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미래, 관용에서 길을 찾다
도시 이야기(2)
이방인을 품는 도시만이 살아 남는다
도시들이 위기라고 한다. ‘서울에서 먼 순서로, 벚꽃이 먼저 피는 순서로...’와 같이 도시가 소멸되는 순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뤄지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도시민들은 사라지는 도시가 아니라 (자신의 도시가) 미래에도 살아남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이 줄지 않고 모여들 것, 그러기 위해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바램과 도시가 갖추고 있는 면모들은 실제 일치할까?
도시 이야기를 시작한 지 1년, 뒤늦게나마 도시에 대한 정의를 해본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행정과 정치적 중심이 되는 ‘도읍(都邑)’과 ‘시장(市場)’이 서는 곳을 합해서 도시(都市)라고 부른다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아울러 도시의 기원에 대해 ‘토지에 정착하며 살기 시작하고 잉여 농산물이 생기기 시작하고 직접적으로 농경에 종사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이 생기고 거래가 생기면서’라고 보는 고고학자들의 견해가 존재한다. 농업혁명이 산업혁명으로 전화 되면서 도시화 현상은 더 심화되었고 현대사회의 특징적 현상이 되었다.
자연이 나고 자라고 성하며 쇠퇴하는 듯이 사람들이 모인 사회나 도시도 비슷한 생명력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도시를 유기체와 동일시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잉여 생산물이 거래되기 위해 형성된 사회적 현상인 도시 역시 하나의 생명적 관점으로 바라보자. 사전에서 도시의 반대말로 시골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는 다르게 말하고 싶다. 시의 승격기준에 일률적인게 없으니 만큼 사람이 모이는 도시에 자격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규모와 관계없이 ‘사람이 모여들고 여러 행위가 이뤄지는 공간’을 도시로 볼만하다는 이야기다.
다뤄진 도시들, 이 도시들이 전주에게 말하는 것은?
도시이야기를 1년여 하면서 꽤 많은 사람이 나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산과 서천, 고창과 익산, 안성을 비롯해 많은 국내 도시들이 언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뮌스터와 포틀랜드, 위트레흐트와 파리를 비롯해 역시 적지 않은 해외 도시들이 소개되었다. 이 도시들은 전주와 견줘 다뤄지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방송을 시작하며 남긴 글과 전파를 통해 나간 약속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파리와 뉴욕, 서울과 런던, 그 도시들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건 우리가 사는 도시 전주에 어떻게 비견해서 바라보고 해석할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은 전주‘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아마도 도시의 생장성쇠(生長盛衰)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 일정하게 베어 있었다고 본다. 이는 우리 도시의 향후 생존여부와 연관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생명력은 곧 우리 자신의 운명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이어온 것 같다. 먼저 ‘미래에도 살아남을 도시의 조건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왔고 그에 관한 모아진 대답을 이렇게 먼저 던지며 전개해보겠다. 방송의 여러 화자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관용적인 도시가 미래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영상은 '현아와 길벗의 도시이야기' 세 편을 압축한 것으로, 제작자이자 기획자인 길벗 PD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있다. 방송에서 여러 화자들(길벗 PD, 고윤정 영도문화도시 센터장 등)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그리고 관용적인 도시가 미래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24년 11월 11일자로 방송된 영도이야기 중에서 “60대의 할머니가 삐삐머리를 하고 뉴욕에 가면 독특한 개성을 지닌 패셔니스타로 바라 볼 수 있지만 어느 곳에 가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수도 있다”라며 ‘다원화된 생각과 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필자인 길벗 PD는 방문했던 위트레흐트시 브렌덴부르그 거리의 무지개 횡단보도 이야기를 끄집어 내며 자유로운 도시로써의 위트레흐트의 역사를 언급하였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선은 비교적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찍이 자본주의가 꽃피우고 대외교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나라 네덜란드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형태로 진화되었다. 이런 배경하에 세계에서 최초로 무지개색 횡단보도를 공적 공간인 위트레흐트 도심 심장부에 설치하는 조치로 이어졌다. 위트레흐트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다루는 도보여행 안내 사이트에서는 몇 가지 사건들의 현장을 이어주는 코스를 만들고 이 횡단보도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조치는 위트레흐트가 스스로의 관용을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라 할만하다.
한편, 자유와 관용성을 단순히 인도적인 가치나 인권적 진보의 문제로 보기보다, 합리적인 자기 필요의 측면으로 해석하는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위트레흐트에 인근한 하우턴시가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선제적으로 고민하였다며 이야기한 ‘안드레아 보더만’(하우턴 시청)씨의 전언에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2015년경 임시 난민 수용소가 설치되어 수용된 시리아로부터의 난민의 처리에 관한 논문 등의 분석을 통해 해석해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단일민족의 신화를 강조하던 시대는 한참 지나왔다.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전라북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7만3천여명으로 전북지역 인구의 4%를 상회하게 되었다. 농업과 서비스업과 제조업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서 외국인 출신의 노동인력이 없다면 굴러갈 산업이 없어지는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외노자들’이라며 적개심을 투영시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1년을 정리하며 구상하는 또다른 하반기 특집
앞서 거론한 도시이야기속 화자들의 공통점은 미래도시의 조건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를 거론한다. 한마디로 일갈하자면 이들의 이야기는 ‘타지로부터 찾아온 외부인들에게 수용적이고 아우르는 분위기의 도시에서 일하고 싶고 나아가 정착하고자 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맥락이다.
길벗 PD가 2024년 11월 11일 공개방송에서 언급했듯, 지금은 처지가 곤궁해 (잠시)우리 도시로 왔을뿐인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은 언제든 다른 도시로 바뀔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해 우리 도시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관용의 도시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한다. 미래 도시의 생존은 외부인들을 환대하는 관용과 개방성에 달려있다. 우리의 도시, 전주는 과연 그 길을 걷고 있는가? 타인의 시선에 너그러워질 때, 비로소 우리 도시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하반기에 준비할 '전주에 사는 외부인의 시선'과 같은 기회를 통해 우리 도시의 관용성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김길중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