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재호야(焉哉乎也)’ ‘살아가면서 달리기’ ‘우물쭈물’
칼럼
오소리감투, 처음엔 무슨 벼슬 이름인줄 알았다. 오소리가 쓴 감투는 더욱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니‘오소리털로 만든 벙거지’라고 나와 있을 뿐이다. 허나 알고 보니 돼지 위장이다. 워낙 맛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진다는 게 오소리감투다. 넓게 펼쳐진 방석같이 생겼다고 해서 ‘방석창’이라고도 불린다.
식재료로서의 오소리감투는 오소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구수한 맛과 쫄깃한 식감 때문에 인기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이 오소리감투가 돼지 내장 중 위장부분의 쫄깃하면서 구수한 맛이 나는 부위의 명칭으로 쓰이게 됐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지만, 농촌 마을에서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돼지를 잡을 때, 주의를 소홀히 하면 맛 좋은 고기가 자꾸 어딘가로 사라져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게 된다. 마치 한 번 굴속으로 숨어버리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오소리처럼 그 누군가가 그 부분을 잽싸게 숨겨버리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서 돼지털을 손질하고, 내장을 씻고, 고기를 다루다 보면 자주 발생하는 분실 사고다. 항상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기가 일쑤인 그 부분이 바로 위장이었다. 돼지 한 마리에 위장은 한 개 뿐이므로 서로 차지하려 덤볐다. 그래서 자주 없어지면서 나타나지 않는 그걸 두고 오소리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 오소리라는 짐승이 굴속에 숨어버리면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 특성을 비유했다. 더구나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마치 벼슬자리를 다투는 모습과 흡사하여 ‘감투’라는 별칭이 더 붙었지 싶다.
그런데 오소리감투가 권력의 상징으로 변질돼 ‘주관하는 자가 둘이 있어 서로 권력을 다투는 것’을 가리켜 속담에 ‘오소리감투가 둘이다’라고 했다.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 둘이라, 서로 아옹다옹함을 가리킨다. 챙겨놓은 오소리감투 나누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푼다.
‘언재호야(焉哉乎也)’는 주연급 조연 역할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숨 한 번 쉬고 ‘집우 집주’ ‘넓을 홍 거칠 황’ 으로 시작되는 게 『천자문』이다. 그런데 마지막은 어떻게 끝날까. 아다시피 바로 ‘위어조자 언재호야(謂語助者 焉哉乎也)’다. 어조(語助)라고 일컫는 글자에는 언(焉), 재(哉), 호(乎), 야(也)가 있다는 뜻이다. 문장의 토씨라고 일컫는 언, 재, 호, 야는 그야말로 말의 뜻을 도와 말을 만드는 데 쓰인다. 실질적인 뜻이 없고 다만 다른 글자의 보조로만 쓰인다. 그런데 이 보조자들의 존재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글귀를 성립시키고 말을 만들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글자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사 이치가 그렇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 주연들만 있던가. 반드시 조연이 있다. 때로는 조연들이 감칠맛 나는 역할로 스토리를 더 맛깔스럽게 하지 않던가.
어조사는 허자(虛字), 허사(虛辭)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 허(虛)자가 들어갔을까? 아무 역할이 없어서? 아무 구실을 못해서? 그렇지 않다. 그저 뜻이 없거나 의미를 갖지 않아서다. 그러나 그 역할은 막중하다. 문장을 이루는 데서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언, 재, 호, 야 이들을 빼면 문장의 완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답답해진다. 몽롱해질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글자다. 한자에는 조사가 매우 많지만 대표적으로 네 자만 적었다. 조사(助詞)가 아니라 조사(助辭)라는 점은 유념하자.
한말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창강(滄江) 김택영은 어조사를 제대로 쓸 때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말한다. 창강은 “지극히 묘한 신비한 이치가 어조사에 있다”며 『상서』나 『주역』보다 『사기』의 문장이 뛰어난 것은 사마천이 다양한 어조사를 적재적소에 구사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언재호야’는 마무리를 장식하는 구절이라고 해서 서화가들은 낙관에 쓰는 인장에 ‘언재호야’를 새기기도 한다.
