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잠들 때 괴물은 깨어난다”

전대식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의 아름다운 퇴임을 보며 

2020-11-01     박주현 기자

“똑바로 말하자. 사장이 ‘실천해 왔다고 자부한다’는 공정보도는 부산일보 전체 구성원들이 만든 것이다. 온갖 부담에도 공정보도위원들이 편집제작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기자들과 사원들이 각자 위치에서 저널리즘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모인 것이다. 그런데 공정도보 미명 아래 배우자 출마를 희석시키려는 사장의 의도가 개탄스럽다.”

부산일보 노조가 제작한 '안병길 사장 퇴진 투쟁-159일의 기록 ' 중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언론사 사장 부인의 지방선거 출마에서 촉발된 ‘부산일보 공정성 및 편집권 독립 투쟁’은 결국 159일의 길고 긴 사장 퇴진 투쟁으로 이어졌다. 2018년 5월 2일 안병길 부산일보 사장 부인 박 모(57)씨가 6·13 지방선거 자유한국당 부산시의원 후보로 확정되면서부터다.

당시 신문사 노동조합(노조)은 즉각 “공정보도 훼손 우려가 있다”며 ‘사장은 답하라’는 성명을 내면서 투쟁에 나섰다. “언론사 사장의 부인일지라도 현실 정치에 참여할 경우 공정성 논란을 자초하는 것은 물론 독립 정론지 위상을 훼손하고, 편집권 독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신문사 사장 부인의 시의원 출마로 촉발된 159일의 투쟁

전대식 노조위원장의 사장 퇴진 단식 투쟁 모습

더욱이 사장이 부인의 문자 메시지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문사 내에선 사장의 퇴진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사장 가족에겐 가문의 영광일지 모르지만, 부산일보 구성원들의 심정은 참담하다”며 “사장 배우자 출마로 왜 우리가 부끄러워야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노조의 사장 퇴진 요구 명분은 분명했다. '보도 공정성 훼손 및 편집권 침해'를 우려하며 시종일관 한 목소리로 퇴진을 외쳤다.

노조는 10월 2일 파업안을 가결한 이후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결국 안병길 사장은 자진 퇴사 의사를 밝혔다. 2018년 10월 8일 김삼천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부산일보 사옥 앞에서 7일째 단식 투쟁 중인 전대식 노조 위원장을 찾고, 안병길 사장이 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투쟁 159일 만이다. 

투쟁 159일, 노조위원장 단식 7일만에 사태 일단락, 그러나... 

그런 후 사장 부인 박 모씨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퇴사한 안 사장은 2020년 총선에서 부산 서구 동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참으로 집요한 권력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부산일보 노조가 제작한 '안병길 사장 퇴진 투쟁-159일의 기록' 중에서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허위사실 발언과 명예훼손 혐의로 신문사 노조는 안 전 사장을 검찰에 고소·고발하면서 법적 다툼이 계속 이어졌다.

언론공공성지키기 부산연대는 지난 9월 4일 ‘안병길 후보의 ’적폐놀음‘, ’좌파 노조‘ 망언 규탄한다’는 성명을 통해 “32년 언론사에 몸담았던 것을 대표 경력으로 내세우는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후보가 언론의 공정성, 편집권 확보 운동을 매도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지역사회에 파문이 컸다.

신문사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편집권 독립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다시 외쳤다. 159일 동안의 투쟁, 단식까지 불사하며 투쟁을 이끈 전대식 노조위원장과 단결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 전국 언론노조 지부들의 강고한 연대, 지역 시민사회의 지원이 이끈 투쟁의 성과에 많은 언론인들이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조합원들이 2018년 7월 16일 부산일보사옥 앞에서 안병길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언론노조가 없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값진 투쟁의 결실과 편집권 독립을 위한 노력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는 슬픈 현실이다. 특히 한 지역에 10 곳이 넘는 일간지들 중 노조가 단 한 곳도 없는 전북지역 언론인들에게는 먼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언론이 언론다워지려면 언론인들이 깨어 있어야"

부산일보 노조가 제작한 '안병길 사장 퇴진 투쟁 159일의 기록'

그러나 부산일보 구성원들, 특히 노조의 이러한 투쟁과 노력은 오늘날 부산일보가 서울의 과점신문들과 경쟁 대열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하는 큰 원동력이다. 

