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상상력 불러일으키는 전용환 조각가
백승종의 '역사칼럼'
조각가 전용환.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입니다. 그의 화집(도서출판 아지트, 2020년 간행)을 들여다 보면 저절로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예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눈은 달려 있으니까요. 감상의 말씀이 없을 수 없지요. 영감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전용환 선생의 작품을 바라보며, 제가 얻은 네 가지 단상을 아래에 간단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첫째, 전 선생님은 지난 20여년 동안 구슬 땀을 흘려, 멋진 작품을 많이 생산하셨는데요. 작품의 소재를 보면 화살과 사과로 압축되는 듯합니다. 앞서는 "화살의 시대"라 불러도 좋을 것 같고, 뒤에는 "사과의 시대"가 따라왔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화살"과 "사과"라니요. 문득 그 유명한 윌리엄 텔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이야기에서 화살은 용기와 정직, 신념과 지혜를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사과는요, 욕망과 갈등을 표상하기에 안성맞춤인과일이지요.
물론 이런 간단한 도식으로 전 선생님의 작품을 가두려 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나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 또는 비의식 가운데는 성서에 등장하는 이브와 아담의 사과가 자리하고 있고, 텔의 사랑과 용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과일 수도 있겠지요. 사과는 결국 이리 보든 저리 보든 욕망과 타락, 그리고 저주의 상징이 될 수가 있겠어요.
둘째, 전 선생님의 화살을 바라보면 우리 농악대의 상모 놀이가 떠오릅니다. 경쾌하고 신명나는 모습이죠. 그 역동성과 조화로움이 전 선생님의 화살을 정직과 구원이라는 서구적 도식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믿어요.
무궁무진한 변화의 화살, 어둠과 혼돈 속에 절대로 갇히지 않고, 언제든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고야 마는 한국문화의 강한 힘과 의지가 생각납니다. 전 선생님은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살의 조형미를 뿜어냈거든요.
셋째, 전 선생님의 화살을 자꾸 응시하노라면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특히 '현무도'가 눈앞에 어른거리지요. 아니지요, 선생의 작품은 현무도를 넘어서 음양오행의 변화무쌍함이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한꺼번에 표현한 듯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생태계의 팽팽하고도 아름다운 균형을 가장 단순하고도 멋지게 표현한 것도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전 선생님의 화살이 참 좋습니다.
넷째, "화살의 시대"와 "사과의 시대"는 전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 마디로, 둘 사이에 절대적인 단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집에 수록된 몇 개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어요. 화살과 사과는 표현 양식을 달리하면서도 하나로 묶이는 적도 있거든요. 여기서 보듯, 전 선생님은 이야기의 소재를 바꾸면서도 양자 사이에 내적 연속성 또는 승화의 과정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현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화려한 색채미, 이런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다양한 방향으로 수없이 뻗어나가는 선들이 멋집니다. 그들은 절제되고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우리 가슴에 다가옵니다.
그런데요, 이 모든 작품은 재질이 특이합니다.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금속이거든요. 이것을 작가가 직접 자르고 녹이고 휘고 붙인 다음에 색칠까지 입힌 것이라니요! 감탄을 넘어 저로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각에 문외한이라, 전문가들이 보시기에 저의 감상평은 좀 엉뚱한 것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전 선생님의 작품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요, 누구라도 자신의 느낌을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거겠지요.
부디 전용환 작가님이 건안하셔서 오래오래 지금처럼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