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걸 싫증내지 않는다(學而不厭)
만언각비(24)
“한글학당에서/ 드디어 까막눈을 좀 떠볼라고/ 손목이 시드락 가나다라를 배우는디/ 아 느닷없이 코라나라는 것이 나타나서/ 성생님도 오지말라/ 학생들도 모이지 말라 헝게/ 인자 겨우 바늘귀만치 실눈 떠것는디/ 아이고 어쩍그나/ 도로 까막눈이 될라고 허네/ 코로나19 그것이 무슨 벌거지 같으먼/ 잡아서 돌팍에 대고 콕콕 찧어 불먼/ 내 속이 씨원허것네”
남원평생학습관 신정득 학습자의 ‘도로 까막눈’이라는 작품이다. 2020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이 시에 대한 느낌이 어떠한가. 글자를 모르는 자신의 답답한 속내와 안타까움, 코로나19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참 실감나게 표현했다. 모르면 답답하다. 모르면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애면글면 글자 좀 배워보려고 했는데, 안동답답이 신세 좀 벗으려 했는데, 그만 코로나19가 훼방한다.
살아가면서 ‘모른다는 것’은 늘 우리를 주눅 들게 한다. 많이 알아야 면장을 한다. 〔여기서 면장은 행정단위 면의 수장인 그 면장이 아니다. 이 말은, 『논어』 ‘양화’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공자가 어느 날 아들 리(鯉)에게 “너는 시경을 읽었느냐?”고 물어봤다. 아들이 아직 읽지 못했다고 대답을 하자 “사람이 시를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대하고 서 있는 것(답답하다)과 같으니 열심히 배워야 한다”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즉 담장을 마주 대하고[面] 서 있는 면장[面牆]은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서 매우 답답한 상태. 그 면장[面牆] 상황을 면[免]하여 면장[免牆]하면 그런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알아야 면장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알고자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배우는 것을 싫증내지 않는다’
어느 날 배움에 싫증과 회의를 느낀 자공(子貢)이 “조금 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자공에게 공자가 이렇게 타일렀다.
“군주를 섬기는 것, 부모를 모시는 것, 친구와 함께하는 것, 농사를 짓는 것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관뚜껑 닫아야 비로소 쉴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학이불염(學而不厭)’ 즉 ‘배우는 것을 싫증내지 않는다’는 고사이다. 관뚜껑이 닫힐 때까지 공부하라는 좋은 뜻의 말이다. 여기서 공부는 꼭 책 읽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부모를 모시고 친구와 화합하고 농사짓는 것(생업) 모두가 공부인 거다.
자공이 누구던가. 바로 『논어』에 자로(子路)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안회와 동년배다. 그래서인지 자공은 안회와 종종 비교된다. 공자가 호학자(好學者)로 평했지만 평생 관직에 나간 적도 없고 가난했던 안회와 달리 자공은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부유하고 출세한 제자 중 하나였다.
또한 말이 별로 없던 안회에 비해 그는 언변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공자는 노나라의 실력자였던 계강자가 그의 제자들에 대해서 물을 때 “사(賜: 자공)는 사리에 통달했기 때문에 정사(政事)에 종사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뛰어난 외교술로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높은 관직에 올랐다.
그러면 보자. 자공이 그저 아무런 노력 없이 사리에 통달한 것은 아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공
『논어』에서는 자공의 뛰어난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자공의 활약은 오히려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에 나온다. 노나라가 제나라에 침공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공자는 자공을 불러 일을 맡겼다. 자공은 제(齊), 오(吳), 월(越) 등을 돌며 유세를 펼친다. 그의 활약으로 노나라는 제나라 침공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 때 자공의 유세로 오나라는 제나라를 침략하여 승리한 후 진(晉)나라를 쳤다. 하지만 오는 진에게 패하게 되고, 힘이 약해진 오를 월나라가 멸망시켰다. 『사기』에는 이를 “자공이 한 번 뛰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큰 변화가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자공은 이재에도 밝아서 돈을 불리는 재주가 많았다. 이 덕에 그는 꽤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논어』에도 노나라의 대부였던 숙손문숙(叔孫武叔)은 자공이 공자보다 뛰어나다고 평했다. 물론 자공은 펄쩍 뛰었지만 말이다.
자공과 공자의 대화를 보자.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인가요?”
“너는 호련(瑚璉)이다.”(『논어』 「공야장」)
호련은 제사에 사용하는 옥으로 만든 그릇이다. 당시 옥은 매우 귀한 보물이었다. 공자가 자공의 재주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논어』에 나오는 자공은 스승에게 계속 질문을 하고, 때때로 친구들을 비교하는 변변치 못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안다고 했던 자공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궁금해서 그렇게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일까?
