대는 취업문제로, 30대는 결혼과 주택문제로, 40대는 자녀들 교육문제, 50대는 은퇴와 노후문제로, 60대 이상은 젊은 세대의 행태에 대한 불만으로 분노하고 있다. 분노의 정치는 한풀이 정치를 잉태하고 결국 정치현장은 끝없는 싸움판으로 변하게 된다. 여야는 공존이 대상이 아니고 상호 적폐의 대상이라고 보고 있으며, 소속 정당 내에서 이념적 성향의 차이가 있을 경우, 극단적인 대립을 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한국정치는 ‘패거리 정치’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지지세력을 기초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임으로 소위 ‘패거리’ 정치는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사색당쟁 등 패거리 정치가 아주 극심했으며, 이로 인한 음모정치, 과거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정치가 정치발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패거리 정치가 최근들어 이념적 갈등, 지역갈등 등과 맞물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때문에 국가발전을 위한 미래문제 해결이나 비전제시보다는 과거청산 문제로 여야정당 간의 치열한 정쟁이 전개, 결국 이에 의한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된다. 미래정치가 아닌 과거회귀로의 정치로는 국가가 발전할 수 없다. 매니페스토(Manifesto)에 의한 정책경쟁은 없고, 특정 인물, 또는 지역중심의 패거리 정치만 난무하고 있다.

세 번째 문제는 한국정치의 특징적인 내용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으로 ‘공포의 균형 정치‘다. ’공포의 균형정치‘란 여야정당 간의 정쟁을 할 때 상대정당을 제압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포를 주는 언어를 사용, 상대에게 승리하려는 것이다. 즉 예를 들어서 여(與)가 힘의 논리를 내세워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여하한 방법을 사용,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하면, 야당은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여 법안 통과를 막겠다’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공포의 언어는 또 다른 공포의 언어를 재생시키고 있다. ‘공포의 균형정치’는 여야정당이 서로 더욱 강도 높은 공포의 정치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전략이다. 최근 폭력국회에서 여야정당 대표가 사용한 정치언어가 하나의 대표적인 공포의 균형정치 사례이다. 이는 자유당 시절부터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는 한국정치의 대표적 행태이다. 정치인의 소위 ‘막말’ 파동은 이런 공포의 정치의 균형에서 잉태하고 있다.

미래· 포용·희망의 균형 정치를 지향해야

최근 한국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대단하다. 그러면 과연 이런 한국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제4의 물결시대에 한국정치가 지향해야 될 방향은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정치는 ‘과거의 정치’에서 ‘미래를 위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는 물론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사회 전반이 과거의 정치 프레임에 갇혀 미래에 대한 논의를 못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행태는 바로 잡아야 되지만 지나치게 과거에 문제해결에만 집착하고 있게 되면 한국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정치권은 미래를 위한 토론장을 마련해야 된다. 얼마나 많은 미래의 국정현안이 놓여 있는가? 저출산·고령화, 미래성장산업의 발굴, 제4차 산업에 적응하는 교육제도의 개혁, 빈부격차의 해소는 물론 한반도의 평화 문제 등과 과제는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주요한 화두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회, 행정부는 이러한 정책비전을 제시하는데 총력을 다 해야 된다.

둘째 ‘포용의 정치’를 해야 된다. 한국은 이념, 세대, 지역 등 갈등으로 사회가 분열되어 있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오히려 남남갈등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분열되고 있어 사회통합을 위한 포용의 정치가 요구된다. 대통령과 국회는 협치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협치는커녕 분열의 정치만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지만 백인에 대한 포용정책을 실시, 흑백으로 분리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통함, 안정되게 발전시켰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자신을 무자비하게 비판했던 반대파인 변호사 에드윈 스탠턴(Edwin M. Stanton)을 전쟁부장관, 즉 국방부장관으로 임명,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 국민은 이런 포용의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

셋째 한국정치가 ‘희망의 균형정치’로 변해야 한다. ‘공포의 균형정치’라는 구시대적 사고에 위한 정치는 소위 정치꾼들의 정치행태이다. 최근 젊은이들이 ‘헬 조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래의 비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야 정당이 정책경쟁을 통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와 여당에서 “10년 후 한국사회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의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라고 경제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 이에 대하여 야당은 오히려 여당의 경제정책보다 한 단계 더욱 높은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여야 정당이 밥그릇 싸움이 아닌 국가발전에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경쟁을 할 때, 즉 ‘희망의 균형정치’를 하면, 한국사회는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실시를

국민소환제(Recall)란 국민들이 부적격하다고 판단하는 국회의원을 임기 도중이라도 유권자들이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국민투표와 국민발안과 함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제도로 알려진 국민소환제는 현행법과 제도 하에서는 국회의원이 자신을 선출한 유권자의 의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더라도 범죄로 인해 유죄확정 판결을 받지 않는 이상 의원직이 박탈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권을 많은 유권자들이 요구하고 있다.

이런 국민소환제도는 자치단체장에게는 적용되고 있지만 국회의원에게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점증하고 있는 차원에서 국민소환제에 대한 요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현재와 같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Statesman)’이 아닌 개인의 정치적 욕구 또는 차기 선거에서 여하한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당선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꾼(Politician)’만 득실대는 국회에서는 한국의 미래를 희망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기 어렵다.

