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독하게 살았던 어린 날 닮은 시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0-10-24     신정일 객원기자

횡성 안흥의 관동대로 옛길 자작나무 숲에서 돌아와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면 불현듯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그리워서 막 달려가고 싶은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곳, 그 중에 한 곳이 중국에서 러시아의 접경 만주리로 가던 길에 보았던 자작나무 숲이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이 펼쳐진 길 옆, 하얀 눈 사이에 우뚝 우뚝 서 있던 자작나무 가끔씩 우리 버스 앞에 나타나던 아름드리 자작나무를 가득 싣고 가던 대형 트럭들, 나는 그곳에서 자작나무가 그토록 처연하게 아름답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자작나무는 그 이전에 보았던 그 나무들이 아니었고, 내가 읽었던 자작나무에 관한 시들도 그 이전의 시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씩 펼쳐보는 자작나무의 그 내밀한 이야기들 속에 내 유년 시절이 있고, 인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작나무>를 낮은 목소리로 읽는다. 가만히.

자작나무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끼어 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에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어느 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로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내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핀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 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 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 던지 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를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오르내리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물이 찰찰 넘치는 잔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내린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는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시가 눈을 때려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를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雪白)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떨어뜨려 다시 땅 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을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자(者)보다 훨씬 못하게 살수도 있으니까.

외롭고 고독하게 살았던 내 어린 날의 이야기가 불쑥 나타나 나에게 말을 건넬 것 같은 시를 읽으며 인생이라는 것이 이처럼, 쓸쓸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가 바로 자작나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 횡성의 관동대로 옛길에 펼쳐져 있던 자작나무 숲에서 다시 내 유년 시절을 떠올리고, 만주리 가던 길에 보았던 자작나무를 떠올리며 수많은 회상에 젖다가 돌아온 이 한 밤, 나는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새벽.

/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