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노동자의 죽음과 숨 쉴만한 삶 사이
'전북노동브리프(Jeonbuk Labor Brief)' 2025년 가을호(통권 제11호) 발행 -초점
<전북의소리>는 노동계의 제반을 조사·연구하며 지역 노동문제를 시의성 있게 발굴하고 의제화하는 계간 <전북노동브리프>와 제휴해 지역 노동계 이슈에 대한 현실 진단과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글을 고정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노동자의 죽음
노동자가 죽었다. 올해 10월 22일, 부안군 동진면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노동자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 10월 15일, 완주군 봉동읍 배터리 제조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죽었다. 10월 13일, 10일 오전 어업 중 빠져 실종되었던 이주노동자가 죽은 채 발견됐다. 10월 3일,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위해 뚫어둔 구멍에 추락해 죽었다. 9월 24일, 남원시 왕정동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해 죽었다. 8월 30일, 완주군 용진읍 공사현장에서 노동자가 다리 아래로 추락해 죽었다. 8월 28일, 완주군 생태탐방로 조성공사 현장에서 벌목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해 죽었다. 8월 14일, 정읍의 산업용 여과지 제조공장 에어탱크가 폭발해 치료를 받던 노동자가 죽었다. 7월 24일, 김제에서 배관수심 측정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폭염에 쓰러져 이틀 뒤 죽었다. 7월 23일, 대승정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설비에 끼어 죽었다.
죽고, 죽고, 죽었다. 그리고 그들은 숫자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숫자조차 되지 못했다. 노동자의 죽음이란, 때로 그렇다. 전북은 해마다 평균 3,800여 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40명이 사망하는 지역이다. 전북의 임금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고 사망자 비율, 사망만인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전북 지역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북의 노동 구조는 전국 대비 제조업 비율이 낮고 불안정 일자리 비율이 높으며, 대기업 비중이 적고 열악한 중소기업 위주다.
전북의 지역내 총생산(GRDP) 구성비는 꾸준히 감소해 왔으며, 지역 노동시장은 낮은 고용률, 낮은 시간당 임금, 높은 영세 규모 사업체 비중, 높은 비정규직 비율 등 불안정‧저임금 우세형의 모습을 보인다. 2025년 상반기 체불임금(3.8%)도 507억원에 달해 임금노동자 비중(3.1%)에 비해 체불액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에서 지난달 발표한 2025년 8월 사업체노동력조사 및 4월 시도별 임금·근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은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근로자 1인당 임금총액이 17개 광역시도 중 제주 다음으로 낮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전국 최저 수준으로 전년동월대비 전혀 오르지 않았다.
17개 광역시도 중 실질임금총액 증감률이 0% 이하인 지역은 광주(-0.4%)와 전북(0.0%)뿐이다. 전북노동브리프 이번호에 게재된 2025년 2분기 전북지역 고용‧노동‧산업‧가계 동향에서 살핀 바에 따르면, 청년 취업자 수(95천명)는 6천명, 고용률(37.0%)은 1.1%p 감소하였고, 청년 실업률은 9%로 경북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등 비임금 취업자 비중은 전국평균보다 높고, 임금 취업자 비중은 낮다. 더하여 상용직 월평균 임금은 최근 5년(2019~2024년) 동안 582,955원(17.1%)이 인상되었으나 전북지역은 394,228원(13.2%)이 인상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벌어진 지역 간 임금 격차가 전북에서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산업구조 변화‧기후위기‧사회적 재난 등에 전북 노동자들이 특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전북의 실질임금이 최저 수준인 것도, 반복되는 산업재해로 인해 죽고 다치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삶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구원과 지역 노동계에서는 그간 전북의 전반적인 고용의 질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데다 평균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라 할지라도 소위 '괜찮은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양질의 고용으로 보기 어려운 취약성이 있으며, 따라서 정부의 표준적인 노동정책으로부터 배제되는 취약노동자층이 많으므로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차별적인 지역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온 바 있다(강문식 외, 2022).
이러한 전북에서 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반복되고 숫자로 환원되는 죽음들 속에서, 결국 숨 쉴만한 삶을 누리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야 할 주변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마는 곳에서, 전북에 사는 사람이라는 이름에 덕지덕지 붙은 취약성 따위를 어쩔 수 없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공간에서,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 ‘노동’과 ‘삶’은 대체 어떤 모습이며, 모습이어야 하고, 모습일 수 있는가?
