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누구에게 가장 많은 소송을 당하는가?
이슈분석 : 소송 당하는 기자들 주된 이유와 명예훼손 논쟁
쟁점 1. 기자들은 누구에게 가장 많은 소송을 당하는가?
쟁점 2. 기자들이 소송당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쟁점 3. 선진 외국의 명예훼손 소송은 어떻게 다뤄질까?
- 공인 보도 시 언론사 고위간부 통해 압력이나 회유 들어오기도(64.8%)
- 명예훼손 소송 당할 위험을 느끼는 취재대상은 일반인-법조인-연예인-국회의원 순
-국회의원, 언론중재위 제소 두 배 이상 급증
- 기자들이 소송 당한 주된 이유는 명예훼손(78.3%)
- “기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정적이다” 82.0%
갈수록 속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뉴스의 생산과 유통, 소비과정에 많은 변화들이 뒤 따르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뉴스 들 중에는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포털 사이트에서의 기사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조작하는 뉴스 어뷰징(News Abusing)과 뉴스의 형식을 닮은 가짜 정보 등이 사회적 논란을 떠나 언론윤리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언론인이라면 오랜 기간에 걸쳐 정착된 직업윤리를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는 단지 언론인의 윤리적 처신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넘쳐나고 있다. 언론윤리가 종사자의 도덕적 자기 규율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각 언론사 또는 기자협회 등에서 오래전부터 내세운 언론인들이 지켜야 할 언론윤리에 관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공정성·객관성·불편부당성·진실추구라는 거대 원칙하에 개인의 프라이버스 존중, 취재원의 비밀 지켜주기, 이해관계 상충 피하기, 광고와 기사의 엄격한 구분, 범죄보도에서 피의자 인권 존중 등이 전형적인 언론윤리에 관한 것들로 꼽혀왔다.
그렇다면 일어한 원칙들이 취재현장에서 또는 내부 게이트키핑(gatekeeping) 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을까? 이러한 원칙들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언론의 신뢰지수가 가늠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전통 언론사만이 아니다. 온라인 포털 외에도 트위터, 페이스북, 라인, 미투데이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뉴스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양상은 더욱 개인화, 익명화되었다.
전통 언론사들이 게이트키핑 기능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는 이유이다. 뉴스의 독점적인 생산자이자 유통사업자였던 전통 언론사들은 뉴스의 취사선택에서부터 유통경로까지 인터넷에, 포털에 내주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에 의하면 뉴스 이용자들 중 뉴스를 주로 포털에 의존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무려 77%에 달했다. 이처럼 변화된 언론환경에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저널리즘의 윤리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인의 직업윤리는 과거 환경에서 만들어진 유산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윤리적 규범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올드 미디어 체제가 저물고, 포털과 모바일, 알고리즘이 대세인 환경에서 언론이나 포털에 어떤 책임과 윤리적 잣대를 요구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거 유산 중에서도 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여전히 많으며, 급변하는 언론환경에서도 전통 언론사들은 여전히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의 정부기관 및 공직자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판적 보도는 당사자에게는 명예훼손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공직자가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다면 언론에 심각한 위축 효과를 일으키게 되고, 기자는 추후 보도를 행함에 있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소송을 겪고 있으며 소송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공익을 위해 보도할 때 기자들은 소송을 당할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할 의사가 있는지, 언론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기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취재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의 소송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쟁점을 논의해 보기로 한다.
쟁점 1. 기자들은 누구에게 가장 많은 소송을 당하는가?
쟁점 2. 기자들이 소송당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쟁점 3. 선진 외국의 명예훼손 소송은 어떻게 다뤄질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Media Issue> 4권 11호가 조사해 발표한 ‘언론 소송과 언론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기자 인식’ 결과와 언론중재위원가 발간한 <2018년 해외 언론법제 연구보고서>, <미디어 오늘>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언론중재위가 집계한 지난해 국회의원의 조정신청 처리 현황을 받아본 결과, 그리고 언론사 차장·부장급 전현직 기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내용 등을 참고하여 세 가지 쟁점을 풀어보았다.
