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을 말(言)하려니 ‘말모이’를 들춰봐야

만언각비(23) -'말모이 원고' 국가지정 보물 의미

2020-10-11     이강록 기자

#1

할머니, 들어봐요. 할아버지의 몸속에서 말이 달리고 있어요. 저 늙고 지친 뼈를 차고 달려오고 있어요. 논을 매고 약초를 캘 때 굽혔던 허리 속에서 아버지와 나를 끌어안을 때 굽혔던 팔 속에서 뚜둑 뚜둑 저 늙고 지친 관절 속에서 튀어나오는 이 눈부시게 거친 말발굽의 함성 할아버지의 몸속에서 미친 듯이 휘돌아 달려나가는 말들의 떼

#2

틀렸다. 아가야. 어디까지 왔는지 돌아보는 그의 눈 속은 지금 간조(干潮)다. 하얗게 새어버린 갈기 속에 숨어있는 말들의 높바람 같은 숨 툇마루에 앉아 담배 잡는 네 할애비의 손가락에서 들려오는 뚜둑 뚜둑. 들어보면 그것은 말발굽 소리가 아닌 말들의 주저앉는 소리.

#3

그의 몸속에는 보이지 않는 말들이 있다. 어딘가를 향해 다리를 차내며 달려가지만 문득 돌아보면 그곳은 어디도 아닌 곳 밀물로 밀려온 곳이 육지가 아님을 알아 다시 썰물로 빠지는 바다의 형상 아,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발을 굴러야만 하는 말무리의 그림자.

영화 '말모이' 포스터

김재현(대구 달성고) 학생의 ‘말(馬)’이라는 시다. 이 학생은 시에서 할아버지 몸속 관절에서 뚜둑거리며 나는 소리를 말발굽 소리로 치환했다.

그리하여 몸속에 말이 달리고 있다고 그리고 있다. 이 시를 쓰면서 이 학생이 사전에서 확인한 낱말은 ‘간조’정도였으리라.

이 달리는 ‘말’과 달리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쓰는 ‘말’이 있다. 바로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그 ‘말’이다. ‘말’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곡식이나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 있고 분량을 되는 데 쓰이는 그릇도 말이다. 물속에서 자라는 은화식물을 통틀어서 이를 때도 말이고, 가랫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물풀을 가리키기도 한다. 바다에서 나는 식물을 통틀어서 말이라고 한다.

이처럼 ‘말’이란 낱말 하나가 여럿의 뜻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르는 근거는 바로 ‘말모이’, 즉 사전이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사전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누구에게나 낯선 낱말을 만났을 때 두꺼운 종이사전을 뒤적거린 기억이 있을 터이다. 지금은 간편한 모바일 사전을 이용하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사전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동시대 사람에게는 지식의 길잡이가 되고 다음 세대에게는 이전 삶의 모습과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사전이다.

한글이 조선의 공식 문자로 공표된 것은 1894년(고종 31년)이다. 이때는 아직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이 통일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급과 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때문에 한글 표기의 기준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낱말 표기 및 정의가 통일되고, 어문규범이 정리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는 무얼까. 바로 ‘말모이’다. ‘말모이’는 1910년대에 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조선광문회)이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다. 하지만 결국 출판되지는 못했고,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만 남아있다. 애석한 일이다.

1938년에야 우리말 사전인 《조선어사전》이 편찬된다. (참고 〈사람과 언론〉8호, 2020 봄호, 인물탐구 주시경)

사전은 지식을 담는 그릇이자 사람들의 인식과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기본적으로 사전의 낱말과 뜻풀이가 앞서 편찬된 사전의 내용을 받아들이지만 당대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시대의식을 담아 새로운 낱말을 추가하고 기존 낱말의 뜻풀이를 바꾸기도 한다.

오늘날 사전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고 외면받기 일쑤다. 그러나 사전은 과거의 사실, 당대의 현실만 포함돼 있는 게 아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반영하는 역사적 산물이다.

타지에 가게 되면 맨 먼저 낯설게 느껴지는 게 말이다. 생소한 방언 때문에 소통이 자유롭지 못할 만큼 갑갑하기도 하다. 익숙해지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적잖이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1999)에 실려있는 팔도의 우리말 사투리 일부다.