계간 전북노동브리프 2025년 가을호(통권 제11호)는 청년 세대에게 생존한다는 일이 버거운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 팬데믹과 계엄이란 형태로 단절과 죽음을 물리적인 공기 속에서 경험해야 했던 사회, 밀려나는 것들과 밀려드는 것들 사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개발과 발전이라는 중심의 언어들만을 반복하는 지역의 사회 전북에서의 ‘일’과 ‘삶’의 의미를 고민한다. 그것은 자격 없는 자들을 몰아내고 죽이라 명령하는 극우 정치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정상과 규범, 능력과 성장이라는 지배적인 가치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1분 1초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잘라내고 효율적인 시간 안에서 능력과 자격 있는 자가 되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내면화한 개인들에게 사회는 말한다. “왜 너만 죽어야 해? 왜 너만 손해 봐야 해? 왜 너는, 힘들게 일해서 돈 벌어야 해? 죽어야 하는 건, 자격도 능력도 없이 사회에 기생하는 약한 것들 아닐까? 죽지 말고, 죽여.” 그러므로 노동이다. 그러므로 삶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일하(지 못하)는 몸의 삶을 말해야 한다.
숨 쉴만한 삶
우리는 공기 속에 산다. 아니, 공기와 산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숨쉬기’란,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으로서 몸 외부의 공기를 내부로, 내부의 공기를 외부로 순환시키는 물리적인 공기와의 연결이다. 동시에 사회문화적인 공기 속에서 ‘살만한 삶’이 가능한지 끊임없이 되묻는 일상의 반복이기도 하다. 일하는 사람은 숨을 쉰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공기를 통해 퍼질 때 회사에서 나눠주지 않는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 안에서 기다려야 했던 노동자, 분진 속에서 호흡기가 망가진 노동자,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숨을 참는 노동자, 폭염 속에서 일을 그만두지 못한 채 쓰러진 노동자,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호흡 곤란을 겪는 노동자, 다른 이들이 피하는 악취에 파묻혀 두통에 시달리는 노동자, 물에 빠진, 기계에 끼인, 갇힌 노동자. 숨쉬기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치명적인 행위”(채석진, 2021a: 41)지만, 살아있는 것들의 숨쉬기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숨이 막혀올 때야 숨쉬기는 비로소 당연하지 않은 행위가 된다.
그러나 숨쉬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매일 반복되는 강도 높은 노동은 노동자의 몸을 피로로 마비시킨다. 억압적인 사회의 공기 속에서 어떤 목소리는 몸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 힘을 소진한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 그것은 우리가 어떤 공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지에 따라 각자의 삶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숨 쉴만한 삶’을 고민한다는 일은, 일하(지 못하)는 몸이 그를 둘러싼 공기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노동자의 의식이 일하는 환경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으며 구성되는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이 지닌 취약성의 형태는 성별과 성적 지향, 지역, 연령, 신체·정신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종교, 학력, 가족 상태, 혼인 여부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취약성은 공기 속에서 교차한다.
채석진(2021a)은 그의 논문 <팬데믹 시대의 숨쉬기에 관하여>에서 페미니스트 진영의 ‘숨쉬기’에 관한 논의가 현대 페미니스트 논의의 핵심 개념인 물질성(materiality), 교차성(intersectionality), 취약성(vulnerability)과 결합해 발전해 왔음을 이야기하며, 권력관계 속에서 숨쉬기가 이질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준 독일 페미니스트 학자 고르스카(Górska, 2016)의 <숨 쉬는 것은 중요하다: 취약성에 관한 페미니스트 교차성 정치(Breathing Matters: Feminist Intersectional Politics of Vulnerability)>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 인용문에는 일하(지 않는)는 몸들의 취약성이 공기 속에서 교차하며 누군가에겐 당연한 ‘숨 쉴만한 삶’이 누군가에겐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선명히 드러난다.
“페미니즘이 불평등한 사회적 권력관계를 분석하고 사회적 정의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와 전략들을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접근 방식이라면, 페미니즘은 권력관계의 역동과 차별적 작동을 분석하는 분석적이자 정치적인 개념인 교차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작동할 수 없다. … 취약성은 이러한 역동의 핵심적인 측면들 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사람에게 삶은 숨 쉴만한 것이고, 다른 이에게 삶은 질식시키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해서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일상의 투쟁이다. (Górska, 2016, p. 24)”
전북노동정책연구원에서 2023년에 수행한 <전주 종합리싸이클링타운 노동조건 실태조사>는 전주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리싸이클링타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선제적으로 살핀 연구다. 연구가 수행된 이듬해 리싸이클링타운에서는 폭발사고로 노동자 5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고르스카가 광부와 난민, 흑인의 숨 쉬는 몸을 질식시키는 물리적 공기와 담론을 통과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냈듯, 나는 이 조사에서 전북의 노동자가 살아가는 공기, 숨 쉴만한 삶을 누릴 자격과 경계, 밀려나고 지워지고 혐오 받는 몸들을 읽는다.