우선 언론 자유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에 대한 취재 기자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는 기자 301명을 대상으로 2018년 11월 1일부터 9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흥미롭다. 조사대상은 신문사 기자 119명(39.5%), 방송사 기자 71명(23.6%), 인터넷 언론사 기자 44명(14.6%), 통신사 기자 67명(22.3%)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직급별로는 평기자가 234명(77.7%)으로 가장 많고, 차장급 43명(14.3%), 부장급 이상 24명(8%)이었다. 언론계 총 근무경력을 기준으로는 3년 이하 기자가 61명(20.3%), 4년~10년인 기자가 144명(47.8%), 11년 이상인 기자는 96명(31.9%)이 조사에 참여하였다.
응답자 27.6% “취재나 보도로 소송을 당한 경험 있다”
기자들이 취재나 보도로 인해 실제로 법적 소송을 당한 경험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7.6%가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방송사 기자(36.6%)와 신문사 기자(33.6%)가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인터넷 언론사(6.8%)나 통신사(20.9%)보다 높았다.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 대부분(79.5%)은 소송을 1회 겪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2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20.5%를 차지했다.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 가운데 최소 1회 이상 승소했다고 답한 기자들의 비율은 79.5%였으며, 소송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고 답한 기자들의 비율은 20.5%였다.
기자들이 소송을 당한 이유로는 ‘명예훼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78.3%). 초상권 침해 등 사생활 침해(8.4%), 저작권 침해(4.8%), 업무방해(3.6%), 주거침입(1.2%)은 10%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사 유형에 따라 소송의 주된 이유가 달라지는 경향도 나타났다. 방송사의 경우 ‘초상권 침해 등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는 응답이 11.5%에 달했으며, 이는 신문사(7.5%), 통신사(7.1%)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화면으로 타인의 초상을 내보내는 방송의 경우 초상권 침해 등 타인에 대한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일반인인 경우가 45.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원고는 기업인(19.3%), 범죄피의자(16.9%), 정부 고위공직자(14.5%), 정치인(14.5%), 법조인(3.6%) 등의 순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주된 원고의 유형은 언론사마다 달랐다. 신문사의 경우 일반인(42.5%) 다음으로 정부 고위공직자(22.5%)로부터 많은 소송을 당한 반면, 방송사의 경우 일반인(57.7%) 다음으로 기업인(23.1%), 범죄 피의자(11.5%), 정부 고위공직자(7.7%) 등의 순으로 소송을 당했다고 답했다.
명예훼손 소송에 대한 기자들의 위험 인식
기자들이 보도할 때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 위험을 가장 크게 느끼는 대상은 일반인(매우 위험느낌 14.6%, 약간 위험느낌 50.5%), 법조인(매우 위험느낌 16.6%, 약간 위험느낌 47.5%), 연예인(매우 위험느낌 10.6%, 약간 위험느낌 38.5%) 순이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국회의원, 범죄피의자, 언론인의 순이었다. 매우 위험을 느낀다고 답한 항목을 기준으로는 법조인(16.6%)에 대한 위험인식이 가장 높았다.
반면,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 위험을 가장 적게 느끼는 대상은 대통령(매우 위험느낌 9.3%, 약간 위험느낌 18.9%)과 고위공직자(매우 위험느낌 6.6%, 약간 위험느낌32.9%)였다. 대통령과 고위공직자에 의한 소송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게 느끼고 있지만, 위험을 느낀다는 응답 비율은 대통령 28.2%, 고위공직자 39.5%에 달했다.
기자들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보도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체 응답자의 77.7%가 ‘달성해야할 공익이 있다면 소송을 감수하고서 보도하겠다’고 답했다. 언론사별로는 소송을 감수할 의향이 방송사 83.1%, 신문사 81.5%, 인터넷 언론사 72.7%, 통신사 68.6%였다.
언론 보도에 가해지는 압력과 공인 관련 보도
명예훼손 외에도 기자들은 언론 보도에 가해지는 다양한 압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여러 진술문을 통해 조사해보았다. 우선 ‘공인에 대해 보도할 때 언론사 내에서 고위 간부를 통해 압력이나 회유가 들어오기도 한다’는 진술문에 대해 동의한다는 비율은 64.8%로 절반을 넘었다(매우 동의한다 13.6%, 약간 동의한다 51.2%).
‘공인들이 반론권을 악용하여 허위내용을 반론 형태로 보도하도록 청구하기도 한다’는 진술문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응답이 62.4%에 달했다(매우 동의 15.6%, 약간 동의 46.8%). 따라서 기자들은 반론권이 공인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인식은 언론사 유형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매우 동의한다는 응답비율은 방송사(25.4%), 신문사(17.6%), 인터넷언론사(13.6%), 통신사(3%) 순이었다.
