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마다 ‘탈 전북’ 시도하는 혁신도시 공공기관들…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이어 농진청까지 수도권 이전설 '모락모락', 왜?
금요 이슈 체크
전북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의 이전설이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와 지역 정치권과 행정기관들을 뒤숭숭하게 한다. 특히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들먹거리던 공공기관 이전설이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윤곽이 드러나면서 파장과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지난 윤석열 정권 초기에는 2017년 2월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설이 급격히 달아올라 거센 반대 운동에 직면해 겨우 위기를 모면하는가 싶더니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권 들어서는 전북혁신도시 중추 공공기관인 농촌진흥청이 일부 조직과 인력을 수도권인 수원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또 다시 거센 저항과 반대 목소리가 높다.
전북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의 실태와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탈 전북' 시도 원인, 문제점 등을 진단해 본다.
농촌진흥청 일부 부서 수원 이전설 ‘구체화’…”수도권 회귀 시도” 커지는 우려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했던 농촌진흥청은 2015년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전북혁신도시에 입주한 이전 기관은 농촌진흥청 등 12개 공공기관으로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가 2017년 마지막으로 이전이 이뤄지면서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갖게 했다.
정부는 오랫동안 '농도(農道)’로 지목하고 '소외'로 덧씌운 전북지역을 농생명 혁신도시로 자리잡게 했다. 전북혁신도시엔 12개 공공기관 중 농촌진흥청, 한국농업기술진흥원 등 농축산 관련 기업·연구원·대학 등이 전체의 절반 이상인 7개 기관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 농촌진흥청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소속으로 ‘농촌진흥법’ 제1조(목적)에 '국가의 기본 산업인 농업의 발전과 농업인의 복지 향상 및 농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농업·농업인·농촌과 관련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보급, 농촌지도, 교육훈련 및 국제협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농촌지역의 진흥과 국가발전에 기여'라고 설립 목적이 명시돼 있다.
그동안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기능을 분산시켜 지역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오랜 기간 동안 농도로 불려온 전북에 자리하게 된 농촌진흥청은 전북으로 이전한 뒤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연구 개발비와 사업비 가운데 일부를 전북지역 현안 해결에 쓰는 등 2,600명이 넘는 일자리도 창출했다.
더구나 허허벌판이던 혁신도시 중심지에 농촌진흥청이 위치함으로써 관계 기관들도 줄줄이 이전해왔다.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에 이어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 등이 전북혁신도시에 이전하여 명실상부한 농축산업의 메카로 부상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8월 이승돈 제33대 농촌진흥청장이 취임하자마자 전북특별자치도가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식품과 바이오 분야 핵심 연구 조직들이 수도권으로 이전한다는 설이 모락모락 지펴지더니 전혀 사실무근이 아님이 드러나 반대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전 정권부터 이러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농촌진흥청은 지난 2월 ‘농촌진흥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대통령령)’을 만들어 조직개편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전북혁신도시 인력을 수원에 있는 식량과학원으로 재배치할 계획을 세우면서 '수도권 회귀 시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내부에서부터 제기돼 파장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식량과학원 본원은 전북혁신도시에 위치하고 있으나 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는 수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농촌진흥청은 중부작물부의 기능과 인력을 통합해 수도권 쪽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농촌진흥청 측은 “조직의 기능을 통합·조정하면서 민간과의 협업이 필요한 식품 연구 기능은 수원으로 옮기고, 작물병해충과 재배환경 연구 기능은 전북으로 옮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또 “수도권에 있는 다른 기능과 인력이 대신 내려오는 만큼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부연했지만 간단치 않은 문제로 보인다.
농촌진흥청 “식품 연구 기능은 수원으로, 작물병해충과 재배환경 연구 기능은 전북으로?”