생활폐기물 처리는 도시적 삶에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는 일이다. 악취, 소음, 분진 등의 환경적 문제로 민원이 제기되므로 ‘혐오시설’은 시민들이 적고 보이지 않는 공간에 지어진다. 전주시는 수익형 민자사업(BTO)으로 리싸이클링타운 운영 책임을 민간 기업들에게 떠넘겼다. 공사비는 전주리싸이클링에너지(주)가 투자해 사업 시행권을 가졌고, 태영건설·에코비트워터·한백종합건설·성우건설 등의 출자로 설립되어 위탁 운영되었다. 그리고 리싸이클링타운 연구 결과와 이듬해 폭발사고에 대해 민간 기업들 또한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는 사이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들은 아프고 죽었다.
연구에서 노동자들의 주관적 건강 평균 점수는 3.1점으로 한국 전체 임금노동자(3.7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었고, 작업 중 유해·위험요인 노출 시간은 모든 항목에서 1.7~3.7배 길었으며, 신체·정신 모든 측면에서 적게는 두 배, 많게는 70배까지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지어진 지 5년이 되지 않았을 때 수행된 조사지만 이미 부식성 가스 때문에 천정을 모두 교체해야 했고, 에어컨과 스마트폰 등 기기들이 부식되어 고장났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민원 문제로 문을 닫고 배기시설을 가동하지 않았다 증언했고, 위험요인에 대해 회사로부터 교육받은 적도 없고 한 번도 기준을 초과한 적 없는 작업환경측정과 위험성 평가를 믿지 않았다. 리싸이클링타운의 공기는 철저히 시설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 또한 지워지고 혐오 받는다 느꼈다. 음식물폐기물 처리 작업을 하는 심층면접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항상 아빠 회사 갔다 오면 안 좋은 냄새 나요.” (…) 어디 가더라도 사람들이 저를… 근처에 오면 제가 먼저 피하게 되거든요.(음식물4)”
채석진(2021b)이 시기상 <팬데믹 시대의 숨쉬기에 관하여>를 쓰기 전부터, 한편으로는 쓰면서 고민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이는 논문 <기다리는 시간 제거하기 : 음식 배달앱 이동 노동 실천에 관한 연구>에는 혐오 받는 배달노동자의 몸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기업, 소비자, 라이더들끼리도 라이더가 이동하는 위치를 배달 어플로 감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달의 책임은 그들에게 대부분 전가된다. 배달앱이 배달앱 노동자들에게 강제하는 속도와 그들이 통과해야 하는 뜨겁거나 차가운, 그래서 때로 숨 막히는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몸이 있다.
그래서 배달노동자의 죽음은 조롱받는다. 배달노동자는 때로 고객들의 음식을 훔쳐 먹거나, 교통 법규를 마음대로 위반하며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존재이자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 그런 일이나 하겠지”란 말로 재현된다. 그러므로 라이더의 몸은 배달 과정에서 보이지 않기를 요구받는다.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들의 몸 또한 일터에서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 갇혀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내야 하는 몸이었다. 일터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오염되거나 위험한 몸을 가진 것으로 재현되고는 했다. 그래서 숨 쉴만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 마스크와 헬멧이 당연한 삶.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삶. 취약함이 위험으로 읽히는 것이 당연한 삶. 그런 삶, 평등하지 않은 삶의 공기는 전가된 책임 속에서 짓눌린다.
죽음의 고리를 끊고 삶의 곁으로
이번 계간 <전북노동브리프>에서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노동의 고리를 살핀다. 그리고 그 고리가 순환하지 않도록 만들 삶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효율적인 삶과 중심으로 향하는 삶의 틈에서, 숨 쉴만한 삶. 전북의 노동자는 일하며 숨 쉴 수 있는가?
