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에 반기 든 전주지검…3년 전 ‘기시감’ 드는 이유는?
쟁점 진단
전주지방검찰청(전주지검) 간부들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법 개정이 아닌 검찰 통제 강화로 해결할 문제"라며 강력 반발했다. 3년 전 일이다.
2022년 4월 27일. 문재인 정부 당시 문성인 전주지검장은 부장급 간부 검사 4명과 함께 전주지검 7층 소회의실에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이례적으로 열고 해당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날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검수완박' 법안을 사실상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곧바로 전주지검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전주지검장은 "검수완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충분한 공론화 없이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하룻밤 만에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추진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검수완박' 사태와 관련해 일선 지검장이 언론 앞에 직접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3년 전, 전주지검장 기자회견 "검수완박 부당함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검찰 개혁 ‘반발’
전주지검장에 이어 당시 전주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는 "일부 인지 수사의 부작용을 막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적정하게 작동되고 있는 검찰의 본질적 기능 자체를 무력화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형사2부 부장검사는 "검사의 보완 수사는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경찰 수사를 견제하는 절차"라며 "개정안을 보면 검사의 보완 수사 대상을 경찰이 송치한 범죄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로 한정해 검사가 추가 범죄를 발견하더라도 사건 관계인에 대한 반복적인 수사는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이밖에 당시 전주지검의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인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전 국회의원(전주을)의 배임·횡령 사건을 수사한 형사3부 부장검사는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면 검사는 수사를 직접 못하게 되고 공판(공개 재판)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며 "수사검사가 직접 법정에 들어간다면 누가 싫어하고, 겁을 내겠느냐"고 반박했다.
기자들을 불러 놓고 전주지검장과 간부들이 번갈아가며 발언하는 이례적인 기자회견은 그동안 거의 없었다. 지방 검찰청 간부들이 반박에 열을 올리자 놀라고 흥분한 지역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그들이 한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내보낸 곳도 있다. 대부분 비판적 견지 없이 액면 그대로 보도하기 바빴다.
3년 후, 전주지검장 기자간담회 “검찰 제도 폐지는 헌법과 맞지 않는다” 검찰 개혁 ‘반박’
그로부터 3년여 시간이 흐른 2025년 9월 22일. 검찰청 폐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는 검찰청을 없애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며, 기후에너지환경부를 확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히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를 위해 기소를 담당하는 공소청과 수사를 담당하는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는 그동안 권력기관 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 검찰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왔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미완에 그쳤던 검찰 개혁을 더욱 강도 높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이날 전주지검이 3년 전과 같은 모습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 제도 폐지는 헌법과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현직 지검장이 이례적으로 정부의 강도 높은 검찰 개혁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어서 주목을 받을 만했다. 이날 신대경 전주지검장은 “검찰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헌법의 영역이기 때문에 줄이는 것은 헌법과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기자들 앞에서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검찰 개혁과는 다른 견해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또한 신 지검장은 “검찰 명칭은 정체성인데 상징이 없어지면 내부 사기가 많이 떨어지고 충격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며 “수사 과정에서도 인권침해가 없는지, 적정한지를 법률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통제장치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역 언론들 ‘따옴표 저널리즘’ 경쟁…전주MBC “학계 반박” 보도 '시선'
이에 지역 언론들은 신 지검장의 사진과 발언 내용을 비중 있게 전하면서 따옴표로 그의 핵심 발언을 제목으로 강조해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유일하게 전주MBC가 이날 저녁 뉴스에서 “78년 만의 검찰청 해체를 앞두고 신임 전주지검장이 내부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전하면서 검찰 폐지는 헌법상 맞지 않다는 입장을 강조했지만 당장 검찰은 헌법 기관이 아니라며 논리에 어긋난다는 학계의 지적이 제기됐다”는 반박 보도를 했을 뿐이다.
더욱이 전주지검장은 이날 검찰 제도 폐지에 대한 작심 발언을 하면서 ‘1,050원 초코파이 절도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뜬금없이 밝혀 일부 언론들은 물타기 보도로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지역 언론들은 검찰 폐지 반대쪽에 훨씬 비중을 두어 보도했다.
‘1,050원 초코파이 절도 사건’은 지난해 1월 완주군의 한 물류회사 사무실 냉장고에서 물류회사 협력업체 직원이자 화물차 기사인 A씨가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짜리 과자 등 1,050원 상당의 음식물을 꺼내 먹었다는 절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만원을 선고 받은 사건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약식기소했으나 A씨는 유죄로 무죄를 다투겠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절도죄로 유죄를 받으면 직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사측이 A씨의 노조 활동에 불만을 품고 타격을 주기 위해 고소를 진행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논란이 지속된 사건임을 의식했던지 이날 전주지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 개혁을 강도 높게 비판한 뒤 "'초코파이 사건'에 대해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며 "사건 자체는 물론 사건 이면의 사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주장하더니 ’탄핵’ 자초...다시 시작된 '검찰 개혁' 추진과 반발, 결과는?
그러나 이날 전주지검장이 마련한 기자간담회는 3년 전 같은 자리에 앉았던 전 지검장이 했던 기자회견 내용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세간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되짚어보면 3년 전에도 당시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검찰 개혁 카드를 줄곧 꺼내 들었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 범죄 등으로 제한했으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조직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유야무야됐다.
특히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는 거친 표현으로 검찰 내부의 반발을 부추겼다. 그리고 사퇴했으나 그의 검찰 내 추종 세력은 그의 뜻을 끝까지 지켜냈고, 그는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게 태동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을 제정해 검찰의 수사 권한을 다시 확대했고,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완전히 무력화 됐다.
그러나 검찰 개혁을 완강히 반대하던 그가 이끈 정권은 출범 3년 만에 '12·3 내란’과 ‘외환’, ‘친위 쿠데타’ 등으로 국민과 국가를 불안·위기 속에 빠뜨린 채 탄핵을 자초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다시 강도 높은 검찰 개혁 카드를 꺼내 든 형국이다. 그러자 다시 반발 기류가 확산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번에는 검찰 개혁이 과연 가능할지 많은 국민들은 조마조마하게 향배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마당에 지역 검찰청에서 이례적인 반발이 시작됐고 지역 언론들은 일제히 조명에 앞장섰다. 다른 곳도 아닌 전주지검이 이번에도 반발 의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검찰 개혁에 반기 든 전주지검장을 바라보며 3년 전 기시감이 들게 하는 이유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