매번 총선거 때마다 국회의원들은 유권자에게 약속을 한다. 자신이 이번에 당선되면,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각가지 ‘특권을 내려놓겠다’,‘국회 싸움으로 휴회 중이면, 세비를 받지않겠다’ 또는 국회의원 선서에 한 것과 같이 ‘국리민복을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공약(公約을 하지만, 이는 또 다시 거짓말이 되는 공약(空約)이 되어 돌아온다.

때문에 최근 국민들 사이에는 심지어 ‘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원들을 외국에서 수입하자’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하자’등의 각종 비판적 내용들이 SNS를 비롯하여 여론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국가들의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의사당에 갈 정도로 검소하고 또한 제한된 인원의 보좌진과 더불어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국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최근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제가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제헌절 71주년 기념사에서 이를 개헌과 추진하고자 했으며, 또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의원총회에서 국민소환제 도입을 언급했다. 역대 국회에서 국민소환제는 꾸준히 제기 되었으며, 20대 국회 들어서는 민주당 김병욱·박주민 의원, 자유한국당 황영철 의원이 각각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국회의원이 위법, 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국민소환을 요청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31일 CBS의 의뢰로 여론 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국민의 77.5%가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반대는 불과 15.6%이다. 경실련 등 주요 시민단체는 물론 ‘국민소환제 추진본부’와 같은 시민단체도 조직되어 개헌에 이를 포함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개헌 필요

1987년에 개정된 제9차 개정헌법에 대한 개정 의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약 70% 정도가 개헌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정치학회가 2016년 6월 발표한 20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의원 217명 중 93.5%인 203명이 개헌에 대하여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헌 의결정족수 200명을 넘은 수치이다. 이와 같은 개헌에 대한 찬성 여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지난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이미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1987년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지적, 국회 구조를 거대 양당체제에서 3당 체제로 변화시켰고 또한 정치세력 간의 이전투구가 아닌 협치를 요구하였다. 금년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2년이 된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5년 단임 직선제 대통령제를 택한 제9차 개헌이 되었으므로 현행 헌법이 적용된 지 32년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7명의 대통령을 선출하였으며, 또한 8차례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6명의 5년 단임제 대통령은 제왕과 같은 절대권력만 향유하였지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하지 못하였다. 전임 대통령들은 집권 후반기에는 레임덕 현상을 맞아 효율적인 국정 운영은 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일부 대통령은 집권당으로부터 탈당을 강요받아 소속 정당을 탈당한 사례도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현행 헌법은 지난 32년간 시행을 통하여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으므로 이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된 것이다.

제9차 개헌은 기본적인 헌법 틀의 변경 없이 3김의 집권을 우선시하는 직선의 5년 단임제에 초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현행 헌법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정치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전개되는 개헌 논의는 역대 정권에 따라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항상 거론되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 개헌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으며, 실제로 개헌안도 지난 해 3월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무산되었다. 이번 제헌절 기념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를 다시 강조, 개헌이 필요성을 역설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다. 따라서 헌법을 자주 변경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시대가 변했음에도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 것은 더욱 문제이다. 2016년 4월 총선 결과로 여야 정당도, 그리고 청와대도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 지금이 개헌의 적기이다. 내년 총선 이후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될 것임으로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금년 내로 국회가 주도권을 가지고 개헌 작업을 진행, 내년 총선에 국민투표에 회부하여 결정하면 된다.

정치의 최종 책임은 유권자의 몫

최근 한국정치에 대한 비판이 사회각계각층에서 고조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 기성세대로부터 현재 한국정치에 대한 비판은 대단하다. 그러나 한국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식민지 하에서도 굳건하게 버티어 오늘의 한국을 건설한 강인한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에 많은 난관은 있으나, 정치권이 ‘미래를 위한 정치’ ‘포용의 정치’ ‘ 희망의 균형정치’를 한다면 이런 난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민족이다.

내년 4월15일 총선거를 실시하게 된다. 20대 국회가 남은 국회일정을 놓고 어떠한 의정활동을 펼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패스트트랙에 올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가지고 내년 총선 직전까지 정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제20대 국회 역시 지난 제19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의정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Jean Jacques Rousseau:1712-1778)는 유권자는 투표일 하루만 주인이고 그 이후에는 머슴이 된다고 했다. 굳이 루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기 위하여 열심히 국가를 위해 봉사함은 물론 국민들을 위한 머슴이 되겠다고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는 마이동풍과 같이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머슴’이 아니고 ‘주인’으로 둔갑하고 있다.

독일의 작가이며 사상가인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은 ‘유권자의 수준이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을 결정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올바른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느냐의 여부는 결국 유권자가 투표장에 가서 어떤 후보자와 정당에게 투표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한국정치에 대한 불신을 정치인에게만 돌리지 말고, 유권자 스스로 한국정치에 대한 책임은 ‘내 탓이오’라는 인식하여 올바른 정치지도자를 선택하여야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내년 4월 총선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 주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정치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느냐 또는 퇴보하느냐의 문제는 유권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때문에 정치에 대한 최종 책임은 지도자 선출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의 몫이다. /<사람과 언론> 제6호(2018 가을).

/김영래 교수

현)아주대 명예교수, 현)한국대학총장협의회 사무총장, 전)동덕여대 총장, 전)한국정치학회 회장, 전)한국 NGO학회 회장, 저서)매니페스토와 정책선거(논형, 2008), 한국정치, 어떻게 볼 것인가(박영사, 2006), NGO와 한국정치(아르케, 2004), 이익집단정치와 이익갈등(한울, 1997)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