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마약?, ‘정의로운 국민연금’ 전제돼야

[분석과 진단] 뭇매 맞는 국민연금공단, 무엇이 문제?(상)

2020-09-21     박주현 기자
MBC 9월 18일 보도(화면 캡쳐)

750조 국민연금, 마약하고 투자하나?

750조 국민연금, 마약에 취해 투자했나?

"수십조 운용하는데"..마약하고 국민연금 굴렸나?

이사장 없는 사이 국민연금 직원은 대마초피며 90조 운용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전주 혁신도시에 본사를 둔 국민연금공단이 창립 33주년 기념식을 맞는 날 ‘마약 사건’에 얼룩져 공분의 도마에 올려졌다. 공석 중이던 이사장이 취임한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포털 '다음'의 뉴스검색 서비스(2020.09.21)

서울의 주요 언론들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이 마약 혐의로 적발된 사실이 알려진 지난 18일 이후 비판과 조롱의 기사들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하필 창립 기념일에 발생한 것도 문제를 키웠지만, 국민들이 낸 공적자금으로 투자업무를 담당했던 운용역들이 마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충격을 더했다.

이들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SNS를 통해 대마를 구입한 뒤, 이들 중 한 명의 전주시 한 거처에서 퇴근 후 모여 수차례 대마를 흡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공단은 이 사실을 지난 7월 적발해 조치를 취했다고 하지만 전주출신 김성주 전 이사장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사직하고 난 이후 공석 중인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이어서 더욱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사건이 알려진 시점은 국민연금공단이 창립주년을 맞은 공식 휴무일이었다. 공단은 전날인 17일 ‘창립 33주년 기념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기금적립금 752조 원을 보유한 세계 3대 연기금으로도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두 함께 행복한 국민, 든든하고 신뢰받는 연금, 스스로 혁신하는 공단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튼튼한 제도와 기금운용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부터 ‘국민 자산 75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직원이 대마초를 피웠다는 소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750조 국민연금, 마약하고 투자하나”란 타이틀과 함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는 비보가 주말 내내 언론에 의해 전해졌다. 

이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지적과 함께 "국민연금공단 내부에 원칙과 정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따가운 비판도 일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공단의 석연치 않은 문제점들을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해 보기로 한다.

마약 사건 7월부터 내부 파악, 그런데 왜 이제 발표?

국민연금공단 대국민사과문(홈페이지 갈무리)

18일 전북지역 언론들은 경찰수사 결과를 전하느라 바빠졌다. ‘전북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책임운용역 1명, 전임운용역 3명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대체투자 운용역으로 구성된 이들은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또 “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들이 한 차례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귀가‘한 사실 등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서울언론들은 ‘750조원에 달하는 국민 노후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강 해이', ’대마초피며 국민복지‘라는 비판적 기사와 해설들을 내보냈다.

이 사건에 관한 국민연금 관계자의 언론에 대한 답변도 황당한 기사거리로 취급됐다. “직원들이 마약했나”는 질문에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오늘은 창립기념일이고 직원들이 대부분 출근하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기사로 다뤄질 정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경찰에만 맡기고 국민연금공단은 ‘나 몰라라’ 뒷짐 질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마약 투약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금운용본부 직원 4명은 자체 감사를 통해 지난 7월 14일 경찰에 고발됐다. 그런데 이들이 직무에서 배제된 이후 지난 9월 9일 해임됐다.

이 기간은 막대한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조직의 책임을 지는 이사장이 공석 중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 또한 무려 8개월여 만에 새 이사장이 취임하자마자 대형 사건이 외부로 노출됐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마약 투약, 무엇 때문에? 

전북지방경찰청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 대체투자를 담당하는 책임 운용역 A씨와 전임 운용역 B씨 등 4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대체투자는 납입된 국민연금으로 건물, 도로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일을 담당하는 업무다. 그런데 이 업무 담당자들은 지난 2월에서 6월 사이 전주에 있는 C씨의 집에서 함께 마약류인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북경찰은 대마초 흡입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이들의 소변과 모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2명에게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으며 나머지 2명 중 1명은 음성이 나왔고 1명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7월 해당 사실을 파악하고 업무 배제 및 경찰 고발 조치를 취하고 이들 운용역은 내부 감사를 통해 지난 9일 징계위원회에서 해임 조치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동안 이 사실을 알고도 왜 쉬쉬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JTBC 9월 18일 보도(화면 캡쳐)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6월 말 현재 752조 2,000억원의 공적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 운용역이 근무한 대체투자 부문은 약 90조 5,000억원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12%에 달한다. 대체투자 자산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이 전통적 자산이 아닌 사모투자, 부동산 투자 등을 일컫는다. 이외에도 항공기나 선박 등 다양한 투자자산이 대체투자에 묶인다.

