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달라지지 않은 국회
'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권두언
1
"국회의원은 시민과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대표하는 직업입니다. 국회의원에게 특권을 준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죠. 우리에게 특권이 있다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회가 ‘동물국회’, ‘폭력국회’란 소릴 들을 때 북유럽 국가 스웨덴 국회를 특집으로 지난 6월 6일 소개한 영국 BBC 방송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보좌관과 차도 없이 자기 돈으로 커피 마시는 스웨덴 국회의원들’이란 제목부터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금전적으로 큰 보상을 받으며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도 일은 별로 하지 않는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스웨덴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하는 일'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금욕주의자’로 불릴 정도다.
풍족한 활동비나 여러 가지 특전은 꿈도 꿀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쓰는 게 스웨덴 국회의원의 덕목이다. 스웨덴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운전기사는 물론 업무용 승용차는 지원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무노동 유임금인 우리 국회와는 전혀 다르다. 스웨덴은 기초의원들부터 무급 노동이 정착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정치적 대표를 맡는 게 자신의 경력을 쌓는 것의 일환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 의회에 참여하는 대표 중 94%는 무급이다. 파트타임 혹은 풀타임으로 급여를 받는 정치인들은 행정위원회에서 일하는 정치인들뿐이다. 선진국이란 소릴 그냥 듣는 게 아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노력과 희생, 봉사정신을 전제한 것이란 점을 각인시켜준 대목이다.
우리에겐 꿈같은 소리로 들린다. 촛불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내년 4월 전국 총선을 앞두고 그나마 시민사회진영이 ‘국회개혁 원년’을 선포하고 선거제도 개혁,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 정치제도 개혁운동에 돌입한 것은 정치개혁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국회개혁 없는 정치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 내년 총선이 ‘정권 심판’, 또는 ‘특정당 심판’구도로 흘러갈 경우 현재의 정치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쟁만을 일삼은 모습이 또 선거판에서 재연된다면 유권자들이 선거를 외면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선거 후 유권자들은 또 정치인들의 머슴이 될 것이다.
하승수 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는 한 토론회에서 “내년 총선이 ‘국회개혁의 원년’이 되려면 선거판을 촛불의 힘으로 크게 흔들어야 한다”며 “그 시작은 현재 국회에서 패스트 트랙으로 올려진 선거제도 개혁안이 통과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해 주목을 끌었다. 하 대표는 대안으로 “국회 자체가 ’적폐‘이므로 이런 국회를 놔둔 채로 한국사회가 인간답게 살 수 있고 미래가 있는 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국민이 살려면 2020총선에서 국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개혁과 정치개혁 차원에서 선거제도 개선, 국회의원 특권 폐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유권자들이 나서서 추진하지 않으면 패스트 트랙도, 국회개혁도, 나아가서 정치개혁도 요원할 것이다.
입만 열면 “민의의 전당,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라고 외쳐대는 국회가 그동안 보여준 행태를 보면 선거만 끝나면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여야 간의 정쟁으로 국회가 민의의 전당 문을 닫았다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 그 때서야 슬며시 문을 여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20대 국회는 더욱 심했다. 지난 4월 5일 이후 118일 만인 8월 1일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겨우 열렸다. 입법기관의 의무를 저버린 채 내년 총선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라 국회 주변에서는 ‘20대 국회는 이미 끝났다’는 자조가 흘러나올 정도다. 20대 국회 들어 이때까지 처리한 법안 비율은 27.90%로 역대 국회 중 최저 수준이다. 특히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울 때 국회가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비롯해 민생을 더 적극적으로 챙겨야 하지만, 여야가 누가 더 국회를 엉망으로 만드느냐 경쟁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여야는 민생은 제쳐두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싸움만 했다. 사실상 국회가 파업 내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사실상 국회가 파업 내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일반 회사라면 4개월분 월급을 받지 못하는 무노동·무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었겠지만, 특권을 지닌 국회의원들은 세비 등 모든 것을 다 챙겼다.
