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살아도 잘 모르는 것이 삶이다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0-11-21     신정일 객원기자

이 세상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작게 말하면 하찮은 미물일 수도 있고 크게 말하면 광대한 우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반문하며 그림을 그렸던 고갱의 그림 제목처럼 끝없이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받고 무엇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물음에 답한 글이 한 편 남아 있다.

“보내준 편지 잘 받았소. 그대가 나에게 베푼 은혜 진정 크다 하겠네만, 지나치게 나를 칭찬한 것 같네. 어찌 내가 사람들을 이끌어 뛰어난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겠는가?

그렇지 않네. 자네가 한 말 중에, 한두 가지 나의 행동과 비슷함이 있어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할 수는 있겠네.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정성을 다하고 등을 돌리지 않는다고 한 말은, 또한 나의 행동과 조금은 비슷하다 하겠네. 

하지만 그것도 내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뿐이라네. 덕을 행함에 나태하지 않는다고 칭찬한 말도 내가 어찌 맞다고 말하겠는가. 과찬의 말, 합당하지 않네. 합당하지 않네. 

또 나를 두고 부귀에 급급하며 이것으로 세상을 구하려 한다 했는데, 이는 성현들이나 하시는 일이네. 나는 그저 지혜와 능력이 이런 일을 하기에 충분한 사람을 알고 있을 뿐,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중국 당나라 때의 빼어난 문인인 한유(韓愈)의 <여위중행서與衛中行書>이다. 

겸손하기 그지없는 한유의 글과 같이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그런 사람 몇을 알고 있고, 조금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오래 사귈 수 있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하서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어찌 친구만 그러하겠는가? 이성이나 동성을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정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극히 위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어떤가? 가끔씩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칭찬을 잘 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내가 말로써 누군가를 칭찬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또는 눈으로 칭찬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라도 나는 자유롭기를 바라고 그 자유는 통제를 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믿기 때문에 내버려 둘 때가 더 많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겐 무관심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 하는 것, 그것이 손에 잡히듯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살아가는 것이 버거울 때가 더 많다. 앞으로 남은 생, 나는 어떤 것을 잘하며 살아야 할지, 살아도, 살아도 잘 모르는 것이 삶이다. 

/사진ㆍ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