11호에는 전북에서 숨 쉴만한 삶을 고민하며 아래 내용을 담았다. 먼저 초점에 이어 칼럼에서는 <지역에서 노동 연구하기: 지방의 노동 연구자, 지방의 노동연구원>(강민형 운영위원)과 <노동조합 부설 연구원의 위치성과 가능성>(조용화 연구위원)이란 주제로 지방-노동(현장)-연구라는 교차성과 위치성을 탐구한다. 이들은 때로 삐걱거리고, 충돌하기도 하며, 그래서 모호해진다. 민주노총 17개 광역시도 지역본부의 유일한 부설 연구원이라는 공간은 현장과 이론, 서울과 지방이란 경계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위치를 점유한다. 전북노동정책연구원은 지방의 노동(운동)위기에 대응하고 지역노동운동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와 자료를 생산할 것을 기대받는 공간이지만, 어떤 면에선 연구에서도 현장에서도 동떨어진 장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강민형 운영위원의 글은 지난 2년간 전북 지역대학에서 전북의 노동(현장)과 관계 맺으며 노동연구를 수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노동-연구-하기를 개괄하며 지방 노동 연구원의 역할과 발전 방향을 살핀다. 조용화 연구위원의 글은 지방-노조-부설 연구원이란 '애매모호한 위치성'을 지닌 공간에서 일한 4년의 경험과 지방-청년-트랜스젠더란 '애매모호한 위치성'으로 겪어낸 노동(일)과 생존(삶)에 대한 고민을 교차시킨다. 그리고 일하(지 못하)는 몸의 수행성, 드러낼 수밖에 없는 취약성, 당연하지 않은 삶들의 숨쉬기를 '번역'하는 공간으로서, 지방의 작은 노조 부설 연구원이란 '애매모호한 위치성'이 숨 쉴만한 삶을 찾는 모든 이들과 이어지길 시도할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어 리뷰에서는 <발전 정비산업의 민영화 결과를 통해 본 국가 주도의 공공서비스 관리 필요성>(이양순 연구위원)과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자해 사망 사건에서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박영민 노무사) 두 글이 자본과 정부가 외주화하는 비용, 책임과 위험이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각각 연구 결과와 판례를 통해 살핀다. 효율을 추구하는 산업은 노동자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 지난 10월 24일, 공연예술인 산재 사망 추모와 예술인 산재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중대재해 학자‧전문가 네트워크는 성명문에 이렇게 적었다.
"2년 전 한 젊은 성악가가 극장 리허설 도중 400킬로그램이 넘는 중량물에 깔려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다시 무대를 꿈꾸었으나 지난 10월21일 끝내 생을 마감하였다. (…) 합창단 단장은 오페라단이나 제작자에게 하청 계약을 맺고,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성악가들을 모아 임시로 합창단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단원들은 고용 안정성은 물론, 안전교육‧보험가입‧노동보호에서도 철저히 배제된다. 사고가 나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사고의 책임이 언제나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공연장 내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관리 부실이나 구조적 문제보다 예술인의 부주의로 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는 한 같은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양순 연구원의 글은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수행된 <발전정비산업의 공공성 강화전략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규제완화-민영화-시장경쟁이라는 세 축으로 강화되어온 신자유주의적 민영화가 발전산업 노동자의 죽음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핀다. 효율을 위해 민영화되고, 이윤을 위해 원하청 구조가 견고해지는 동안 노동자는 도구처럼 쓰이다 버려진다. 그러므로 "사고의 책임이 언제나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것은 사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간, 건강, 안전을 위한 비용을 노동자와 사회 전체에 전가하는 사회적 비용(social costs)(Kapp, 1971)이다.
최근 전주시에서는 신규 광역소각자원센터 건립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지역 언론의 보도가 이어진 바 있다. 이에 지난 10월 23일, 지역에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문제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는 사회적 비용을 노동자와 시민에게 넘기는 민간위탁 구조를 비판하고 전주시가 공공성을 기준으로 신규 소각장 사업을 직접 운영하길 촉구하는 성명문을 냈다. 사회적 '비용'이 노동자의 목숨값으로 치러지는 구조에서 노동자 시민이 숨 쉴 공기는 '소각'될 뿐이다.
