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폭탄 때문에 조례안 부결이라니...전주시의회 왜 이러나?

[전북지역 신문·방송 주요뉴스 톺아보기] 2020년 9월 16일(수)

2020-09-16     박주현 기자

지방자치단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집행부를 상대로 따지며 묻는 질의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거나 심지어 회유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데 이어 이번에는 문자 폭탄이 무서워 조례안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부결시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논란의 진원지는 전주시의회. 14일 시정질의 내용의 사전 조율 등으로 구설에 휘말리더니 15일에는 ‘전주시 차별금지 및 평등권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부결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시의회 행정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 조례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했지만 부의하지 않게 된 배경이 파장을 불러 모으고 있다.

KBS 전주방송 보도(화면 캡쳐)

이번 조례안은 22명의 시의원이 찬성해 발의됐다. 그런데 찬성했던 행정위 소속 의원들까지 이날 모두 반대해 빈축을 샀다. 교계 등의 반발을 이유로 무산되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석연치 않다.

시의회 서윤근 의원(정의당, 우아1·2동,호성동)은 '전주시 차별금지 및 평등권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지난 1일 대표 발의했다.

서 의원 등은 조례안 제정 이유에서 '전주시민을 비롯한 전주시 내 모든 사람 간의 차별과 혐오를 금지함과 동시에 만인의 평등권을 보호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전주시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다'고 적시했다.

그런데 조례안 찬성 명단에 오른 행정위원회 소속 의원 8명 중 5명이 심사를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로부터 '폭탄 문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충분한 논의과정 없이 불발시킨 것이다.

시의회는 시민의 권한을 위임 받은 시민의 대의기관이다. 무엇보다 숙의의 공론장이 되어야 할 지방의회가 몇몇 의원들의 이해관계나 집행부 또는 외부 압력에 의해 숙의과정이 무시된다면 존립할 이유가 없다.

설상가상, 이에 대한 지역언론들의 보도태도가 더 큰 문제로 대두됐다. 오히려 갈등과 논란을 부채질한 때문이다.

지역언론들은 이 조례안이 발의되자 곧바로 ‘시비’, ‘논란’, ‘대립’, ‘쟁점’, ‘갈등’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해 보도함으로써 조례안에 큰 문제가 있는 듯이 전달해 왔다.

조례안 찬성에 이름이 오른 시의원들을 향해 심지어 일부 언론사들은 “내용도 모르고 찬성했다”, “무책임하거나 비난이 두려워서 찬성했다”는 등의 제목과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전국 최초로 발의된 ‘차별금지 및 평등권 보호에 관한 조례안’에 찬성한 21명의 시의원들을 마치 문제가 있는 의원들처럼 보도했다.

전민일보 9월 16일 7면

조례안이 불발에 그치자 지역언론들은 당연한 듯이 전주시의회 조례안 부결소식을 밋밋하게 전달하는데 그쳤다.

대부분 언론사들은 “찬반논란을 빚어왔던 ‘포괄적 차별금지법 조례안’이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부결됐다”고 기사 리드에서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방송사들 중 전북CBS와 KBS 전주방송은 비교적 상세하게 배경과 문제점을 보도해 차별을 보였다.

CBS 노컷뉴스 9월 15일 보도(홈페이지 갈무리)

전북CBS는 “서윤근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에 동조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소속 의원들까지도 입장을 번복하며 국회법 통과를 선결 과제로 돌렸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 “조례안 찬성 명단에 오른 행정위원회 소속 의원 8명 중 5명이 심사를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로부터 '폭탄 문자'를 받았다”며 그 이유를 덧붙였다.

기사는 “그러나 차별금지법 통과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이번 조례안을 부결한 전주시의회 행정위원회를 향해 비난했다”면서 채민 차별금지법 전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전주시의회 절반이 넘는 22명의 의원이 '차별금지 조례'를 찬성한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상임위에서 부결한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이는 '차별금지 조례'의 취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는 처사"라고 보도했다.