‘공인에 대해 취재할 때는 소송에 대한 부담감으로 보도가 꺼려진다’는 진술문에 대해서는 세 명 중 한명의 비율로 동의한다고 답했다(매우 동의 4%, 약간 동의 28.2%). 그러나 방송사의 경우 매우 동의한다는 응답이 8.5%로 다른 언론사에 비해 크게 높았다. 신문사는 보도가 꺼려진다는 진술문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8.5%로 다른 언론사에 비해 높았다(인터넷 언론사 11.4%, 통신사 10.4%, 방송사 8.5%).
‘보도 후에 상대방으로부터 고소하겠다는 말을 듣게 되면 후속보도를 자제하게 된다’는 진술문에는 절반이 넘는 기자들이 동의한다고 답했다(매우 동의 5.6%. 약간 동의 46.5%). 고소의 위협을 받았을 때 후속보도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은 인터넷 언론사(68.2%)가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은 통신사(56.7%), 신문사(50.4%), 방송사(40.8%) 순이었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평가 인식
언론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기자들이 인식하는지를 조사하였다. 먼저 ‘기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떠하다고 느끼는지 물어본 결과, 기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82.0%로 압도적으로 많았다(매우 부정적임 27.0%, 부정적인 편임 55.0%).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인 편이라는 응답은 4.0%에 불과했으며, 매우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다음으로, ‘언론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떠한지 기자들에게 물었을 때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76.0%로 나타났다(매우 부정적 22.0%, 부정적인 편임 54.0%). 언론사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이라는 응답도 전무하였다.
‘기사’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물어본 결과, 기사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라는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47%이었으며(매우 부정적 10.0%, 부정적인 편임 37.0%), 보통 수준인 편이라는 응답은 43.0%, 긍정적인 편이라는 응답은 10.0%였다.
따라서 기자들은 언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느끼고 있음이 드러났다. 기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언론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반면 기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느끼는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기사 자체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느껴지는 반면에 기자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언론사 조직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기자들이 인식하고 있음이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국회의원, 언론중재위 제소 두 배 이상 급증
한편 <미디어오늘>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1월 24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국회의원이 언론 보도로 피해를 봤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청구한 건수가 대폭 늘었다. 언론중재위가 집계한 지난해 국회의원의 조정신청 처리 현황을 파악한 결과 모두 217건을 청구했다. 2017년엔 81건이었으나 2배 넘게 급증했다.
요인은 지방선거와 ‘가짜뉴스’로 보인다. 선거에서 정치공방이 거세질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정치인이 유불리를 따져 언론중재위에 조정을 많이 청구했다는 점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정치권에 ‘가짜뉴스’ 논란이 거세지면서 이를 활용해 불리한 언론보도에 적극 대응하면서 청구 건수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4월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어 “가짜뉴스와 편파보도, 허위사실 게시물에 대한 모니터링 및 신고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자유한국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58건의 방송심의를 요청했는데 언론중재위원회에도 무더기 청구하면서 전체 국회의원의 조정 청구 건수가 대폭 늘었다. 언론이 팩트체크 코너로 정치인들 주장을 바로잡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이에 반발해 정치인들의 중재위 제소 청구 건수가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의원이 조정을 청구한 217건 중 68건은 조정이 성립됐고, 조정불성립은 23건, 기각은 2건, 취하는 88건, 계류는 25건으로 정정 및 반론보도와 손해배상 지급 또는 당사자간 화해가 이뤄진 피해구제율은 81.1%로 나왔다. 이밖에 국기기관의 청구 건수는 2018년 68건이었다. 이중 조정성립은 38건, 조정불성립 결정은 9건, 취하는 9건, 계류는 7건으로 피해구제율은 77.0%로 집계됐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자들이 소송 당한 주된 이유는 명예훼손이 78.3%에 달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의 사례는 어떤지 언론중재위원가 발간한 <2018년 해외 언론법제 연구보고서>가 공개한 자료를 통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사례를 대표적으로 살펴보았다.