반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제20대 국회 초반인 2016년 논의된 이후 진척이 없다.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국회의원 수당법’ 개정을 통해 의원이 배우자 또는 4촌 이내 혈족과․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임용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임용이 여론의 질타를 받은 직후였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과 유인태 사무총장은 정보공개 확대와 해외출장심사 강화 등을 추진했으나 흐지부지한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일하지 않는 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올 상반기 동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회의원에게 최저시급을 지급해야 한다', '국회의원도 무노동 무임금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30건이나 올라왔다. 제 역할을 못 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고액연봉을 받고 있다는 국민적 평가이자, '식물국회'라는 비판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야말로 정쟁으로 허송세월만 보내며 세비만 꼬박꼬박 받고 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고 했지만, 국회의원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이 된 지 오래다.
2
국회법에는 2·4·6·8월 임시국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선 모두 개의한 적이 단 한 해도 없다. 특히 2월 임시국회는 처음으로 열리지 않았고, 뒤늦게 열린 6월 임시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 처리도 못하고 종료됐다. 정당 간 극단적 대립으로 국회가 파행되며 본연의 업무인 법안심사·의결, 예산심의, 행정부 견제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회는 2014년부터 5년째 국가기관 중 국민 신뢰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회가 일하지 않고 여야 정쟁이 지속되며 시급한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 국가로 4년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른다.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고, 입법부로서 민생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세비는 이런 활동을 위한 급여라 할 수 있다. 만약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우리 국회는 현재까지 관련된 법안이 없는 상태다.
국가단위 주민소환제가 선진국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은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국회에서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을 숙의하지 않고, 정치적 반대자를 국민소환운동으로 압박하는 용도로 활용돼 정치적 교착상태가 심화될 수 있어서다. 정치적 소수자들이 민주적 결정인 다수결에 따르지 않고 지속적인 소환 발의를 통해 다수파에 대한 발목잡기를 할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3건의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도 주민 15% 이상의 서명으로 소환 청구가 가능하도록 규정해 소환이 남발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국민소환제 도입 필요성은 수차례 제기돼 왔다. 국민소환제의 부작용보다 '무노동 국회'의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회의원도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청원이 21만 명의 동의를 얻으며 주목받았지만 정작 당사자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의 활동에 대단히 부정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지만 말이다.
청원인은 "국회의원의 권한은 막강하고, 견제 받지도 않는다. 자정 능력도,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감도 없다"며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뻔뻔하게도 국민 혈세는 꼬박꼬박 챙긴다. 국민이 믿고 선출했지만, 일하지 않고 헌법을 위반하며 국민을 무시하는 국회의원도 국민이 직접 소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일하는 국회법'을 시행하고 있는 해외 각국의 제도를 면밀히 연구해서 필요한 부분을 도입할 때가 됐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의원들은 세비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80%를 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억대 연봉자인 의원들이 세비만은 꼬박꼬박 챙기기 때문이다. 18,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세비 반납법’이 발의됐지만, 입법권을 틀어쥔 의원들은 통과시키지 않았다. 이밖에 국민세금으로 충당되는 정당 운영 보조금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의원에 대한 특권 중 가장 커다란 것은 비리혐의 의원에 대한 봐주기 관행이다. 사학비리나 채용비리 혐의를 받는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선출직 고위공직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특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유럽 의원들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덴마크 의원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전체의원의 40%인 여성의원 자전거에는 장바구니가 달려 있다. 의원 2명당 1명씩 배정된 비서와 함께 하루 평균 12시간 일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스웨덴 의원은 전용차도 없고 면책특권도 없다. 출장 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주당 80시간 일하고 1년에 10개월 동안 회기가 이어진다. 스위스 의원의 보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최저임금은 시급 25프랑(약 2만8,000원)인데 의원 월급은 4,000프랑(약 450만원)이다. 보좌관이나 비서는 아예 없다. 이들 국가의 의원들은 명예와 희생을 맞바꾼 고된 직업일 뿐이다. 선진 유럽 국가들의 국회를 본받아야 한다.