대체투자 운용역들은 투자 검토를 위해 직접 실사를 거쳐야 해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다. 또 해외 운용사 등 현지 인력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해외파 출신 인력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들의 일탈과 기강 해이가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750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노후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내 기관이다. 설립 당시 6개 팀, 40명으로 시작해 2003년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고 2010년 300조원, 올해 700조원을 넘기며 글로벌 연기금으로 주목 받는 곳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 아니냐는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비위 행위, “솜방망이 처벌” 비난

국민연금공단의 '기강 해이' 지적은 이번만이 아니다. 잊을만하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앞서 지난 2017년에는 기금운용본부 퇴직예정자 3명이 프로젝트 투자 자료 등 투자 기밀정보를 빼돌렸다가 적발됐고, 2018년에는 기금운용본부 직원 114명이 5년 간 해외 위탁운용사로부터 약 8억 4,700만원을 지원 받아 해외 연수에 다녀온 사실이 적발됐다.

전주MBC 9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공단 임직원 행동강령에는 '직무관련자로부터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 등을 받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가 위탁운용사 선정과 운용의 공정성을 해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를 위배한 것이다.

더구나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017년 음주운전, 성 관련 비위, 금품수수, 기밀유출 등을 저지른 직원에 대해 대부분 솜방망이 징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2년부터 2016년 5년간 국민연금공단 징계현황 총 57건 중 54건이 견책이나 감봉 1~3월, 정직 1~3월 등 낮은 수위인 것으로 집계됐다. 해임은 2건, 파면은 2건이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금을 관리하는 공적 기관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관에 비해 높은 책임감과 도덕·윤리성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마초 사건은 국민연금의 수장이 공백이었던 상황에서 발생해 국민연금의 기강 해이와 이에 대한 내부 통제의 문제성에 대한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이사장이던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를 위해 물러나면서 8개월 동안 수장 없이 운영됐다.

박정배 기획이사가 대행직을 수행하다 최근에서야 김용진 신임 이사장이 임명됐다. 그래서 그런지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8개월 공석 끝에 임명된 이사장, 또 정치인사?

8월 31일 국민연금공단 17대 이사장에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임명됐다. 보건복지부는 김 이사장이 국민연금공단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국민연금공단은 전임 이사장이었던 김성주 의원이 지난 1월 4·15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임한 이후 약 8개월 만에 새 수장을 맞게 됐다.

새 이사장 체제 이후 국민연금공단은 17일 ‘창립 33주년 기념식’을 맞았지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이날 임직원 7,125명(1월 1일 기준)은 사내 인트라넷과 유튜브를 통해 기념영상을 시청하며 창립 33주년을 축하했다. 이번 기념영상은 창립 33주년을 맞이한 임직원의 소감과 바람을 담아 제작됐다.

취임한 김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공단은 1987년 창립 이래 꾸준한 내실화를 통해 가입자 2,200만 명, 연금수급자 5,000만 명과 함께 명실상부한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입지를 굳혔다"면서 "기금적립금 752조 원을 보유한 세계 3대 연기금으로도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그러면서 "모두 함께 행복한 국민, 든든하고 신뢰받는 연금, 스스로 혁신하는 공단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튼튼한 제도와 기금운용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임 이사장이 취임하자마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전 이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1월 사퇴한 이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지휘부 공백’에 따른 기강 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6월 말 현재 752조 2,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이중 해당 운용역들이 소속된 대체투자 부문의 자산은 90조 5,000억원으로 전체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기관에 전임 이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올해 초 이사장직을 내놓으며 공백이 시작되면서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컸다. 더구나 현 이사장 역시 정치인사, 또는 보은인사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이사장은 지난 1986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재정부 복지노동예산과장, 사회예산심의관 등을 거쳐 2017년 6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기재부 제2차관을 역임했다는 이력이 언론에 주로 공개됐을 뿐, 지난 21대 총선에서 경기도 이천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전력은 지역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기재부 2차관으로 발탁된 그는 지난 4월 21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이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 후 이사장에 임명된데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전임자인 김성주 전 이사장에게 제기됐던 ‘보은인사’, ‘낙하산인사’, ‘정치인사’ 라는 따가운 비판이 되풀이됐다. 김 전 이사장도 2016년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전주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17년 11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배경과 절차가 비슷하다.

이를 의식했는지 신임 이사장은 "국민의 소중한 연금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그 책임에 걸맞은 윤리, 투명 경영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최고의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돼 대형 마약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번 사건은 국민연금의 수장이 공백이었던 상황에서 발생해 국민연금의 기강 해이에서 비롯됐다는 비판과 함께  내부 통제의 적절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연거푸 이뤄진 정치적 인사로 인한 부작용이 노출된 것이라는 비판이 높다.

가뜩이나 본사가 전주 혁신도시로 이전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아왔던 서울 보수언론들에게 큰 이슈 거리를 제공한 셈이 됐다.  그러나 문제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편에 계속 이어짐.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