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멋진 연암 박지원의 글
백승종의 '역사칼럼'
나는 연암이 쓴 <초정집 서문>의 글맛이 너무 좋아 숨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일 때가 있었다. 과장된 표현이겠으나, 그 정도로 흥미로웠다는 말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셋으로 나누어서 간단히 적어보겠다.
첫째, 연암 박지원이 개성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눈에 보였다. 16세기에 조선의 삼당시인은 자신들의 작품이 마치 당나라의 시문인 듯 보이게 하려고 노심초사하였다. 개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점필재 김종직 이후로 조선의 문장가들은 성리학에 몰입한 나머지 보편성을 강조하며 모범답안을 작성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작가의 독특한 취향을 드러내기보다는 시대가 선호하는 미의식에 맞춰서 담담하고 평범하면서 격조 있는 글을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교산 허균이 나타나서 작가의 개성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연암 박지원에 이르러서는 개성 있는 글쓰기가 평생의 화두로 승격되었다. ‘법고창신’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지향점이 마련된 것이다. 이는 조선의 문화계에 신풍조가 일어났다는 산 증거이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의 이 글은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둘째, 나는 이 글에서 박지원의 날카로운 문화 비평적 시각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비교적 근접한 중국 명나라의 문단 실정을 마치 손금 들여다보듯 정확하게 읽었다. 명나라에서는 법고파와 창신파가 일대 혼전을 벌였는데, 끝까지 귀일점을 찾지 못하고 공멸하였다. 박지원은 이러한 판단 아래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다. 그가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웃 나라의 문예사조를 비평하였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다.
박지원이 법고창신이란 새로운 문장론을 주장한 사실은 동아시아의 문예사적 사건이었다. 그에게는 동아시아의 문학사를 꿰뚫는 역사적 통찰이 있었다. 박지원은 수백 년 동안 조선 문화계를 지배한 김종직의 문장 미학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으나, 법고창신이란 새 지표를 제시하였다. 김종직의 미학 따위는 굳이 거론할 가치도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은가.
끝으로, 나는 이 글(<초정집 서문>)에서 장차 조선 사회에서 일어날 문화투쟁의 서막을 보았다. 연암 박지원이 법고창신의 기치를 펼쳐 든 지 20년쯤 흐른 뒤, 정조는 문체반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조선 후기의 문예부흥을 꾀한 것으로 정평이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왕 정조. 그는 당송팔대가로 소급되는 고전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선 문화계에 복고풍을 강요한다. 정조가 보기에 연암 박지원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최우선적으로 수정해야 할 나쁜 문체의 전형이었다.
알다시피 정조가 고전 문체를 고집한 것은 문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이념에 관계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왕은 성리학적 규범에 충실한 조선 사회를 재건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과 박제가를 포함한 신지식인들이 보기에 정조의 문체반정은 문화적 반란이요, 보수 반동과의 결전을 뜻했다. 박지원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박지원의 〈초정집 서문〉을 읽으며, 아련히 피어오르는 화약 연기를 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위대한 문장이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엄연히 실존하는 포성이기도 하다.
※출처: 백승종,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김영사, 2020)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