『천자문』은 주흥사(周興嗣)가 만들었다. 중국 양(梁)나라때 무제(武帝)가 신하 주흥사에게 시켜 만든 책이다. 어느 날 무제는 주흥사에게, 4글자씩을 한 구절로 묶어 모두 250개의 문장을 완성하도록 명했다.
주흥사는 1000개의 한자 중 992개 까지는 어찌어찌 문장을 만들어냈는데, 마지막 남은 8개 글자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끙끙 앓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절실하면 꿈에 계시가 나타나는가. 마침 꿈속에서 나타난 한 도인이 귀띔을 해줬다. “다른 글자를 돕는 글자, 즉 어조사에는 언(焉)과 재(哉)와 호(乎)와 야(也)가 있다”고.
이렇게 해서 비로소 탄생한 것이 『천자문』의 마지막 문장 ‘위어조자 언재호야’다. 꿈속에 도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주흥사는 이미 죽은 몸이 됐을 터이다. 당시 주흥사는 무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혀 죽음의 형벌을 기다리는 절박한 신세였다. 그러나 주흥사의 학문을 아까워한 무제가, 만약 하룻밤 동안에 천자를 완성하면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주흥사는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죽을힘을 다해 문장을 지었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 혹은 백두문(白頭文)이라고도 부른다.
사언고시 250개는 아주 그럴싸하다. 인간훈, 처세훈, 자연이치, 우주 섭리 등을 담았다. 고루하고 인순고식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그처럼 ‘생각의 틀’을 짜낸 주흥사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다.
뜻 없는 글자가 뜻을 가진 글자를 좌지우지
‘유곤독운 능마강소(遊鯤獨運 凌摩絳霄)’같은 구절은 참 마음에 끌린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 이야기를 언급한 대목이다. ‘(바다에) 노니는 곤(鯤)어는 홀로 움직이다가 솟구쳐 올라 붉은 하늘에 이른다’는 뜻이다. 곤(鯤)은 장자가 말한 북명(北冥)이라는 어둡고 끝이 없는 북쪽 깊은 바다의 물고기. 그 길이가 몇 천리에 이르는데, 이게 놀 때에는 홀로 푸른 바다에서 움직인다. 바로 큰 뜻을 품은 선비가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고 있는 모습을 빗대 말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일컬어 ‘유곤독운’이라 했다. 오랜 세월 동안 깊은 바다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곤어가 변해 새가 되면 이를 붕(鵬)이라 한다. 그 날개 길이가 수천리에 이른다. 등에 푸른 하늘을 지고 한 번에 솟구쳐 9만리 장천을 날아오르니, 바로 이것이 ‘능마강소’라. 즉 ‘솟구쳐 올라 붉은 하늘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크게 출세하거나, 조용히 실력을 갈고 닦는 것에 각각 때가 있음을 비유한 대목이다.
천자문을 샅샅이 살피면 이런 재미난 얘기가 많다. ‘천지현황’은 『주역』 건괘 문언에서 따온 것이다. 이와 대를 이루는 ‘우주홍황’은 『시경』과 『법언』의 어휘를 빌려 왔다. 이렇듯 천자문의 글귀는 옛 문헌에서 차용한 게 많다. 그런데 이를 간단히 여겨 ‘별 보잘 것 없는 글’이라니.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다.
조선시대 최고 학자 중의 한 분인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선생 일화를 보자. 고봉이 다섯 살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맨 첫 문장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을 가지고 일곱 살까지 배웠지만 모른다고 했다. 화가 난 서당 훈장은 소를 끌어다 기대승 앞에 세워놓고 고삐를 세게 잡아 위로 쳐들며 ‘하늘천’ 하고, 아래로 세게 잡아 내리며 ‘따지’ 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훈장이 고삐에서 손을 떼고 나서, ‘하늘 천’ 하니까 소가 머리를 위로 올리고, ‘따지’ 하니까 머리를 아래로 내리는 것이었다. 훈장이 기대승에게 말하기를 “이것 봐라! 소 같은 짐승도 몇 번 가르치지 않아서 ‘하늘 천’하면 머리를 하늘로 올리고 ‘따 지’하면 머리를 땅으로 내리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사람이면서 ‘천지현황’을 삼 년이나 가르쳤는데도 모르고 있으니 소만도 못하구나” 라며 꾸짖었다.