한국의원의 세비는 OECD 34개 회원국 중 일본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고 한다. 그러나 법안 발의와 처리 등으로 측정한 ‘임금 대비 국회의원 경쟁력’은 꼴찌에서 두 번째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등 헌법이 정한 특권 외에도 200개가 넘는 특혜를 누린다. 보좌관 및 비서는 9명까지 둘 수 있다. 일은 안하면서 최상의 임금과 온갖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20대 국회도 출범 초에는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혁파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앞 다퉈 특권 내려놓기를 다짐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초심은 이미 빛이 바랬다. 아무리 막말을 내뱉거나 비리를 저질러도, 특권을 이용해 채용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빚어져도 아무런 제재도 없다. 출범 초기 새로운 국회상을 세우겠다는 다짐은 온데 간 데 없다. 특권을 누리면서 점점 더 많은 특권을 추구하며 남발하는 행태가 정치개혁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3
이에 <사람과 언론> 이번 가을호는 ‘국회개혁 없이 정치개혁 없다’란 특별 기획을 마련하고 촛불 이후 우리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에 정치개혁 과제들은 무엇이고 과연 얼마나 개혁이 이뤄져 왔는가를 진단해 보았다. 맨 먼저 정치문제에 관해 평생을 연구해 온 원로 정치학자에게 우리나라의 특이한 국회현상과 개혁방안을 듣기 위해 노크해 보았다. 그런데 기꺼이 응해주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고 한국정학회 회장과 한국 NGO학회 회장에 이어 고문 등을 맡아 온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는 많은 논문과 저서에서 한국정치의 개혁방안에 관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그런 그가 ‘제4의 물결과 한국정치 개혁과제’란 기고의 글을 통해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우리 정치의 현실과 개혁 방안을 진단하고 혜안을 제시해 주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정치꾼(Politician)으로 가득 찬 국회’에서 들추어냈다. 대한민국 국회는 올해로 개원 71년을 맞이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국리민복을 위한 국정에 전념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 또는 총선만 겨냥, 정쟁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김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국회는 매 4년마다 정쟁의 핵심으로 등장한 선거구 획정 문제로 인해 여야 정당 간의 정쟁, 소위 ‘ 밥그릇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치인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바, 하나는 영어로 ‘Politician’과, 또 다른 하나는 ‘Statesman’이다. ‘Politician’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객’ ‘정치꾼’ 이라고 부를 수 있고, ‘Statesman’은 ‘정치인’을 말한다. ‘정객’ ‘정치꾼’은 최우선 관심이 다음 선거에서 내가 당선되느냐의 여부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반면, ‘정치인’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지도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은 Statesman 유형의 ‘정치인’들이 아니라, Politician 과 같은 ‘정객’ ‘정치꾼’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 교수는 “현재 2명의 전직 대통령은 법의 심판을 받는 있는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제4의 물결 시대가 추구하는 선진복지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정치의 현 상황은 제4의 물결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김 교수는 국민들로부터 한국정치가 불신 받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문제는 한국정치는 소위 ‘분노의 정치’ 때문이라고 한다. 보수는 보수대로 분노하고 진보는 진보대로 모두 분노하고 있으며. 또 세대는 세대별, 지역은 지역대로, 계층은 계층대로 모두 ‘네 탓이오’ 하면서 분노에 차있다는 주장이다. 이어 두 번째 문제는 한국정치가 ‘패거리 정치’ 때문이며, 세 번째 문제는 ‘공포의 균형 정치‘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포의 균형정치‘란 여야정당 간의 정쟁을 할 때 상대정당을 제압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포를 주는 언어를 사용, 상대에게 승리하려는 것이어서 정치인의 소위 ‘막말’ 파동은 이런 공포의 정치의 균형에서 잉태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들이 근절되지 않고는 정치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역설했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모두 새겨듣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4
또한 이번 가을호에서 사립유치원과 사립대학 등 이른바 사학비리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정치개혁이야말로 사립유치원 및 사립대학 등 사학 관련법 개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진 3법’의 주인공답게 그는 사학혁신법 통과를 통한 교육개혁을 통해 정치개혁을 마무리 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의원은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해서 해답을 만들어내야 하며,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점’하지 않고 ‘공유’해야 한다”며 “사학비리에 유독 관대한 우리 정치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개혁도 교육선진화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보적 성향이면서 시민사회로부터 의정활동을 열심히 펼치는 의원으로 평가 받아온 몇몇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정치개혁의 과제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대부분 ‘묵묵부답’ 또는 ‘답하기 어려움’이란 회신뿐이어서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밖에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대표하는 보좌진협의회장들에게도 국회개혁을 비롯한 보좌진 개혁과제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한나라당보좌진협의회(한보협) 회장만 의견을 보내왔다.
“국회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이라 국회의원이 면직서만 제출하면 바로 해고됩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해고할 때 30일 전에 알리거나 혹은 해고 예고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보좌진에게도 적용하려 합니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와 함께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종태 신임 한보협 회장은 취임 목표를 묻자 이른바 ‘해고 예고제’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한보협에서 역대 최연소 회장으로 당선된 그는 국회개혁을 위해 보좌진협의회부터 개혁에 나서겠다는 당찬 각오를 보였다.