어느 날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친구 둘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장과 자하는 누가 더 나은가요?” 공자는 “자장은 좀 지나치고 자하는 좀 모자란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공이 “그러면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는 “지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것은 똑같다.”라고 대답해줬다. 자공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공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선생님에게 이 친구와 저 친구 중에서 누가 나으냐고 질문을 하다니 이런 푼수데기가 있나?
또 자공의 질문은 끝이 없다. 내용도 다양하다. 정치에 대해서도 묻고, 인(仁)에 대해서도 묻고, 친구에 대해서도 묻는다. 그는 그냥 대충 질문하지도 않는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묻는다. 한 번에 넘어가는 법도 없다.
하루는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가 백성을 잘 먹이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질문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 할까요?” 공자가 군대를 먼저 포기하라고 대답해 주자, 자공은 또 질문한다. “그럼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는 배불리 먹이는 것을 포기해 해야 한다고 하면서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정치는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대답해 준다.
자공은 왜 이렇게 묻고 또 묻는 것인가? 자공이 우둔해서 스승의 말을 못 알아들어 계속 물어보고 있는 걸까?
“스승님, 여쭐 것이 있습니다!”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마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잘라놓은(切)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가는(磋) 듯하며, 쪼아놓은(琢) 듯하며, 다시 그걸 가는(磨) 듯하다’고 하더니 지금 선생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신 거군요!” 공자께서 답했다. “사(賜:자공)야! 네가 이제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올 것을 아니까 말이다.”(『논어』「학이」)
여기서 ‘절차탁마(切磋琢磨)’란 말이 나왔다. 얘긴즉슨 공부는 끊임없이 해야 하는 법이란 말이다.
아첨도 교만도 없는 경지라 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절차탁마하면 빈부의 의식조차 초월하는 도의 경지가 열림을 두 사람은 이심전심했을 터이다. 공자와 자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공문 최고의 교육 파트너였다.
자공은 공자의 말을 듣고 스승의 가르침을 금세 깨달을 줄 아는 명민함을 갖추고 있었다. 스승의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공은 다시 질문함으로써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계속 확인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내 생각을 기준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면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다른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쩌면 자공은 그러한 것을 경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묻고 다시 묻고, 그래서 생각의 덩어리가 아니라 쪼개고 갈아서 정교하게 다듬어질 때까지 물었다.
옥도 갈고 닦지 않으면 단지 돌일 뿐이다.
자공은 나름대로 성공한 인물이다. 공자가 ‘수양’을 강조했지만 어쨌든 당시의 공부가 관직에 나가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공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실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삶은 단지 성공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배움을 통해서 관직에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자공이 되고자 했던 것은 스승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물인 ‘군자(君子)’였다.
당시 군자는 귀족 통치 계급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공자는 군자를 단순히 혈통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양 통해 완성된 인격을 지닌 자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군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배움(學)이 중요했다. 그리고 배웠다면 그것을 익혀 실천(行)하는 것이 중요했다. 공자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했다. 군자는 그릇과 같이 고정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탁마’가 필요했다. 매순간 부딪히는 사건을 두고 때에 맞춰 정밀하게 행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옥도 갈고 닦지 않으면 단지 돌일 뿐이다. 그래서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매 순간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때로는 변변치 못하게 보였던 자공의 질문들은 자공의 그러한 배움의 자세로 볼 수 있다. 자공이 친구들을 공자에게 질문했던 것도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누구는 과하고, 누구는 부족함이 있다면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것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모자란 것이 나은 것인지. 그래서 자공은 묻고 또 물었다.
자공의 그 많은 질문들은 스스로를 갈고 닦고, 다시 쪼아(절차탁마하여) 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다. 공자가 호련이라며 칭찬했던 자공. 그러나 자공이 진정으로 훌륭한 점은 그가 배움을 통해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부를 쌓았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군자가 되기 위해서 늘 자기를 갈고 닦은 진실한 태도에 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하게 해주마”
혜가 조사가 초조(初祖) 달마 문하에 있을 때 일이다. 혜가 조사가 스승을 섬기기를 밤낮으로 지극히 했으나, 얼마가 지나도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눈 오는 어느 날 밤이었다. 혜가가 달마의 동굴 앞에서 꼼짝 않고 서서 가르침을 청했다. 새벽녘에는 그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새벽이 되자 이윽고 달마께서 물었다.