"시민들은 전주리싸이클링타운 문제를 통해 민간투자사업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운영사는 음폐수 무단 반입, 안전 비용 절감, 노동탄압 및 노동권 침해를 자행하며 공공재를 자신들의 이익을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했다. (…) 리싸이클링타운만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강행된 공공영역 민간투자사업은 자본의 탐욕의 장이 되어버렸다. 자본은 시민의 공공성과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 안전은 이윤추구를 위해 희생시키고 지자체는 자본에게 시민의 세금을 쥐여주면서도 관리감독의 책임은 놓고 있다. (…) 전주시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공공성을 기준으로 신규 소각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한번 민간자본에게 신규 소각장을 넘기려는 행보를 즉각 중단하고 직접 운영할 것을 전주시에 강력히 촉구한다."
그러므로 <발전정비산업의 공공성 강화전략 연구>는 발전‧성장‧개발, 그 비용이 불균등하게 전가되는 공기를 인지하며 노동하는(할 수 없는) 몸이 '숨 쉴만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전주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들이 죽어야 했던 공기,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낼 구조를 찾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책임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박영민 노무사의 글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버스노동자 자해 사망 사건의 판례를 주요 쟁점과 함께 살피며 그 의미를 찾는다. 고인은 시내버스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 4차례의 교통사고를 냈고, 인사상 불이익을 염려해 피해자 치료비를 사비로 부담하기로 한 뒤 아내에게 '사고처리로 너무 힘들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기고 집을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판례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과 자살 사건의 산재 보상에서 평균임금 산정 원칙을 확립하고, 정신질환을 진단받지 않았어도 요양 필요성이 입증된다면 노동자의 정신건강 재해도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 첫 확정 판결이다. 구조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사회에서, 스스로 숨쉬기를 중단한 죽음은 특히나 개인의 잘못된/극단적 선택으로 여겨지기 쉽다. 산업재해 인정 자체도 어렵지만 정신질환 산재승인은 더욱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조사해야 할 부분이 많으며, 사실관계에 대한 공방도 필요하다.
일 때문에 발생한 인과관계 또한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의학적 기록을 확보할 때 이전의 삶에 기인한 정신질환 진료기록이 있다면 산재 인정은 극히 어려워진다. 이 글은 노동자의 '숨쉬기 어려운' 감각을 법리적으로 더듬어나가는 과정을 건조한 언어로 관조하게 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마지막 2주일, 실종 뒤 사망 확인까지의 결근기간 6일을 두고 평균임금 산정 기간에 반영해야 할지 다투는 과정을 글로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묻게 된다. 이 질식하는 죽음들 속에서 대체 무엇이 삶일 수 있을지.
계간 전북노동브리프가 발간된 이래 빠지지 않았던 <2025년 2분기 전북지역 고용‧노동‧산업‧가계 동향>(김연택 객원연구위원)과 지난 호부터 다시 정리를 시작한 <2025년 2분기 전북특별자치도 주요 노동소식>(이양순 연구위원)은 전북에서 숫자와 말이 될 수 있던 이야기, 행간에 머무르는 이야기, 담기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전한다. 숫자조차 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해지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제나 그렇다. 주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취약한 모습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결정하는 것. 고통 속에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말들의 자격을 살피는 것. 언어가 공통의 이해를 설명할 수 있(없)다고 믿는 것. 체험의 순간을 만남의 순간으로 바꿔내는 것. 어떤 것들을 잘라내는 것. 붙이는 것. 그 모든 일에 실패하는 것. 실패하고서도 다시 깨진 조각에 다가가는 것"으로서, 우리는 이곳 전북에서 번역을 시도한다. 그렇게 어떤 노동자의 죽음이, 삶이 당신의 곁에 있음을, 당신이 머무르는 자리에서 마주칠 수 있기를 바라며 '숨 쉴만한 삶'이란 이야기를 시작한다.
<참고문헌>
강문식‧노현정‧도상윤‧유상곤‧이지연‧차유미. (2022). 전라북도 노동정책 발전 방안 연구.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2022-02.
강문식‧손종명. (2023). 전주 종합리싸이클링타운 노동조건 실태조사.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2023-01.
Górska, M. (2016). Breathing matters: Feminist intersectional politics of vulnerability. Linköping, SE: Linköping University.
채석진. (2021a). 팬데믹 시대의 숨쉬기에 관하여. 한국언론정보학보, 109, 40-66.
채석진. (2021b). 기다리는 시간 제거하기 : 음식 배달앱 이동 노동 실천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정보학보, 108, 58-91.
Kapp, W. (1971). The social costs of private enterprise. New York, NY: Schocken Books.
/조용화(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위 글은 <전북노동브리프> '2025년 가을호'에도 게재됐으며 <전북의소리>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