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보호법 개정하라” “악성 민원인 처벌하라”...전주 도심 거리에 울려 퍼진 '절규', 무엇 때문에?
금요 이슈 체크
"저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하지만 교육은 죽어가고 있습니다…국회가 나서 주십시오."
전주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성 민원이 어디까지 교사와 학교를 무너뜨릴 수 있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 국회 앞에서 방학 기간에 1인 시위를 벌이며 외친 처절한 호소가 다시 광장에서 메아리 치고 있다.
전북지역 교사와 학부모, 시민들이 '악성 민원 학부모 처벌과 교권 보호법 개정'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초등학교에서 학부모가 반복적으로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고소와 민원을 이어가면서 지난 한해에만 담임 교사가 여섯 번이나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후에도 지속되는 악성 민원으로 교실 전체를 흔들며 학생들까지 불안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
“여전히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전주미산초등학교 교사 '눈물겨운 기고·투쟁' 화제, 왜?
교사·학부모 1,000여명 전주 에코시티 모여 집회...
“미산초를 살리자" "공교육을 지키자” “교육 공동체 파괴하는 악성 민원인 처벌하라”
4일 오후 5시 30분. 전주시 송천동 에코시티 일원에서는 '악성 민원 처벌과 교권 보호법 개정을 위한 범시민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입은 교원단체 회원인 교사들과 학부모 등 약 1,000명이 순식간에 거리를 가득 메웠다. 새로 형성된 신시가지 아파트단지 주변에 위치한 ‘전미119안전센터’ 인근에 모인 이날 참가자들은 전주미산초등학교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해당 초등학교는 지난해 이곳 에코시티 내 부지로 이전이 확정된 학교다. 전주교육지원청은 지난해 7월 4일 전주미산초 이전 및 분교장 운영을 위한 학생·학부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8.4%가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주미산초 이전 및 분교장 운영 설문조사 선거인 수는 학생 45명, 학부모 32명이며, 전날 실시된 찬반투표에는 학생 전원, 학부모 29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 학생은 34명, 학부모는 24명이 찬성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2020년부터 추진된 에코시티 제3초등학교 설립이 가능해져 전주의 대표적인 인구 밀집 지역이자 신도시인 에코시티 내 초등학교 과대 운영 해소에 도움이 될 전망이란 지역 언론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바로 그 학교가 최근 악성 민원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홍역을 앓고 있어 전북은 물론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와 전북교사노조, 전북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집회 명칭이 내홍의 원인을 암시해 주었다. ‘미산초를 살리자! 공교육을 지키자! 악성 민원인 처벌 교원 보호법 개정 범시민대회’를 주제로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 자리에는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 전국 각지의 교원단체 소속 교사들도 함께했다. 집회 시작과 함께 참가자들은 "교육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성 민원인을 처벌하라" "교권 보호법을 개정하라" “공교육이 무너진다” “공교육을 지키자” 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여전히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주인공 송욱진 교사...“교사의 교육권 지켜야 학생, 학부모, 학교도 지킬 수 있다” 호소
이날 집회장 인근에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그 학교, 그 학급 담임으로 지원해 간 후 아동학대 상습 피신고자가 됐다”며 최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교권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고, 또 일부 언론에 ‘여전히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는 제목의 기고 글을 통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호소했던 주인공을 만났다.
바로 미산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송욱진 교사였다. 검은 옷 차림에 집회 발언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나 몇 가지 짧은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교권 침해 논란이 일었던 학교에 일부러 지원해서 간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왜 지원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교사들이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안전하다'는 두려움 속에 갇혀선 안 된다"며 "교사의 교육권을 지켜야 학생과 학부모, 학교도 지킬 수 있기에 지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전북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간 게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맞다"며 "임기 끝나고 바로 지원해서 가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에 부임하고 3월 한달 간 9회가량 경찰에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신고를 당했다”고 덧붙였다.
‘학부모 2명에 대해 교육단체들이 무고, 공무집행 방해,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전북경찰청에 고발했는데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잘은 모르지만 고발장이 접수되고 아직 사건 배당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2년 전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개정된 법률은 아무렇지 않게 교사를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경험했다”는 그는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가 교육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간략한 질의 응답이 끝난 후 이날 집회장 연단에 선 그는 단호한 어투로 발언을 이어갔다. "전교조 활동을 하며 교육 현장의 많은 문제를 겪었고, 상식 안에서 풀어내고자 했지만 미산초에서의 6개월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고 실토한 그는 "새 학기 첫날부터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이 쏟아졌고, 방학 내내 교육청과 국회를 뛰어다니며 우리의 현실을 알리려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미 해결된 줄 알았다'는 말 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제 존재 자체가 아동학대라고 규정되는 상황...교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좌절감 뿐”
또한 그는 "강연 내용이 녹취돼 학부모에게 전달되고 통화 내용까지 SNS에 올라왔을 때는 교사가 아닌 감시 받는 사람 같았다”면서 “제 존재 자체가 아동학대라고 규정되는 상황에서 교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좌절감에 휩싸였다"고 호소했다.
그런 뒤 그는 "교사들이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안전하다'는 두려움 속에 갇혀서는 안 된다"며 "교사의 교육권을 지켜야 학생과 학부모, 학교도 지킬 수 있기에 오늘 집회를 시작으로 교육부 장관, 대통령을 직접 만나 반드시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를 바꿔내겠다"고 절규했다.
