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앞에 오만한 도시는 결코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다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0-11-05     백승종 객원기자

생태 도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서 무엇을 배울까?

어느 여름날, 친구 울리히와 나는 프라이부르크의 향토음식점에 마주 앉았다. 이곳은 프랑스 국경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요리 솜씨가 좋기로 유명하다. 짐작하다시피 프랑스의 영향이다. 우리는 초여름에 밭에서 수확한 아스파라거스를 먹기로 했다. 거기에 크림소스를 얹은 햄이 일품이었다. 흑림에서 생산된 훈제 햄도 유명하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식후에는 흑림의 산딸기와 버찌 등으로 장식한 흑림 케이크를 먹었다.

그날 울리히는 나에게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의 높은 환경 의식이라든가, 단결되고 일사불란한 시민 행동이 물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도시가 실험적으로 운영한 몇 가지 정책에 대한 설명이 내 관심을 끌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첫째, 교통정책이 흥미로웠다. 지금은 한국의 도시들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프라이부르크는 세계 최초로 주택가에서 자동차 운행 속도를 제한한 곳이다. 시속 30킬로미터라는 속도제한이 이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시 당국이 시내로 들어오는 차량을 강력히 통제했다는 점이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심지로 개인 차량이 함부로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물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였다. 도시 외곽에 초대형 주차장을 건설해 주차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또한, 시내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전차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손쉽게 이용하도록 조치하였다. 시민들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시 당국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당국도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행 방안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관료적인 우리 사회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점이다.

둘째, 에너지 정책도 특별하였다. 이 도시는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열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다. 이를 위하여 매우 다양한 정책을 개발했다.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절전형 전구를 보급하기도 하였다. 1996년부터 시청에서는 에너지 절약형 ‘형광램프’를 개발해 모든 가정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조금이라도전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시 당국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전력 소모량이 대폭 줄었다.

에너지가 절약되는 주택 건설 방법도 연구했다. 1992년부터 프라이부르크시는 한 가지 법규를 제정했다. 공공건물은 물론이고 시 당국이 대여하거나 매각하는 토지에 건설되는 모든 건물은 에너지효율을 고도로 높이도록 강제하는 정책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자 프라이부르크시 전역에서 에너지 소비등급이 높은 건물은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또, 천연가스를 수입함으로써 공해가 발생하지 않게 유도했다. 가능하면 화석연료 소비를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 사회보다 약 30년 앞서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등의 문제에 눈을 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라이부르크는 대체에너지 생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풍력과 수력 등 자연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특히 태양광 활용에 적극적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도시는 독일 내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시에서는 그 점을 매우 중시했다. 오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결국 세계적인 태양광 중심지로 거듭났다. 지역의 자연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한다.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 태양광 발전 시설물을 설치하였다. 시청은 물론, 각종 학교와 교회 시설물에도 태양광을 설치하였다. 개인 소유의 건물 지붕이나 건물 앞면에도 태양광 시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시일이 흐르자 건물 외벽에 태양광 시설을 갖춘 건물이 너무 흔해 ‘태양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명한 ‘헬리오트롭’도 등장했다. 건축가 롤프 디쉬가 이 건물을 설계하였다. 원통형으로 된 3층 목조주택이다. 건물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종일 회전하게 설계되었다. 직경이 11미터이고, 연면적 200평방미터인 외벽은 3중 단열 유리이다. 겨울에는 유리면이 태양을 향하고, 여름에는 단열효과가 높은 벽이 태양열을 차단한다. 이 건물에서 생산하는 전력은 자체 소비량의 5~6배나 된다. 건물 자체를 하나의 발전시설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대체에너지를 열심히 개발한 결과 뜻밖의 부산물도 있었다. 시내에서 많은 시민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무려 1만여 명이 1,500개의 환경 관련 일터에서 직장을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연간 500만 유로의 가치가 창출된다. 생태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새로운 직장까지 이렇게 많이 생겼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게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시찰단이 이 도시를 찾아온단다. 프라이부르크는 돈방석 위에 앉게 된 셈이다. 도시 홈페이지에는 일본어는 물론 한글로 된 상세한 안다. 동아시아에서 그만큼 많은 방문객이 온다는 뜻이다.

셋째, 쓰레기 처리 정책도 모범적이다. 프라이부르크는 쓰레기 발생을 원천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들은 분리수거를 가장 앞서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쓰레기를 적게 만드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그에 더하여, 쓰레기를 소각하는 습관을 금지하였다. 쓰레기를 불태워 없애는 행위는 또 다른 공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태계의 순환을 되살리기 위해 프라이부르크는 숨은 지혜를 찾아 나섰다.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생활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특별한 하수처리 방법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빗물도 함부로 흘러가게 하지 않는다. 가정마다 빗물을 큰 통에 모은다. 이 물을 화초와 텃밭을 가꾸는 데 쓰기도 하고, 세탁용으로도 사용한다. 또는 빗물을 곧장 지하로 스며들게 하여 미래 세대가 사용할 지하수를 풍부하게 만든다.

넷째, 주택정책도 특별하다. 그들은 태양광 연립주택단지를 건설해서 에너지효율을 최대한 높였다. 이런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 보봉 주거단지일 것이다. 연면적이 38헥타르인 이 지역에 5,000여 명이 거주한다.

보봉은 본래 건축공동체이지만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시민자치 모임이기도 하다. ‘보봉 포럼’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 주민들은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 대기오염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었다.

쓰레기 발생량도 최소로 줄였고, 물 소비량까지도 최대한 억제하였다. 여기서는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콘크리트 사용을 근본적으로 금지했다. 게다가 주거단지 내에서는 자동차 통행도 전면 금지하였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보봉에 사는 대다수 가정은 자동차 없는 삶을 선택했다. 부득이 차량을 소유하더라도 주택가 입구에 주차해 둔다.

끝으로, 프라이부르크의 녹지정책도 놀라웠다. 프라이부르크는 과거 도시가 조금씩 팽창하는 과정에서 그라이잠 강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직선으로 바꾸었다. 어느 도시나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다시 강물의 본래 흐름을 되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 강폭도 넓히고 연안의 녹지도 확충하였다. 백여 년 동안 여러 곳에 설치했던 물막이 장치들도 모두 철거하였다. 그러자 강 본연의 물길이 되살아났다. 이제 곳곳에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에너지를 얻는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세심함이다. 수력발전소마다 경사로를 설치해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보장한 것이다.

아울러 도심에도 녹지 공간을 풍부하게 조성했다. 녹지는 도시 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해물질을 걸러준다. 또, 지하수를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녹지가 늘어나면 오염된 물을 처리하는 별도의 대형시설이 없어도 된다. 녹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다.

울리히는 나에게 생태 도시 프라이부르크의 강점을 과장되게 설명했을까. 아닐 것이다. 독일의 이 작은 도시가 개발한 여러 가지 정책을 공해에 시달리는 한국의 자치단체들도 큰 관심을 가지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남들이 추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잘 살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선별해서 실천할 일이다.

인간은 제아무리 훌륭한 문명을 건설한다 해도 결국 자연의 일부이다. 만약 이 사실을 망각하면 큰 재앙이 올 뿐이다. 자연 앞에 오만한 도시는 결코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다.

※출처: 백승종, <<도시로 보는 유럽사>>(사우, 2020)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