“그대는 나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혜가가 이를 놓칠세라 얼른 대답하였다.
“가르침을 베푸시어 중생들을 제도하여 주십시오.”
“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달마가 물었다. 곧바로 혜가는 칼을 뽑아 왼쪽 팔을 댕강 잘랐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흰 눈밭이 핏자국으로 붉게 물들었다. 온 몸을 가르는 듯 고통이 대단하였을 것 아닌가. 그러나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혜가는 달마 조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 마음이 편치 못하오니 대사께서 편하게 해주십시오.”
달마 스님이 대답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하게 해주마.”
마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 몸에 있는가. 허공에 있는가.혜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그 마음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습니다”
달마는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일러줬다. 이렇게 혜가는 불편한 그 마음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마음을 편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음의 어디엔가 이미 다다르게 됐다.
‘혜가단비(慧可斷臂:혜가스님이 자신의 팔을 자르다)’ 고사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언감생심 엄두를 내기는커녕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아직도 눈(雪) 위에 그가 뿌린 선홍색 피가 낭자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눈(眼)에 아른 거릴 정도다. 얘기가 잠시 곁가지로 흘렀다.
그렇다면 정녕 자신의 팔을 자르는 정도의 각오가 아니면 선(禪)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인가. 선을 이야기 할 때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고통의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선은 배워서 되는 것인가? 아니면 불현듯 또는 번개 치듯 깨달음이 오는 것인가? 아직도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단언키는 어렵다.
지금까지 선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허투루 선을 행했다면 거짓말쟁이가 된다. 아무나 할 수 없을 정도로 결연하고 독기어린 길이 선의 길이라면 보통 사람들의 여담거리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그것이 도를 위한 길이라 한들 어떻게 매번 각오가 새로울 수 있을까. 각오를 새롭게 할 때마다 팔을 자른다면 의지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은 손이 천개나 된다는 천수(千手)관음의 그것도 부족할 판이다.
수레가 멈추면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중국 당나라 때였다. 어느 날 마조(馬祖)스님이 법당 앞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스승 회양선사가 물었다.
“거기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좌선을 무엇 하려 하는가?”
“빨리 깨달아 부처가 되어야지요.”
다음 날 마조가 또다시 같은 장소에 앉아 좌선을 했다. 그러자 회양선사가 마조 곁으로 와서 돌에다 기왓장을 갈고 있었다. 한동안 이를 쳐다보던 마조가 물었다.
“스승님! 무엇에 쓰려고 기왓장을 갈고 계십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그런다.”
“아니 스승님, 기왓장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그러자 회양은 마조에게 반문했다.
“그대는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가?”
“부처가 되려고 그럽니다.”
“앉아만 있는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앉아서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나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이에 마조가 깨달은 바 있어 다시 여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 수레가 멈추면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소를 때려야 하겠는가?”
마음은 소고 몸은 수레와 같다는 뜻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선(禪)이 되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선이 되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수레를 때리고 있다.
모든 일은 그 일을 성취시킬 수 있는 올바른 도리와 순서가 있다. 이 도리를 먼저 밝게 깨닫는 일이 시급한 일이요, 배움은 그 방편이다.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헛수고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참된 일을 하려다 헛수고를 하는 수도 있는 법이다. 배움에는 헛수고도 따르게 마련이다. 다만 헛수고를 깨달아 목적을 바로 성취하면 헛수고가 헛수고 아닌 것이 된다. 좋은 일을 하려다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다. 그러나 뭔가 잘 해 보려고 애쓰는 노력 그 자체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헛수고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게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대한 정성이 없으면 수고에 인색해져버려 아무 보람을 성취하지 못하는 법이다. 헛수고를 하는 우를 범하더라도 해 보고자 노력하는 가치는 참다운 것이다. 물론 끝까지 우를 범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지만 “우공(愚公)이 산을 옮긴다”는 말처럼 헛수고를 탓하기 전에 우선 끈질긴 노력이 더 필요하다. 결과를 놓고 볼때 좋은 뜻이 전제돼있는 일에 있어서는 헛수고는 결코 없다.
마조가 좌선을 했으므로 회양이 기왓장을 갈았고 이런 가르침을 계기로 하여 마조가 도를 깨달았던 것 아닌가. 이 때 깨달음은 어디서 왔는가. 외부의 가르침에서 왔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대한 ‘배움’에서 이뤄졌다.
그러니 아무리 차원 높은 학습도 결국 가르침 없이 이루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스스로 깨우치는 부분을 부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배움은 끝이 없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