<미국 사례>
미국은 전 세계에서 표현과 발언의 자유가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언론사는 국민이 알아야 하는 사항을 보도하는 기관으로서 정부나 의회가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조 아래에서 여러 법적, 정책적 제약이나 소송으로부터 보호받아 왔다. 이는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미국 내 언론사의 발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정책이 부재한 이유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언론 보도로 인한 갈등이나 피해는 꾸준히 존재해왔다. 이를 중재하기 위해 1973년부터 11년간 언론사와 다른 집단, 공인이나 일반 개인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관이 존재하기도 했으며, 언론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 역시 빈번하게 제기되어 왔다. 최근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을 이용한 기사 생산 등의 변화는 언론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둘러싸고 또 다른 법적 쟁점 및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서 고소인은 실제로 자신이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수정헌법 1조에서 보호하는 언론사의 출판의 권리와 가장 많이 충돌하는 다른 법적 관념은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에 포함되는 두 가지 불법행위에는 글 또는 문서에 의한 중상인 라이블(libel)과 말로 인한 비방인 슬랜더(slander)가 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법적 요건이 필요하다. 라이블의 예를 들면, 먼저 고소인은 본인에 대한 진술이 어떻게 고소인의 다른 사람과의 현재 또는 미래 관계에 피해를 주었고 공적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즉,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서 고소인은 실제로 자신이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언론사에 대한 명예훼손에서 승소하기 위해서 고소인은 해당 진술을 제3자가 보았으며, 이로 인한 명예 실추가 발행인의 실수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고소인은 해당 진술이 거짓에 기초해 있고,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약물 복용이나 성추행 등과 같은)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역시 밝혀야 한다. 법원은 맥락상 중요한 사실이 진술에서 빠짐으로써 고소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경우도 명예훼손의 사례로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에 대한 명예훼손에서 공인 내지는 제한적 공인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 언론의 출판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정헌법 1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정헌법 1조와 명예훼손이 충돌할 경우 법원은 고소인 당사자가 공인이나 제한적 공인인지와 해당 진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인지를 먼저 고려한다. 고소인이 공인 내지는 제한적 공인인 경우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승소하기 위해서는 언론사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가지고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
다. 물론 보도가 책임성 있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거짓을 보도했거나 진실을 묵인했다는 현실적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지는 않는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지난 50년 동안 언론사를 명예훼손 소송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왔으며 이는 미국을 다른 국가와 비교해봤을 때 표현과 발언의 자유가 굉장히 높은 국가로 만들었다. 이에 더해 언론사는 법으로 보도에 관한 여러가지 특권을 보장받고 있다. 먼저, 공정한 보도의 특권(Fair Report Privilege)은 기자가 공식적인 기록에 기초해 보도한 경우 명예훼손 소송의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제도다. 이 특권을 보장 받기 위해서 언론사의 보도는 공적 기록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기록의 출처 역시 보도에 언급되어야 한다.
알고리즘, 가짜 뉴스에 대한 언론인 명예훼손 논란 정립되지 않은 상태
중립적 보도의 특권( Privilege of Neutral Reportage)은 신뢰할 만한 단체가 공적 인물에 대한 비난이나 고발을 한 경우, 언론 매체가 이를 인용해 보도하였다면 후에 그 고발이 거짓으로 판명 나더라도 명예훼손 책임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이는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보도는 공적 인물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어야 하며, 고발 내용 자체도 뉴스 가치가 있어야 한다. 보도는 반대 입장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하는 중립적적인 논조로 이루어져야 하며 즉, 공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이밖에 미국의 법은 언론사가 AP와 같은 통신사의 보도를 인용할 경우 인용된 진술에 대해 발생하는 명예훼손의 책임을 피하는 통신사 기사 인용 면책주장(Wire Service Defense) 역시 명시하고 있다. 이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용한 문구 내지는 진술이 신뢰할 수 있는 통신사의 것이어야 하며 인용 당시 언론사는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님을 모르고 있어야 하고 통신사의 보도를 자의적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몇 가지 법적 쟁점이 존재한다.
