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강사법 대응? 응당 주어져야 할 몫을 함께 요구할 때”

주장-이상형 고려대 총학생회 교육정책국장(경제학과 17학번)

2020-04-22     전북의소리
이상형 고려대 총학생회 교육정책국장

강사법은 학내구성원의 노동권 보장을 넘어서 학생 학습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강사법을 대학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학내에서 구현하는가가 학생의 학습 제반조건을 결정짓는다. 학생이 수강하는 상당수의 강의를 담당하고 학생을 지도하는 강사를 대학은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이에 입각하여 추가적 비용을 감당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동안 외적 팽창과 경쟁구도에 매몰되어 가는 사립대학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으며, 실질적인 비용을 발생시키는 강사법에 대한 학교의 대응은 그 전도된 가치체계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8월 시행을 목전에 두고 몇몇 사립대학이 보여준 양태에 기반하여, 강사법에 대한 대학의 대응이 학생들의 학습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단해 본다.

강사 해고와 더불어 사라진 강의 수 무려 150개

추가적인 임금, 처우 개선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 교원지위 부여에 따라 교수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 요소 등을 이유로 강사를 해고했다. 강사해고와 더불어 강사가 담당했던 강의가 사라졌다. 고려대에서는 약 150여개(고려대 총학생회), 중앙대에서는 교양강의의 7.3%가 줄었다(중앙대 공동대책위).

강사가 상당 부분 전담해왔던 교양강의 중심으로 축소되었을 것이 예상된다. 이는 대학사회에서 학습의 자율성 침해로서 고질적으로 지적되어온‘수강신청 대란’을 심화시킨다. 강의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고 희망하는 과목을 듣지 못하는 현상이 확대되는 것이다.

실제 연세대에서는 각 영역 교양강의의 대폭 축소와 그에 따라 마일리지 수강신청 성공건수가 2015년 대비 2,500건 감소했음을 보였다(연세대 공동대책위). 전체 강의 수 감소에 따라 강의 당 정원은 늘어남으로써 ‘콩나물 수업’이라 일컬어지는 대형강의 확대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강의 전달력 감소, 수업 내 학생과 교수 간의 라포형성 저해, 지도의 적극성 감소 등의 비가시적 교육여건 악화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혹은 대형 강의가 확대되는 현실을 역으로 이용하여 기존 강의를 사이버강의로 대체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다수의 대학에서 검토 및 도입중이며, 실제 경희대에서는 2019년 1학기부터 교양영어1,2를 통폐합하고 이를 ‘대학영어’라는 사이버강의로 대체했다.

강의 수 축소와 졸업 이수학점 하향제 시행, 누구를 위함인가?

고려대 학생들의 학급권 침해 반대시위

질문하지 않는 학생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문과 토론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고려대는 기존 강의의 대체 및 신규 강의 도입을 자체적인 사이버 강의 시스템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또한 사이버 강의 확대를 위한 기반시설 마련 등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해외 대학 모델을 좇아 만들어지고 있는 무수한 라운지와 세미나 공간은 무엇을 위함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강의 축소에 나아가 대학은 교육체계를 조정하여 강의가 필요하지 않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졸업 이수학점 축소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학생 개인이 학부 졸업 전까지 이수해야 하는 총 학점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강의를 개설할 필요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실제로 경희대에서는 단과대별로 졸업 이수학점을 조정하고 있으며, 중앙대, 한양대 등에서 해당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200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경향으로서 전국 사립대학에서 유지되어 온 기조이다.

학생들의 부담완화라는 이유로 각 대학 간에 눈치를 보며, 다시 한 번 학점 축소를 감행하려는 것이다. 중앙대는 2005년도에 졸업 이수 학점을 140점에서 132점으로 줄인 바 있다. 학생들이 놓인 여러 시대적 조건을 고려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졸업 이수‘최소’학점과 이수 가능 ‘최대’학점은 분명하게 분리된다는 점을 밝힌다.

강의를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들, 나아가 ‘원하는’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습환경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졸업 이수학점 축소를 빌미로 강의 수 또한 그에 상응하여 줄이고 있는 현재의 양상은 학교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처사이자 명백한 교육권 침해이다. 그와 별도로 졸업이수학점과 전체 강의 수는 긴밀하게 연동시키지만 이에 상응하는 등록금 하향조정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대학의 이중잣대는 해당 정책의 목적을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의자놀이에서 안심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함께 대응해야”

우리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야한다. 강사법을 기점으로 나타나는 강의 수 감소 등 가시적 영향보다 더욱 중요한 학습 현장의 비가시적 침식을 직면해야 한다. 강사해고로 수업이 일부 교수자에게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예상되는 교수자의 전담과목에의 전문성 감소, 강의에 수반되는 업무(성취도 평가, 학생 문의에 대한 답변 등)과 같은 영향은 측정되지도 않고 학교 평가 요소로서 작용되지도 않지만 수강생의 학습환경과 직접적 관련을 맺는다.

주의는 들리지 않는 곳을 향해야 한다. 구성원의 거센 반발로 내홍을 겪고 있는 학교는 그 학교가 몰상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기 있는 대학은 어디에나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해고가 자행되는 대학을 들춰내야 한다. 대학이 가장 손쉽게 통제 가능한 비전임교원 강사, 외국인 강사, 외국인 학생부터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몫 없는 자들의 응당 주어져야 할 몫을 함께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의자놀이에서 안심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사람과 언론> 제5호(2019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