한국 정치에서 왜 ‘중도’는 인기가 높아도 정치현장에선 전멸할까? 이에 대한 답을 강준만 교수가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명언 에세이’에서 강 교수는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중도를 원하는 유권자가 많음에도 중도는 정치 현장에선 전멸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간혹 중도가 적잖은 표를 얻는 일도 일어나긴 하지만, 그 수명은 매우 짧다. 한국이 미국에 비해 더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 교수는 그 이유를 “한국에서 중도는 늘 40%대 이상의 지지를 받고 보수와 진보는 각각 20%대의 지지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치는 오직 ‘진보 대 보수’의 대결구도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강 교수의 명언 에세이 ‘왜 ‘중도’는 인기가 높아도 정치현장에선 전멸할까?: 참여에 대한 단상‘은 의미를 새기며 찬찬히 읽어볼 만하다.
5
한편 이번 가을호는 특집 ‘선비 천명이 죽은 기축옥사...역모인가, 혁명인가?’에서는 ‘천하는 공공한 물건인데 어디 일정한 주인이 있는가?’란 공화주의를 주창한 정여립과 대동사상을 재조명했다. 지난 5월 전주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제1회 공화주의자 정여립 학술세미나’를 주최한 (사)대동사상기념사업회 신정일 이사장과 주제발표를 한 이해준 공주대학교 명예교수,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논문을 정리해 이번호에 공개했다. 이 분야에서 모두 오랫동안 연구해 온 향토사학자들이다.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우리시대의 전라정신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신 이사장은 ‘정여립과 대동사상, 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 이해준 공주대 명예교수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각각 ‘호남 사림 학맥의 형성 변천과 정여립’. ‘정여립 사건과 송익필의 역할’을 발표했다. 기념사업회의 동의를 얻어 발제논문 전문을 이번 가을호에 공개했다. 특히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등의 저서를 통해 정여립과 대동사상을 조명하는데 앞장서 온 신정일 이사장은 16세기 조선을 뒤흔들어 천재 1,000명을 죽음으로 내몬 ‘기축옥사’의 진실과 음모를 밝히며 기축옥사는 역모가 아닌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여립은 영국의 혁명가인 올리버 크롬웰보다 60년 앞선 공화주의자이자, 세계 최초로 공화주의를 주창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역사에서 평가 절하되거나 지워져 왔던 정여립과 대동사상은 언제든지 논쟁거리가 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이밖에 김창룡 인제대 신방과 교수는 이번 가을호부터 각 정권별 언론통제 전략이란 시리즈를 시작했다. 첫 편은 제1공화국부터 제6공화국까지 언론통제 전략을 시기별로 잘 분석해 정리했다. 언론통제는 민주주의의 적임을 전제한 김 교수의 시리즈는 미디어 리터러시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어서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이 외에도 이번 가을호 특집 이슈분석에서는 ‘드론 저널리즘의 가능성과 한계’, 위기의 지역 공영방송, 해법은 없는가?‘란 주제를 통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드론의 저널리즘 활용 현실과 법적 문제점, 대안을 짚어보았다. 또한 지역방송의 위기 실태와 해법을 지역에서 왕성하게 언론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민 언론학 박사를 통해 진단해 보았다.
또한 촌철살인의 세평(世評)과 시평(詩評)은 우리사회의 이슈를 위트와 경고의 메시지로 전환해 전달했으며 특집 ‘지리와 문화와 역사’에서는 지명이야기,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외에 종교경관의 장소 관성‘을 추가해 우리 주변의 지리와 관련된 소재들을 3명의 전문가들이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주었다.
이번 가을호 인물탐구는 국어학자 정인승 선생을 소개했으며, 대입 수시전형에 관한 전문가 조언과 퇴직 후 창업에 관한 정보, 재미있는 ‘김명주의 영화 속으로’, ‘포토 에세이’, ‘기억 속으로 여행’, ‘서평’, ‘뉴스 큐레이션’, ‘언론 풍향계’, ‘논문 큐레이션‘, 별난 사람’ 등이 새로운 주제로 알찬 내용들을 선보인다. 모든 독자 제위의 행복한 가을을 소망하며. /<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