헌법에 따라 공인 내지는 제한적 공인이 언론사를 명예훼손으로 제소하기 위해서는 언론사가 명예를 훼손한 진술의 책임을 지고 있고, 언론사가 해당 진술이 거짓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진실을 묵인하는 현실적 악의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기사의 경우 고소인이 알고리즘이 해당 진술이 거짓임을 사전에 알았거나 진실을 묵인했는지를 밝혀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쟁점으로 부각했다. 알고리즘은 단순히 짜인 프로그램대로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이 나타나면서 가짜 뉴스나 알고리즘을 이용한 언론사의 기사 작성 등은 수정헌법 1조의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새로운 법적 쟁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짜 뉴스에 대한 정의개념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듯이 미국에서도 알고리즘과 가짜 뉴스에 대한 언론인의 명예훼손 방어 또는 제소 등에 대한 논의나 판례는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영국 사례>
영국은 ‘명예훼손 소송의 천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전통적으로 피해를 주장하는 자에게 유리한 명예훼손법을 운용해온 나라이다.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과 달리 영국의 명예훼손법은 당사자의 명예 보호에 치중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보통법(common law)에 따라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원고는 기사나 출판물 등에 등장한 표현 중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내용이 있다는 점만 입증하면 되고,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소송에서 패소할 소지가 높은 미국보다 원고에게 유리한 영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며 사법 절차를 남용하는 ‘명예훼손 소송 투어(libel tourism)’가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됐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영국의 명예훼손법과 언론중재제도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2014년 1월 1일,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보호에 중점을 둔 ‘2013 명예훼손법(The Defamation Act 2013)’이 시행됐고, 같은 해 9월, 언론분쟁 중재처리기관인 독립언론표준기구(Independent Press Standards Organisation, 이하 IPSO)가 새롭게 출범했다. 2013 명예훼손법은 제1조에 “중대한 손해(serious harm)”라는 문구를 넣어 명예훼손 성립 조건을 과거보다 까다롭게 만들었고, 제4조에는 원고가 주장하는 명예 훼손 표현이 공익(a matter of public interest)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면 면책이 가능한 조항을 삽입했다. IPSO는 언론분쟁 중재처리기관인 언론고충처리위원회(Press Complaints Commission, 이하 PCC)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 단체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설립됐다.
‘명예훼손 소송의 천국...“중대한 손해(serious harm)”조항 삽입 까다로워져
IPSO의 핵심 역할은 IPSO에 가입한 회원 언론사들이 언론인 실천 강령(Editors’ Code of Practice)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IPSO에 가입하지 않은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즈> 등 언론사들도 자발적으로 언론인 실천 강령을 준수한다. 언론인 실천 강령은 기자윤리위원회(Editors’ Code of Practice Committee)가 제정하고 수정한다. 위원회는 매년 내용을 개정하는데, IPSO를 비롯해 언론인, 일반 대중, 의회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개정안을 IPSO가 수용하면 그때부터 수정된 언론인 실천 강령이 시행된다. 또 언론 취재 관행과 기술 발전, 독자들의 요구 등을 반영해 현실에 맞게 실천 강령을 수정한다.
기자윤리위원회는 IPSO와 별도 조직이지만 IPSO 회장과 대표가 기자윤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완전히 분리된 조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언론인 실천 강령 헌장(Editors’ Code of Practice Committee Constitution)에 따르면 기자윤리위원회에는 총 15명의 위원이 있는데, 10명은 신문사, 잡지, 온라인 매체에 종사하는 임원급 기자들이고 이 중 5명만 언론에 종사하지 않는 독립 위원들이다. 이 때문에 기자윤리위원회가 언론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인 실천 강령은 1991년 이후 30차례 넘게 개정됐고, 가장 최근 개정된 강령이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언론인 실천 강령은 총 17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30차례 넘게 개정된 언론인 실천 강령, 엄격하지만 모범적 운영
1) 정확성: 기사 오류 또는 오도하거나 왜곡된 내용은 신속하고 빠르게 수정해야 하며, 사과문을 게재해야 한다. IPSO가 중재에 개입할 경우, 규제기관인 IPSO가 요청하는 대로 수정해야 한다.
2) 사생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생활과 가족생활, 가정, 의료 정보, 인터넷 사생활 등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3) 성추행: 취재원이 원치 않으면 기자는 질문, 전화 인터뷰, 사진 촬영 등을 강요할 수 없고, 취재원이 취재 장소에서 떠나라고 할 경우 그 장소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또 취재원이 요청하면 소속 매체와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
4) 개인의 슬픔과 충격에 대한 보도: 보도 내용이 개인적 슬픔과 관련이 있을 경우 조의를 표하며 취재에 임해야 하며, 기사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다만, 이 조항 때문에 기자가 소송 절차를 보도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생겨서는 안 된다.
5) 자살 보도: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모방 자살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자살 방법 등을 묘사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6) 아동: 기자는 아동의 사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보도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명성이나 지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7) 아동 성범죄 사건 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언론은 16세 이하 아동이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이거나 목격자일 경우 절대 이들의 신분을 기사를 통해 노출할 수 없다.