앞서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첫 번째 발언에서 "끝없는 악성 민원과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학교에서 더 이상 고통받고 있을 담임교사와 동료들, 언제 담임이 바뀔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학생들이 있어선 안 된다. 교사가 안전을 존중받고 보장받는 학교 현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악성 민원 처벌법이 제정되도록 힘쓰겠다"고 역설했다.
또 이날 참가자들은 ‘악성 민원으로 무너진 교실, 공교육을 지켜내자’란 공동 성명을 통해 "악성 민원은 교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라며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손해배상·과태료 부과·교육감 의무 고발 등 강력한 제재를 촉구해 이목을 끌었다. 그 성명서 안에는 무너진 공교육과 교권의 실상, 제도 개선을 위한 필요 대책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음은 이날 참가들이 발표한 공동 성명서 전문이다.
2023년 7월,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우리는 거리로 나와 외쳤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멈춰라!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지켜라! 교원 보호법을 제정하라! 수십만 교사들의 절규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었고, 국회와 교육당국은 교권 회복을 약속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교사는 여전히 홀로 민원과 고소, 아동학대 신고 앞에 내몰려 있으며, 교실은 무너지고 학생들의 학습권은 방치되고 있다. 오히려 작년에는 가장 많은 교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교사들의 죽음이 멈추지 않는 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2년 전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은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의 압박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경찰은 4개월 만에 ‘범죄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학부모와 유족, 교사 사회는 조사 과정의 문제와 수많은 의혹을 제기했지만, 결국 억울한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2025년 8월, ‘서이초 재수사 특별법 제정’ 국민청원이 단 사흘 만에 5만 명을 돌파하며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진실을 밝히라는 사회적 요구다. 진상규명 없는 교권 회복은 공허하다.
미산초는 그 공백이 낳은 참담한 결과이다. 미산초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선 민원은 어디까지 교사와 학교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학부모는 수차례 아동학대 의심 신고, 반복적 민원 제기, 형사고소까지 이어가며 학교 전체를 마비시켰다. 교사는 무고성 신고의 굴레 속에서 교육권과 건강을 잃어갔고, 학생들은 학습권을 침해당했다. 한 명의 악성 민원이 교실 전체를 무너뜨리며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었다. ‘올해는 담임선생님이 바뀌지 않고 선생님과 졸업하고 싶어요’라는 학생의 당연한 바람을 이 사회와 어른들은 지켜주어야 한다.
더 이상 반복된 비극을 만들지 않으려면,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악성 민원인과 교사를 괴롭힐 목적의 무고성 신고자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학생의 불만이나 불명확한 말, 부모의 의심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한 현실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일삼는 학부모에게는 그 어떠한 불이익이나 제재도 없다. 교권 침해로 인정받아 심리치료, 특별교육 이수 등이 나와도 그 뿐, 실제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교사들의 유일한 대응책인 ‘교권보호위원회’는 강제성과 실효성이 없고 학보모의 계속된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행위를 막을 어떤 제도도 법률도 없다.
악성 민원은 교육현장을 마비시키고 교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다. 호랑이 레드카드 사건의 당사자인 이 학부모는 미산초로 학교를 옮기고도 여전히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교육감이 형사고발을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없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자에 대해 손해배상, 과태료, 교육감 의무 고발과 같은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또한 악성 민원인들은 아동학대 신고를 무기로 교사를 협박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를 실행한다. 아동학대 신고는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대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교사의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는 정서적 아동학대가 아님을 법률로 확실히 보장하고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차단할 수 있도록 처벌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서이초에서 외쳤던 요구가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미산초에서 드러난 참혹한 교실의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 다시 거리로 나섰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울 수 있는 교실,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가 함께 존중받는 학교를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
억울한 교사 죽음, 서이초 진상을 규명하라!
교육 공동체 파괴하는 악성 민원인 처벌하라!
교권 보호법 개정으로 교육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라!
정부와 국회는 공교육을 지키는 실질 대책 마련하라!
2025년 9월 4일.
악성 민원인 처벌, 교권 보호법 개정 범시민대회 참가자 일동
“아동학대 신고 고발 막을 수 없지만 가르치고 싶다…교권 보호법 개정해야”
한편 이날 집회를 마친 교사와 학부모 등 참가자들은 '교권 보호법 개정하라', '악성 민원인 처벌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에코시티 상점가까지 약 1㎞를 행진했다. 앞서 미산초등학교 두 학부모는 수 년째 이 학교 교사 등을 상대로 소송과 민원을 잇따라 제기해왔다.
교사가 자신의 자녀에게 '레드카드'를 주고 청소를 시켰다는 등의 이유였으나 당시 해당 교사는 "학생이 수업시간을 방해해 주의를 줬으나 이후에도 말을 듣지 않아 수업 참여 독려를 위해 레드카드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교조 전북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이 학교 해당 학급에 지원해 간 송욱진 교사도 "아동학대 신고와 형사고발, 명예훼손 등의 사례를 겪고 있다"며 “여전히 학부모를 막을 수 없지만 가르치고 싶다”는 호소와 함께 교권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전교조 전북지부 등 교육단체는 해당 학부모들을 '무고, 공무집행 방해,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전북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