서울 외 지역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와 영향력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음은 바로 이러한 구성원들의 당당한 언론 본령의 수호 의지가 뒷받침이 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최근까지도 부산일보 노조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전 사장과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를 놓고 법적 다툼을 이어왔다. 검찰은 안병길 의원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지만 신문사 노조는 편집권 침해, 공정보도 훼손은 신성하고 고유한 가치로 여기며 누구도 감히 사적으로 악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경히 표방하며 꿋꿋이 사수하는데 모두가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언론 본령의 가치를 지키며 투쟁해 온 부산일보 제23대 노조 전대식 위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다시 편집국 기자로 조용히 돌아가면서 무거운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10월 31일로 임기를 마치며 ‘편집권 독립! 공정보도 수호! 갑질결영 철폐-안병길 사장 퇴진 투쟁 159일의 기록’이란 제목의 책자에 임기 중 일어난 일들을 담아 다음 노조에 바통을 넘겼다.

“비열하며 참담한 구태를 언론인들이 나서서 청산해야 할 때”

전대식 위원장의 친필 

"한 지역언론 노조의 의미심장한 투쟁을 담았습니다. 살펴봐 주십시오"

편집권 독립을 위한 159일의 힘든 투쟁과 노력의 과정들이 오롯이 담겨있는 책의 첫 장에 그는 이런 문구를 남겼다. 읽는 내내 용기와 실천에 가슴 뭉클했고 한편으론 부러움이 교차했다.

부산일보 구성원들과 같은 폅집권 독립을 위한 실천과 노력은 고사하고 노조 설립에 관한 의지마저 꺾어 버리는 전북지역 일간지들의 경영진과 사주들, 그리고 그들의 수족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종사자들에게 과연 ‘편집권 독립’이란 무슨 의미일까? 이내 오싹한 생각이 들게 한다.

부산일보 노조가 제작한 책자에서 ‘안병길 사장 퇴진 투쟁 159일은 스타킹(Star+King) 제작 기간’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해 준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라면 신문사 사장을 지낸 국회의원과의 법적 투쟁도 마다하지 않고 혼연히 하나로 뭉치는 신문사 구성원들이 마냥 자랑스러운 대목은 또 있다.

"우리가 잠들 때 괴물은 깨어난다"며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는 근면히 투쟁하자'란 구호를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하니 마냥 부럽고 존경스럽기만 하다. “언론이 언론다워지려면 언론인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 성찰하며 반성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전대식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의 아름다운 퇴임 

전대식 부산일보 전 노조위원장

임기를 마치는 전대식 위원장은 “지금도 어디선가 어떤 언론인은 펜의 영향력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제 영달을 위해 후배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고, 자기 처신을 위해 저널리즘을 농단하고, 뼛속 기회주의를 숨긴 채 겉으론 민주주의자로 활개치고 있을 것”이라며 “비열하며 참담한 구태를 이제는 언론인들이 나서서 청산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다시 취재현장으로 돌아가 언론의 시대적 소임과 저널리즘의 막중한 역할을 새기면서 한 글자 한 글자씩 엄중하게 쓰면서 신세를 갚아나가겠다”고 밝혔다.

2016년 11월 제23대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직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온 전 기자는 2000년 신문사에 입사한 이후 사회부, 탐사보도팀, 멀티미디어부, 경제부 등에서 활동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기자협회 부산일보 수석 부지회장,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의장 등의 중책을 맡아 신문사 내부는 물론 지역언론의 문제 해결에도 적극 앞장서 왔다.

그의 노력을 계기로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의 수호, 갑질경영의 철폐가 전 지역언론으로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