그러자 기대승은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독(三年讀)하니, 언재호야(焉哉乎也)를 하시독(何時讀)고” 하며 글을 읊었다. 즉 “첫째 줄 ‘천지현황’을 삼년 읽었으니 맨 끝의 ‘언재호야’를 어느 때나 읽을고”라는 뜻 아닌가. 기대승은 이미 천자를 다 외우고 있었던 거다. 훈장은 기대승이 글 읊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아, 너는 벌써 천자를 다 읽고 있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너를 소만도 못하다고 했구나” 하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왜 기대승이 천자를 다 읽고 있으면서 천지현황에 대하여 3년 동안이나 그토록 모른다고 했을까? 천자문을 배우면서 글자만 외웠던 게 아니라 ‘천지현황’에 담긴 뜻을 알고자 했던 것 아닐까. 이 ‘천지현황’은 비록 네 글자이지만 글을 많이 배운 어른도 알기 어렵다. 무조건 외우는데 그치지 않고 깊은 이치를 알려고 했던 어린 기대승의자세야말로 공부하는 기본이 아닌가. 그러기에 뒷날 훌륭한 학자로 성장했던 것은 아닌지.
아무리 996자를 알아도 마지막 네 글자 ‘언재호야’를 모른다면? 글을 읽을 수도 없을 뿐더러 쓴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문장의 완성은 조사로만 가능하니, 결국 문장은 조사가 권력을 쥐고 있다. 뜻 없는 글자가 뜻을 가진 글자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디 문장에서만 그러랴. 인생에서도 그러지 아니한가. 글에서든 삶에서든 힘의 원리는 매 한가지다.
“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 달린다”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의 ‘Running & Being’이란 책이 있다. 2003년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해 러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여기서 굳이 ‘러너’라고 부른 것은 ‘주자’도 왠지 낯설고 ‘뛰는 자’나 ‘달리는 이’는 더 어색해서다. 달리기나 마라톤에 빠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기를 좋아한다. 결코 영어 사대(事大)나 에그조티즘이 아님을 양지하기 바란다. 김연수는 그책 제목을 ‘달리기와 존재하기’라고 이름 붙였다. 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그렇게 했으리라.
그러나 최용철 교수(전북대 윤리교육과)는 ‘살아가면서 달리기’라고 이름 붙였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왜냐고? ‘달리기’와 ‘존재하기’란 등위로 놓이는 것 보다는 ‘달리기’를 포용하는 ‘살아가기’로 개념을 세웠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에서다. ‘&(and)’의 용법을 잘 꼽아보면 얼마든지 그런 답을 찾을 수 있다.
쉬언은 비범한 남자다.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이자 작가, 러너,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 이상이다. 그는 철학자이며 그가 쓴 글의 대부분은 시적이며 신비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마흔 네 살에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의사 노릇을 접고 학창시절에 즐기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달리기 선수라는 목표는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비이성적 선택이었으나 그는 ’이 말도 안되는‘ 일에 무조건적으로 몰입했고, 그 결과 새로운 몸과 삶을 발견하게 됐다. 달리기를 시작한 5년 뒤 그는 50대(代 ) 1마일 달리기 세계신기록을 세웠으며(4분47초), 예순 한 살에 마라톤 3시간 1분이라는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로버트 립스터는 말했다. “더 오래 살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 달린다는 것. 달리기 자체가 삶에서 더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자신감을 갖고 명석해지기 위해 달린다는 것. 그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것들이다.”
세상에 러닝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은 많다. 러너는 달리는 일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다. 모든 러너는 무슨 이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끝나는 때가 언제인지는 알지 못한다. 여기서 달리기(러닝)를 ‘살아가기’로, 러너를 ‘사람’으로 치환해도 이치는 마찬가지다. 자, 이제 최교수의 견해에 공감되지 않는가.
