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 하도 많은 세상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닥터 조홍근의 당뇨병 거뜬히 이겨내기>가 교보와 인터파크 건강서 부분 각 4위에 올랐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서점에서 최상위권을 휩쓰는 정선근 선생님은 대학 3년 선배신데, 하마터면(?) 우리 회사에서 책을 낼 뻔한 사연이 있다.
2014년이었다. 오십견으로 캐나다에서 1년 가까이 고생하면서 당시 환율로 1주일에 20만원씩 꼬박꼬박 물리치료사에게 갖다 바쳤다. 오십견은 치료하지 않아도 2~3년 지나면 낫는 병이지만, 통증이 너무 심하고 잠을 못 잘 정도라 도리 없었다.
그러다 한국을 들어갔는데, 서울대학병원에 갔다가 대학 동기와 딱 마주쳤다. 유능한 정형외과 의사인 그는 인사도 나누기 전에 자세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즉석에서 진찰을 해보고는 이렇게 심한 오십견은 처음 본다며 치료를 권했다. "정형외과에 가면 한번에 팍 꺾어줄 끼고, 재활의학과에 가면 살살 늘려줄 걸세. 낫는 건 비슷해!" 정형외과는 겁나서 못 가고, 재활의학과를 갔다. 그때 봐주신 분이 정 선생님이었다.
증상 듣는 데 1분, 진찰 30초 후에 척! 답이 나왔다. "목 디스크가 심해서 오십견이 왔구만. 내가 봐도 아주 심하니 시술 받고 가요!" 어깨 관절에 식염수를 주사하는 시술이었다. 놀랍게도 딱 한 번 만에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천안 처남집에 내려가던 차 안에서 기적처럼 팔이 머리 위로 올라가던 순간이 아직도 선하다. 이럴 걸 1년이나 적잖은 돈을 들여가며 그 고생을 한 것이 억울했다. 다시 찾아가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며, 우리 회사에서 낸 책을 기념으로 드렸다. "뭐라고, 출판사를 한다고?"
왜 그리 놀라시나 했더니, 사기꾼이 하도 많아 당신이 허리에 대한 책을 한 권 썼는데 내주겠다는 출판사를 못 구해 고생한 이야기를 하셨다. "A 선생님의 소개로 겨우 B사에서 내주기로 했는데, 이건 뭘 하는지 1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어요!" 그러면 내가 내드리겠다고 했다. "지금 원고를 뺄 수는 없고, 다음 책을 내게 되면 강 선생에게 부탁하리다!"
그때만 해도 고마운 선배님께 신세를 갚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백년허리"가 나와 대히트를 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 되고 보니 다음 책은 우리 회사에서 내시란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정 선생님과 친한 선후배들이 얘기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사장이 한국에 있지도 않은 초소형 출판사 주제라 지인들에게도 우리 회사에서 책 좀 내란 소리를 못하는 형편이었다. 흥행이 보장되는 지인도 몇 있었지만, 그런 '작가님'을 모시면 하다 못해 북토크라도 열고, 가끔 밥이라도 사야할 것 아닌가! 내가 할 도리를 다할 수 없다면 서로 불편한 노릇일 터였다.
어쨌든 정 선생님은 책 세 권이 모두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깝냐고? 천만에! 온갖 사이비 책들이 난무하는 건강서 분야에서 양서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 출판인으로서 기쁘고, 선배 찬스를 쓰지 않고도 살아 남아 나름 색깔 있는 회사를 꾸리고 있으니 내 자신에게 기쁘고, 너무 빨리 성공하면 초심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으니 하늘의 좋은 섭리가 기쁘다.
요즘은 의대 교수도 정년 후 20년을 뭘 하나 고민하는 시대다. 정 선생님처럼 성공하면 노후에도 할 일이 있으니 좋고, 인세는 평생 들어오므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 갈고 닦은 지식으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양서를 펴냈다는 자부심이 크다.
이런 사례를 거울삼아 의대 교수들이 내실 있는 건강서를 많이 써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글솜씨가 없거나 구성이 떠오르지 않아도 문제 없다. 강모라고 유능한 의학 에디터를 찾으면 된다. 하다 못해 인세도 다른 회사보다 많이 준다는 후문이 있다, 쿨럭!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