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터전' 천년고도 남원...'물방울 공동체' 주인은 백성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32)
만남은 상처의 치유제다. 그 치유제가 오염되면 악연이 된다. 만남은 운명의 산물이다. 자신과 세상의 이음 터미날이 만남이고 그 이음줄이 운명인 것이다. 사랑도 미움도 이웃 사촌도 원수도 모두가 만남의 터미널에서 출발한 여정이니 고을과 나라의 정점에 서는 지도자와 백성의 만남도 다를바 없다.
고을 원님과 백성은 부흥과 쇠락의 갈래길에서 만남이다. 현대의 그 만남은 운명이 아닌 선택이다. 고을 원님의 선택이 백성이 주인이 되거나 그렇치 못하는 흥망성쇠의 삶터를 낸다는 말이다.
지리산 남원은 교회(交會, 서로 만남)의 터전이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지리산 남원은 천년고도다. 고을의 지명이 가진 시간의 연대기가 그렇다는 말이고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대곡리 암각화와 여러 곳의 고인돌에서 시작된 역사는 수천년이다.
그 역사속에 들어있는 유별난 문화 하나는 교회(交會) 즉 만남이었다. 선사시대 대곡리 암각화 천제단에서 보이는 북두칠성과 북극성 같은 성혈은 하늘과 사람의 만남이었고, 가야와 삼국시대의 교집합터였던 아막성전투는 백제와 신라의 만남이었다.
이후 고려 때는 왜구와 황산전투에서 만남이었고, 조선시대에는 남원성 전투의 왜구와 만남 거기에 춘향이와 이몽룡, 달나라 옥황상제와 남원고을의 광한루 만남, 옹녀와 강쇠, 소리꾼과 동편제, 부처님과 양생 그 이후에도 동학과 남원의 만남을 지나 빨치산과 남원의 만남등 역사문화적 교회는 고을의 별난 문화였다.
만남은 오르거나 내리거나 그 고개에 서는 일이다. 그 두 유전자의 충돌은 고을이 더 큰 몸집과 가치를 담아내게 했고 문화도시가 되었다. 하늘과 땅도 만나게 하는 교회(交會)의 땅 용성의 별호를 가진 남원은 그래서 '옥야백리 천부지지(沃野百里 天府之地)', 물방울 공동체 고을이었다.
정치와 민심의 만남으로 물방울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 왔다. 그 만남의 중매자가 천년고도의 이름값, 나잇값 해 내는 백성의 주인 정신이었고 그 중매료가 문화였다. 잘못 선택한 만남에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서 얻어낸 세금을 투입하는 치유 비용의 발생뿐이다.
도토리 키재기가 아닌 창의성과 역발상으로 무장한 문화의 힘으로 지역의 숲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도토리를 선택해야 지역을 바꾸어 낼수 있다는 말이다. 고을 쇠락과 백성의 아우성은 주인 노릇 포기의 산물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