“인생은 반환점 없는 마라톤, 후회 없는 마무리 위해 최선 다해야”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은 결국에는 하나씩 돌려받기 시작한다. 삶에서 얻는 것이 점점 늘어난다. 즐겁게 달리는 방법, 자유로움을 느끼는 러닝, 꼬박꼬박 달리는 일이 자기 삶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깨닫게 된다. 달리기는 인간이 아무런 도구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운동이다. 그러기에 달리기와 마라톤에 대한 명언들은 당신이 러너가 아니라면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쉬언의 책은 “러너들은 한 번은 읽어야 할 철학적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삶이라는 경기에 도움이 되는 지침을 찾는 이들에 필독서”라는 평(조 헨더슨 <러너스 월드> 편집자)을 들었다.
쉬언은 1993년 전립선암과 7년간 ‘투우사처럼 사우고 난 뒤’ 일흔 네 살의 나이로 운명했다. 그가 죽은 뒤 미국 장거리 달리기 명예의 전당에선 쉬언을 기념해 ‘조지 쉬언 언론상’을 제정했으며 그는 첫 수상자가 됐다.
“조지 쉬언은 달리는 구루(guru: 혼자 힘으로 혜안[慧眼]을 얻은 정신적 스승이나 지도자)이자 달리기 철학의 아버지다. 그의 가르침 덕분에 우리는 달리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달리기에 대한 명언은 부지기수다. 그 중 단 하나만 기억하고 싶다면? 이것을 기억하라. “인생은 마라톤이다!”
하지만 숱한 명언들을 하나씩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반환점 없는 마라톤이라 할 수 있지요. 되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중요하지요.”(故 손기정)
“내가 잘 뛰는 것은 타고났다기 보다는 노력했기 때문이다.”(이봉주)
“나에게 마라톤은 부작용 없는 약과 같아요. 언제나 울적할 때 달리면 웃으며 집에 올 수 있었으니까요. 늙었다고 주저하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도전해야 해요.”(페냐 크라운[Pena Crown]: 미국의 최고령 여성 마라토너)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에밀 자토펙[Emil Zatopek]: 체코 마라토너)
“기적은 단 한번의 훈련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는 훈련은 물리적인 변화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한다. 눈비 오는 날이나 심한 피로가 느껴지는 날에도 나는 달린다. 자신의 의지가 문제되지 않을 때 기적은 일어난다.”(에밀 자토펙)
이 명언들에 공감하는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맡긴다.
전혀 ‘우물쭈물’하지 않았던 작가의 ‘우물쭈물’이란 묘비명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세상사람 입줄에 그이만큼 오르내린 묘비명도 없을 듯싶다. 1950년. 95살 나이에 임종을 앞둔 날 본인이 직접 남긴 말을 묘비에 새겨 달라고 했고, 그의 유언을 받아들여, 묘비에 이렇게 새겨졌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시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번역이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이다. 또는 이렇게 번역돼 있기도 하다.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번역이 괜찮은가. 글쎄올시다. 좀 더 쇼의 뜻에 근접한 것이 “내가 비록 충분히 어슬렁거렸다 하더라도 이같은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또는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아닐까. 이를 풀어보면 “내가 세상을 얼쩡거리며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와 같은 일(죽어 땅에 묻히고 묘비가 세워지는)이 언젠가는 올 걸 알고 있었다.” 라는 뜻이겠다. 이것이 가장 상식적인 해석이라고 본다.
평생 입과 글로 먹고 산 사람이다 보니 좀 더 유머러스하게 푼다면 “내가 비록 오래 어물쩡거리며 살긴 했지만 이따위 것(죽음)이 결국엔 닥칠 것을 알고 있었어.”쯤 될까. 아마 이게 쇼의 뜻에 가장 근사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하의 쇼가 쓴웃음 짓게 할 일들이 계속 반복 됐다. ‘우물쭈물’이 문제였다. 그의 묘비명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번역돼 우리의 입에 꾸준히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화석처럼 굳어져 우리나라 신문방송 매체에서 거듭거듭 그렇게 쓰였다. 어느 이동통신사의 광고 카피로 묘비 사진과 함께 사용돼 더 널리 알려졌다.
