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에서 마주한 '장미'

이화구의 '생각 줍기'

2025-09-07     이화구 객원기자

처서도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완연한 가을인데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가을을 얘기하기에는 요원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높이 피어난 구름은 가을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전 시내에 나갔다가 들어가는 길에 동네 소공원에 핀 장미덩쿨이 눈에 들어와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원래 장미의 계절은 계절의 여왕 5월이라는데 9월에도 화려하게 피어 있으니 특이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같은 장미 덤불에는 붉게 피어난 꽃과 갈색으로 시든 꽃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 줄기에서 동시에 다른 계절을 보여주는 붉게 핀 꽃은 봄을 상징하고, 시든 꽃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초가을을 상징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 그루에서 '피어난 꽃'과 '시든 꽃'이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에, 여기서 우리는 문학적, 철학적, 종교적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학작품 속에서 '시든 꽃'은 끝난 이야기, 지나간 사랑, 혹은 이미 절정에 다다른 이후의 허무를 상징하는가 하면, '피어난 꽃'은 새롭게 시작된 이야기, 아직 살아 있는 열정, 혹은 희망의 불씨를 상징합니다. 좀 더 깊이 철학적 사유로 들어가면 장미 한 그루에서 '시든 꽃'과 '피는 꽃'은 생멸(生滅)의 순환을 드러냅니다.

어떤 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다가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고, 또 다른 꽃은 만개하여 지나는 길손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한 몸 안에 공존하고 있고, 죽어가는 세대 위에 새로운 세대가 동시에 피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스스로 저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피어나는 꽃인가? 아니면 시들어 가는 꽃인가? 아니면 그 둘을 함께 안고 있는 장미 한 그루인가? 저도 그 둘을 함께 안고 고단한 인생 여로를 가고 있는 장미 한 그루이겠지요.

종교적 관점, 특히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면, 시든 꽃은 육신의 죽음, 피어난 꽃은 영원한 생명(부활)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가 장미 한 그루에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불가의 시각에서는, '시든 꽃'과 '피는 꽃'이 모두 공(空)이라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피고 지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며, 그래서 더욱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유교나 도교 같은 동양사상에서는 '시든 꽃'은 조상님을, '피는 꽃'은 자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즉 한 줄기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맥은 천지 만물의 도(道)를 보여줍니다.

끝으로 제 눈에 비친 장미 한 그루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순환, 희망과 허무, 죽음과 부활, 세대의 이어짐을 동시에 보여주는 하나의 '우주적 작용'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미가 아닌 예쁜 꽃은 지난주 초록의 계절에서 오색의 계절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인근 야산에 갔다가 담은 칡꽃인데 참 아름답습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