8) 병원: 기자는 병원 비공개 지역 또는 유사한 성격의 기관에 출입하기 전에 신분을 밝히고 병원 관계자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9) 범죄사건 보도: 기사 내용과 관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범죄 혐의를 받는 인물의 가족이나 친척의 신분을 그들의 동의 없이 공개해선 안 된다.
10) 취재 시 몰래카메라 등의 장치 사용 금지: 언론은 몰래카메라 또는 도청 장치를 이용해 취재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휴대·유선 전화를 도청하거나 메시지, 이메일을 몰래 훔쳐봐서도 안 된다. 또한 디지털 정보라고 할지라도 동의 없이 접근할 수 없다.
11) 성범죄 사건 피해자 보도: 언론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할 수 없다.
12) 차별: 언론 보도 시 개인의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취향 또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경멸적 언급을 피해야 한다.
13) 금융 정보와 언론: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언론인은 기사 취재를 통해 알아낸 금융 정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고, 이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도 안 된다.
14) 기밀 정보의 보호: 언론인은 기밀 정보의 출처를 보호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15) 범죄자와 금전 지급: 특정 범죄를 활용하거나 범죄를 미화하여 보도해서는 안 되고, 사진·정보를 얻기 위해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 또는 범죄자의 주변인에게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서 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
16) 공익: 공익보도에는 범죄 사실 보도,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보도,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잘못된 행동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한 보도, 오심(miscarriage of justice) 공개, 대중과 관련된 부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보도 등이 해당된다.
IPSO가 PCC와 다른 점은 스탠다드(Standards)라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스탠다드 제도는 IPSO 가입 언론사가 언론인 실천 강령을 어떻게 준수하고 있으며, IPSO가 개입해 중재한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매년 연차보고서(annual statement)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IPSO는 “스탠다드 같은 제도는 지금껏 어떤 언론 규제기관도 도입하지 않았던 제도다. 언론사들이 기자윤리강령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 언론중재기관인 IPSO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사례>
프랑스 언론은 1881년 제정된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La loi du 29 juillet 1881 sur la liberté de la presse, 이하 언론법)’에 의해 그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이 법률은 1798년 8월 26일 프랑스 대혁명 당시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11조1)를 성문화한 것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원칙을 천명한 헌법적 가치를 가지는 텍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에서 언론 자유의 위배 행위를 규정한 가장 대표적인 조항으로서 처벌 사례가 많은 것은 명예훼손이다. 1881년 언론법 제29조는 명예훼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개인 혹은 단체를 언급함으로써 그의 명예나 평판을 침해하는 모든 주장과 비난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이러한 주장 혹은 비난을 직접 발행하거나 인용의 형태로 발행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의혹을 제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혹은 명시적으로 해당 개인이나 단체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비난을 담은 연설, 고함, 위협, 서면, 인쇄물, 벽보 또는 포스터를 통해 당사자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다면 처벌할 수 있다.”
언론이 진실 적시를 통해 명예 훼손하는 경우에는 면책
이처럼 언론법 제29조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까지도 명예훼손 행위에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혹 제기는 저널리스트의 주요 작업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저널리스트에게 해당된다. 또한 인쇄매체나 웹 사이트, 블로그, 토론방에서 비록 신중한 어조로 의혹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나아가 항소법원은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선의를 입증할지라도, 누군가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그것이 명확한 형태이건 혹은 교묘히 감춰진 형태이건, 범죄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언론이 진실 적시를 통해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면책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진실 적시가 예외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면되었거나 또는 해당 법률에 의해 이미 처벌을 받은 경우 및 사생활 관련 사건의 경우가 그러하다. 판례는 진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의 경우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상당히 까다롭게 판단한다. 제출된 증거는 확실해야 하고, 사실에 기반해 조목조목 진술되어야 한다. 진실 적시에 해당해 명예훼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는 1%밖에 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는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로버트 포리슨이 르몽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례다. 르몽드의 저널리스트인 아리안 슈망(Ariane Chemin)은 2014년 자신의 기사를 통해 포리슨의 주장은 ‘헛소리’라고 썼는데, 이에 대해 포리슨이 르몽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슈망은 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증언들, 언론 기사들, 포리슨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 그리고 포리슨이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고 가장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을 때의 판결문 등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2017년 파리 지방법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판은 재판부의 몫이 아니지만 제시된 증거들을 통해 포리슨이 지속적으로 지극히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유태인 학살에 대해 오명을 씌우는 작업을 늦추지 않았고 (…) 그의 작업에는 과학적인 속성이 부재하다”라며 슈망의 손을 들어줬다. 2018년 4월, 파리 항소법원 역시 저널리스트가 포리슨을 ‘진실 날조자’로 규정한 것은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의 역사상 상당히 드문 사례에 해당하는 ‘진실 적시로 인한 예외’라고 판결했다.