누가 번역했는지는 모른다. 말이나 행동을 망설이고 머뭇거린다는 우리말 ‘우물쭈물’. 이에 해당하는 영어 말이 있을까? 번역자의 의역이 지나쳐 기막힌 창작으로 비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쇼는 전혀 이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을 거다. 기지와 역설로 가득찬 그의 언어 구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묘비명의 번역문은 전혀 그답지 않다. 항상 자기과시가 남달랐던 쇼는 죽을 때까지 쾌활한 기지를 발휘해 줄곧 세인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성깔과 강단 있는 삶을 살았던 그가 ‘우물쭈물’ 운운하는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그는 실제로 우물쭈물한 사람도 아니었다. 19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그는 단호하게 영예를 거부하면서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고서는 노벨상을 발명(착안)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독설을 날렸을 정도니까. 하지만 부인이 ‘아일랜드에 대한 경의’라며 간청하자 수상을 수락했다. 다만 상금은 기부했다.
영어칼럼니스트 이윤재는 “비문이 오역된 것은 영어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며 “around는 전치사적 부사로 다음에 the tomb이 감추어져 있다”고 해석했다.(출처: 고품격 영어상식) 그는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 머물 만큼 머물다 보면 이렇게 묻힐 줄을’로 번역해야 맞다”면서 “삶은 무덤 근처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주장했다.
한 유력 신문은 “내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 생길 줄 알았다니까”가 더 적확한 것으로 보여 이에 바로잡는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인천아시아육상대회 공식통역을 맡았던 김영덕은 “버나드 쇼는 이 묘비명을 쓰면서 결코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나 우유부단함에 대한 회한을 토로한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그는 먼 길을 가는 길손이 주막이나 여관에 잠시 들러 여장을 풀듯 인간은 지구라는 이 행성 (this planet)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그래서 around 다음에 ‘this planet’이 생략되었다고 본다”면서 “무엇보다도 이 뛰어난 언어 장인의 묘비명 핵심은 후반부 ‘something like this’에 있다. 이 대목을 ‘이런 꼴’ 정도로 번역하는 것은 스스로 중학생 수준의 영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며, 버나드 쇼의 높은 정신세계를 폄훼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버나드 쇼는 평범한 구어체 영어를 매우 비범하게 사용함으로써 저 높은 우주 차원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절묘하게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라는 게 김영덕의 견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전제로 생각해보자. 버나드 쇼가 과연 인생을 우물쭈물 방황하며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쓰라린 회한을 품은 채 죽었을까. 그렇게 단정짓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일생을 압축한 단 하나의 문장을 탄식과 회한 일변도로 본 것은 단견이다. 이런 혼란이 빚어진 것은 전적으로 번역의 문제이다. 버나드 쇼의 원문은 우리나라에서 애초에 다르게 번역될 수도 있었다. ‘내 언젠가는 이 꼴 날줄 알았지’ 또는 ‘오래 살다가 내 이런 꼴 당할 줄 알았다.’ 정도로 번역되는 것도 하나의 해석이다.
쇼는 스스로 생각해 쓴(말한) 묘지명에 자기가 견지해온 사상을 위트로서 표현했을 것이다. 또한 ‘이럴 줄 알았지’에서의 ‘알았지’는 영어 원문으로 knew 즉 과거형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알았다는 거다. 지금 후회한다는 식으로 편협하게 쓰여졌다기 보다는 인생의 묘미와 허무 등등을 이미 꿰뚫고 있다고 풍부하게 해석될 만하다. 그의 묘비명이 쉽게 해석될 성격은 아니지만 일부가 이렇게 해석되어도 오류는 아닐 듯하다. 그의 촌철살인은 세상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겨냥했을 수 있다. 그렇듯 버나드 쇼는 자신의 최후에도 정체성에 맞는 걸작의 글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 스타일의 문장으로 삶을 장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뜻을 원문의 뉘앙스를 고스란히 살려 번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말한 사람의 의도를 헤아린다면 멀어도 한참 먼 오역은 피할 수 있으리라.
어디 번역만 그렇겠는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많이 아픈 환자를 문병 갔다. “괜찮아?”라고 물었는데 “괜찮아.”라고 답한다. 정말로 괜찮아서 그리 답했는지, 아니면 인사치레로 그리 한 것인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걸 고지식하게 이 사람 괜찮구나 하고 단정해버린다면 소통과 공감은 거기서 끝장난다.
/<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