수원에서 내려오는 조직 역시 애초부터 전북 이전 대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세다. 수도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계속 조직 일부를 남기려는 농촌진흥청이 농생명 수도를 꿈꾸는 전북자치도와의 상생 정신이 아쉽다는 지적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국정 기조에도 어긋나는 행위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당장 전북자치도의회는 21일 성명서를 통해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조직개편을 통해 일부 부서를 수원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려는 정부 정책 기조를 거스르는 행위로 이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의회는 “농촌진흥청은 대한민국 농업연구와 농업인 지원을 총괄하는 핵심 기관으로서 전북이 대한민국 농생명산업 수도로 성장하는데 있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능을 수도권으로 되돌리려는 발상은 명백히 시대 역행적이며 퇴행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특히 도의회 농업복지환경위원장인 임승식 도의원(정읍1)은 “2015년 경기도 수원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지 불과 10년 만에 다시 연구인력을 빼돌리겠다는 것은 농촌진흥청이 전북자치도에서 쌓아온 농업·농촌 연구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이자 도민을 기만하는 처사”라며 “이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전북도의회 “농촌진흥청, 전북 식품·바이오 전략산업 육성에 ‘찬물’… 시대 역행·퇴행적 조치” 비난
이처럼 전북자치도가 식품·바이오 분야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핵심 연구 기능을 수도권으로 집중시키려는 것은 전북의 식품·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연구 역량과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비난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전북도의회는 “180만 도민과 함께 농촌진흥청의 계획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경고해 파장은 지역 정치권으로 더욱 확대될 조짐을 보이는 등 공공기관 재이전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농촌진흥청은 해명자료를 통해 "기초 식량작물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수원 소재 중부작물부를 폐지하고 국립식량과학원에 기초식량작물부를 신설했다"며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 농식품 연구 부문은 수원에 일부 배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북의 강점인 발효연구 및 식품클러스터와의 연계성이 큰 가공연구는 식량과학원에서 지속 추진한다"며 "본청에는 푸드테크 연구개발을 총괄·조정하는 과 단위 조직을 신설하는 등 미래 식품산업 육성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북혁신도시 공공기관 재이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선 기간에 전북을 찾을 때마다 ”국민연금공단이 있는 전주를 자산운용 중심의 제3금융중심지로 지정하겠다“며 ”금융도시를 조성하는데 적극 앞장서겠다“고 공언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초기부터 공약을 깡그리 무시하고 되레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 검토를 직접 지시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설과 관련 2023년 서울 언론의 최초 보도가 나오자마자 수면 위로 급부상하더니 급기야 정치 쟁점으로 비화돼 지역의 거센 저항과 반발이 이어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전주에서 서울로 옮겨 고급 인력들의 이탈을 막아 연금 재정 건전화를 이루겠다는 게 핵심 취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정권 내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흔들기는 반복됐다. 이 때문에 지난 정권과 당시 여당이 공약으로 제시하며 공언했던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혁신도시 공공기관들의 '탈 전북' 움직임…원인은?
문제는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전북혁신도시 공공기관 리턴 움직임이 다른 이전 기관과 기업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전북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공기관들 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와 농촌진흥청의 서울 및 수도권 재이전 논란 외에도 LX한국국토정보공사, 지방자치인재개발원, 한국농수산대학교 등도 전북 이탈 시도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켜 지역균형발전 취지를 무색케 했다.
전북에 이전한 대부분 기관들은 정주 여건을 비롯해 각종 경제·교육·문화시설 등이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열세인 전북지역 근무를 기피하거나 본사 또는 중추 부서 재이전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다른 기관이 수도권이나 서울로 이전하게 될 경우 가만 있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이번 농촌진흥청 일부 이전이 또 다른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더구나 새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기관을 분산하려는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기존 혁신도시 기관의 안정화 정책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야당이던 지난 정권 시절에도 전북혁신도시 공공기관 이탈을 막았는데, 새 정부에서 이탈을 막지 못한다면 전북 정치권은 존재 가치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라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먼 지역에 위치…가족들과 함께 정주할 수 없는 곳” 인식 팽배
그러나 되짚어 보면 전북혁신도시 주변에 정주 여건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채 공공기관 이전을 서둘렀던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는 초기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북혁신도시에 이전했던 기관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재이전(탈 전북)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서울에서 너무 먼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정주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팽배한 데는 '지역'과 '거리'의 지리적 관점 외에 서울 또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직원들의 교통 편의시설 부족(미흡) 외에 가족들이 함께 거주할 때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과 인프라 등이 상대적으로 열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전북혁신도시 근무를 기피하거나 중도에 근무를 포기하는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역 행정기관과 정치권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이전하면서부터 제기된 축산 분뇨 냄새 논란은 대표적 사례로 남아 지금도 공공기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것도 맨 먼저 포문을 연 곳은 국내가 아닌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었다. 2018년 9월 11일 이 언론은 전북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비하하는 보도를 해 국내 언론들에까지 파급됐다. “(한국)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격 요건으로 ‘돼지와 가축 분뇨 냄새에 대한 관용은 필수’”라고 보도하며 조롱하는 뉘앙스의 '돼지 삽화'는 아직도 도민들 머릿속에 뼈아픈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