언론 자유의 남용’과 ‘언론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 유지
프랑스의 언론법은 오랫동안 ‘언론 자유의 남용’과 ‘언론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완벽한 원칙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균형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프랑스 언론법의 개정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점점 더 제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평등 및 시민권법의 제정과 더불어 개정된 언론법은 인종이나 종교적 이유로 인한 차별뿐 아니라 성적 취향, 장애로 인한 차별, 젠더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 등 혐오를 조장할 만한 다양한 차별적 발언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언론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이자 동시에 민주주의적 가치인 인권의 보호일 것이다.
그러나 언론법의 개정이 비판적인 표현마저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힘들다. 테러 선동과 옹호 메시지에 대한 처벌이 그런 사례다. 테러 선동과 옹호 메시지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처벌이 급증했다는 비판이 많다. 더구나 선동과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의 정책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검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독일 사례>
독일에서 언론피해 구제는 대표적인 언론자율규제기구인 ‘독일 언론평의회(Deutscher Presserat)’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독일 언론평의회는 언론계 내부의 자발적인 의지로 설립된 조직이었다. 설립 초기 언론평의회의 최우선 목적은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을 막고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것이었고, 언론의 잘못을 바로잡고 언론 보도로 인한 불만을 처리하는 기능은 부차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독일 언론평의회는 1973년 ‘언론윤리강령(Pressekodex)’을 제정하고 불만처리위원회를 만들면서 언론피해 구제를 위한 기능을 체계화했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언론윤리강령을 수차례 개정해왔다.
자율규제기구 언론평의회 결정, 법적 구속력 없어 실효성 비판 끊이지 않아
하지만 자율규제기구로서 독일 언론평의회의 결정은 법적구속력이 없어 그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언론 보도의 영향력과 파급력, 지속력이 갈수록 커지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실효성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타율 규제는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독일 언론평의회는 2001년 11월 28일 개정된 언론윤리강령을 당시 연방 대통령인 요하네스 라우(Johannes Rau)에게 또다시 제출한다. 이는 언론윤리강령이 국가의 대표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행동이며 특별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 절차는 아니다. 언론윤리강령은 이후 디지털 환경에 따른 변화를 감안해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현재 언론윤리강령은 총 16조 47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론윤리강령의 각 조에서는 선언적인 윤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각 항에서 세부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제1조에는 언론 최고의 사명으로 진실 존중과 인권 존중, 진실 보도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제2조 및 제3조에 따르면 이러한 언론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언론은 보도에 신중함을 기해야 하며, 보도된 내용이 이후에 오보로 판명될 경우 이를 즉시 정정해야 한다.
혐오 발언, 형법 제130조 ‘국민선동(Volksverhetzung)’죄로 처벌
독일에서 혐오 발언은 <형법> 제130조 ‘국민선동(Volksverhetzung)’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독일 나치의 전쟁 범죄를 옹호하는 발언이나 행위, 다른 소속 집단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발언이나 행위도 모두 금지된다. 독일에서는 최근 반난민과 반이슬람, 반외국인 정서로 인해 국민선동죄에 해당하는 혐오 발언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더 빨리 전파되고 있다.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분쟁과 처벌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한편 최근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언론과 온라인 플랫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관리와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이 2017년 9월 <네트워크집행법>을 제정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업자의 관리 책임을 강조함에 따라 소셜네크워크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언론사의 책임 소재는 오히려 불분명해지거나 역할이 중복되고 있다. 독일 언론평의회는 온라인 언론 환경에 발맞추기 위해서 조직과 언론윤리강령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제도를 바꾸기에는 현상의 속도가 더 빠르며 변화의 폭도 큰 게 사실이다.
특히 독일 언론평의회가 담당하지 않는 영역을 규정하기 위해 강력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오히려 사회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가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서 외부 개입을 막는 데 치중하는 동안 언론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네트워크 시대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인격권의 충돌 양상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람과 언론> 제4호(2019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