KBS 전주방송도 “상위법에 대한 국회 논의가 끝나지 않았고,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이유인데, 성숙한 토론 문화가 아쉽다”며 “뚜렷한 쟁점 없이 30분도 안돼 정회가 선언되고 다시 비공개회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의원들은 조례안 부결을 선포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서 “행정위 소속 시의원 8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명이 조례안 발의에 서명하면서 순조로운 통과가 예상됐지만,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상당수가 부정적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라며 “조례안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결국 문자 폭탄이 무서워 몸을 사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여 보도했다.

신문들 중에서는 새전북신문이 이날 사설에서 “조례안을 이처럼 가볍게 처리했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며 ”재발방지를 막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경위 설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전주시의회의 조례안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제3조 '차별의 개념'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조항은 차별의 개념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23가지 사유를 들었다.

고용 형태와 국적, 나이, 병력, 사상, 정치적 의견, 사회적 신분, 성별, 언어, 용모, 인종, 임신, 장애, 종교, 출신 지역, 피부색, 학력,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혼인 여부 등이다.

이 중에는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이 포함됐는데 이는 사실상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도 해석되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온 단체와 마찰이 생겼다.

연합뉴스 9월 15일 보도(홈페이지 갈무리)

반대 단체는 국회에 발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조항 중 문제 되는 부문으로 ‘여성과 남성 외 제3의 성을 인정’, ‘동성애자에게 특권을 주는 것’, ‘동성애 성교육 의무화’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통과를 주장해 온 단체들은 이번 조례안을 부결한 전주시의회를 거세게 비난했다.

전북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전북행동'과 '전북민중행동'은 이날 곧바로 성명을 내고 전주시의회가 '차별금지 및 평등권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차별금지 조례안에 반대한 이들은 근거 없는 억지와 부당한 이유를 들며 혐오와 차별을 선동했다"며 "시의회는 이러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차별 금지와 평등권 보장의 관점에서 조례안을 심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이어 "차별금지 조례안을 부결시킨 것은 시의회가 시민 대표로서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며 "인권 존중과 보호 및 실현의무가 있는 지방자치 의회가 혐오와 차별의 주장을 귀담은 상황은 인권적 관점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비판 목소리는 지역언론사들의 지면과 영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합뉴스와 전북CBS(노컷뉴스)가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을 뿐이다. 

다음은 9월 16일(수) 전북지역 주요 신문 및 방송의 1면 또는 관련 기사 제목이다.

전북일보

물동량 전국 1.1% 군산항 ‘침체의 늪’

“이번 명절엔 오지 말거라~”

“추석 연휴 이동 자제해달라”

전주세계소리축제 ‘IT로 잇다’ 오늘 개막

신재효 판소리 사설 필사본 완질 발견

‘전주시 차별금지 조례안’ 시의원 만장일치로 ‘부결’ -4면

전북도민일보

"가고 싶은 고향, 이번만은 자제를"

새만금개발청 신시야미 개발기본계획 승인 관광레저사업 본궤도

"안 오는게 효도"

전북 101번째 확진자 동선폭 커 ‘비상’

유은혜 장관 "12월 3일 수능 예정대로"

운명 갈린 공공청사 이전·차별금지법 -4면

전라일보

"따뜻한 거리두기로 안전한 추석연휴를"

“이번엔 안와도 된다…마음만 같이 하자”

올 수능 12월 3일 예정대로 진행

새전북신문

"가게 내놔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사상 최초 비대면 공연으로 치러져

"안부는 전화로, 선물은 택배로"

전주시의회, 차별금지 조례 부결-공공청사 통과 -5면

찬반 팽팽한 조례를 토론도 없이 부결하다니 -10면

전북중앙신문

감기야? 코로나야? 헷갈려

"추석, 만남은 잠시 미루고 마음 전달을"

소리축제 '_잇다' 오늘 막올라

전주시의회 이슈 안건 2題 희비 엇갈려 -5면

전민일보

새만금 신시야미 관광레저용지 개발사업 가시화

전주세계소리축제 오늘 개막

전북체육회-도 문체국 오찬… 예산 언급 없었다

전주시의회‘차별금지 조례’무산… 상임위 부결 -7면

KBS 전주방송

“문자 폭탄 때문에”…‘전주시 차별금지 조례안’ 결국 부결

JTV

도의회 이어 전주시의회도 차별금지조례안 부결

전북CBS

'문자 폭탄' 받은 전주시의회 '차별금지 조례' 상임위 부결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