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
신정일의 '길 위에서'
송나라에 사는 한 농부가 다 해진 옷으로 겨우 겨울을 지냈다. 그런 그가 봄날 따스한 햇볕을 등에 쬐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아! 햇볕을 지고 가서 황제님께 드리고 큰 상을 받아야겠다.”
황제는 구중궁궐 높고 깊은 곳에 있으며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체면이 손상될까 두려워 따스한 봄날에도 햇볕에 쪼그려 앉아서 행복에 겨운 마음으로 햇살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산다. 그런 황제보다, 어느 누구에게도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살면서 봄날이면 따스한 햇볕에 호사를 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더 행복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누릴 것 다 누리고 이룰 것 다 이룬 프랑스의 철학자인 볼테르는 비통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은 꿈에 지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고통뿐이다. 나는 80 평생을 두고 이 사실을 경험해왔다. 나는 이제 체념할 뿐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파리가 태어나는 것은 거미에게 잡아먹히기 위해서이며,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이다'라고."
저마다에게 부과 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원인은 물질에서 생기는 것보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한 메트로 도로스의 말은 지당하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나를 누구와 비교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가끔씩 비교하게 되고, 그 뒤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괴테의 친구이자 저술가인 멜크는 <멜크와의 행복 서한집>에서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최상의 행복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망은 세상의 모든 것을 희생시킨다. 그러나 이런 소망을 버리고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욕심을 버리고 그 순간에 만족하며 살라는 이야기이다. 나의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도록 하자.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면서 그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보다 더 잘살고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보다 더 못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라.”
키케로가 <서한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상은 높게 가지되 삶의 형태에 있어서 만큼은 바랄 수 없는 꿈을 버리고 마음 평안하게 산다는 것, 그것이 잘 사는 삶의 기술이다. 괴테도 <서동시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민 농노, 통치자 할 것 없이 저마다 말하고 있다. 어느 때나 지상의 인간들의 가장 큰 행복은 마음 속에서 우러날 뿐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 내 마음이여, 잠시 고요한 수면에 닿는 햇살처럼 머물라.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