“니 참 귄(귀염성)있다 잉.” “포도시(간신히) 도착했시야.” “쪼까(조금) 껄쩍지근하네(꺼림칙하네).”(이상 전라도)

“하모(아무렴) 된다카이.” “엄청시리(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 시원테이.” “단디(단단히) 해라.” “우째(어째) 그라노?”(이상 경상도)

“진짜 대간햐(고단하다).” “탑새기(솜먼지)가 왜 이리 많은 겨. 숨 막혀 죽으라는 겨. 머여 이거.” “그랴(그래)? 저기 구탱이(구석)에 놨는데.”(이상 충청도)

“마카 모예(조금도 남김 없이 모두 다)” “그 미시리(바보) 아이나(아니야).” “하마(벌써) 열시 반이잖소?” “남새시러운기(남세스럽게) 왜그르나(왜그러냐)?”(이상 강원도)

“메께라(남의 말이나 행동에 놀랐을 때 내는 소리) 놀랐찌게” “어떵합디강(어떻게), 어떵허콰(어떻게)” “잘도 하영(많이)이숨게데” “와리지말랑, 와리지말라게(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이다)”(이상 제주도)

느낌이 어떤가. 극히 일부지만 아주 정감 있지 않은가. 그러니 방언이라 괄시할 일이 아니고 그윽한 애정을 쏟을 일이다. 오늘 우리가 불편 없이 소통하는 것은 모두가 사전의 공로이자 덕분이다.

첫 우리말 사전 바탕이 된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켜낸 자료로서,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밀모이' 원고(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 결과에 따라 ‘말모이 원고’ 등 2종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과 그의 제자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원고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했다.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된 이래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뤄졌다.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1916년 김두봉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문법책인 ‘조선말본’ 간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일제 감시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간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됐다.

‘말모이 원고’는 현존하는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거기에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단순한 사전 출판용 원고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의의가 매우 크다. ‘말모이 원고’는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다.

반면 ‘조선말 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자가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수정·교열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가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이를 바탕으로 1957년 ‘큰 사전’(6권)이 완성되는 계기가 됐다. (참고 〈사람과 언론〉6호, 2019 가을호, 인물탐구 정인승)

1929년 10월 31일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이념을 뛰어넘어 사전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영친왕(英親王)이 후원금 1000원(현재기준 약 958만 원)을 기부했고, 각지의 민초(民草)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왔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독립을 준비했던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다. 더불어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체다. 특히 이 원고는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상징성을 갖는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고, 선생님조차 자신이 써준 단어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가 돌려받은 숙제노트에 적힌 네 단어는 나의 삶을 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 그건 바로 ‘아주 잘 쓴 글임(This is good writing)’이란 말이었다.”

심리학자 할 어반의 술회다.

“난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고, 가끔 짧은 이야기를 지으며 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사실 그때까지는 그저 자신감이 부족한 한 젊은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써준 짧은 네 단어의 글이, 나의 작가적 자질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도록 했고, 그 일을 계기로 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 아직도, 그 노트 여백에 쓰인 네 단어의 말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단 네 단어는 우리나라의 ‘참 잘했어요’ 스탬프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칭찬과 고무에는 여러 마디 장황한 말이 필요치 않다. 단 네 단어(우리식이라면 두 낱말)면 충분하다. 물론 매우 기초적인 이 낱말들도 사전에 실려 있다. 비록 이 낱말들을 사전을 보고 배우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몇 마디 말을 할까. 어떤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감안하면 사용하는 어휘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거칠게 어림셈 해봐도 하루 1백개 어휘를 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변호사나 정치인, 교사 등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실제 몇 가지 어휘를 쓰겠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의 수가 50만 개가 넘는다. 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낱말 수는 20만 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유령어다.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어교육용 어휘목록에 정규교육 개시 이후 사춘기 이전에 익혀야 할 낱말 수가 1만 4천여 개쯤 된다. 그러니 우리나라 국민으로 살아가는데 1만4천 단어만 알고 있으면 평생 큰 어려움이 없다는 거다.

참고로 셰익스피어는 18,000개의 어휘를 구사하고 대문호라는 칭호를 얻었다. 셰익스피어 어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표현을 구사했다. 그래서 영국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우쭐댔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국민들이 조금만 더 어휘력을 늘린다면 지하에서 고요히 잠자는 셰익스피어를 놀라게 해 깨울 수도 있겠다.

미국의 언어학자 촘스키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그렇듯 풍부한 어휘력(언어의 전부는 아니지만)은 곧 생각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말’의 바다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말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요즘 ‘뉴딜’로 주목받는 스튜어트 체이스의 이 말처럼 우리는 일평생 말 속에 살며 말의 고마움을 모른다. 나아가서 사전의 고마움과 유용성을 너무 모른다. 인터넷의 편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책상머리에 어떤 종류의 사전이든 한 권 이상을 비치해두고 펼쳐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말모이’ 보물 지정은 참으로 반갑고 크게 자부할 일이다.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