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도 안 되는 곳에 우주가"...K-문화의 보고 '광한루'와 '방장정', 이렇게 탄생했다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27)
#난새와 봉황의 천국, 인간의 유토피아 '광한루' 이야기
인간의 염원중 하나의 세상은 유토피아다. 사람살이의 천국으로 생각해온 유토피아를 삶터에 꾸며놓은 곳이 있다. 지구촌 남원 사람들의 작품 광한루다. 천상의 세계인 광한루에는 난새와 봉황을 문화적으로 다자인 해서 들이면서 이야기를 붙여두었다.
난(鷲)새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서 깃털이 오색이고 소리가 오음인 길조라고 한다. 봉황의 일종인 전설상의 신령스런 새로 현인이나 군자에 비유하고 천자의 수레 깃발에 그려 위엄과 위용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 난새의 형상은 상상으로 광한루에 두었고 그 상상의 광한루 난새를 세상으로 꺼낸 시 한편이 누각에 걸려있다. 기생 최봉선의 광한루 시문이 그것이다.
乘鸞夜入廣寒樓(승란야입광한루)
十二丹梯欲盡頭(십이단제욕진두)
願乞紫皇金鳳詔(원걸자황금봉조)
人間禁得別離愁(인간금득별리수)
난새 타고 한밤중에 광한루에 드니
아름다운 열두 계단 난간 위까지 이어졌네.
원하옵건대 상제께서는 금봉을 시켜 명하소서.
이후론 인간에게 이별의 수심일랑 주지 말라고.
난새가 가진 오색과 오음은 음양오행과 궁상각치우 같은 문화적 기둥이고 뿌리라는 상징을 가졌으니 이는 광한루가 이상향 선계의 세상에서 인간 근본세상의 터전이 되라는 조상들의 염원이리라.
그 다음이 광한루에 들인 봉황문화의 인문력이다. 봉(鳳)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수컷을 봉 암것을 황이라고 하며 임금을 비유하기도 한다고 한다 광한루의 봉황 인문성의 극치는 방장정이다. 향토자원은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다.
삶터에서 인문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우리세대와 후손세대에도 상속받고 이어주는 문화유산이다. 그것을 재창조해 내는 것이 천년고도의 이름값, 나잇값을 해내는 일이다.
#봉황을 들여 광한루를 '천상의 이상향 세계'로 디자인해 낸 '방장정' 탄생기
지리산 남원 광한루원에는 전설속 삼신산(三神山)의 섬이 있다. 왼쪽에 영주산(한라산), 중앙에 봉래산(금강산), 그리고 오른쪽 오작교 옆의 섬이 방장산(지리산)이다. 삼신산의 섬은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을 두며, 방장산에는 육모형의 방장정을 두었다. 광한루 방장정은 어떻게 탄생 되었을까?
일제 강점기 시절 광한루는 일제의 문화적 침탈로 재판소와 감옥이 되었고 수많은 일제의 동조와 찬양의 시국 강연회 장소가 되었다. 이후 해방이 되었으나 제대로 된 광한루원으로의 회복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1963년이 되어서야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호수 주위를 정비하여 국악원과 월매(月梅)집과 방장섬에 육모정을 세웠다 다음 해 1964년이 되자 방장섬에 방장정(方丈亭)을 건립 하는등 광한루 종합개발 계획이 연차적으로 추진 되었다. 그중 1964년 1월 18일 준공된 방장정에 든 탄생 일화는 이렇다.
당시 남원군수는 광한루 삼신산에 들여야 할 정자 하나를 두고 고을의 인문력을 총 동원했다고 한다. 첫 번째로 삼신산 방장섬에 세울 정자의 적임자 목수를 찾는 일이었다. 사업 공고를 냈고 방장정 정자를 지어보겠다는 목수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목수들로부터 저마다 방장정을 어떻게 짓겠다는 발표를 듣고 최종으로 도편수를 정했다. 대부분의 목수들은 어떤 재목을 사용하여 어떤 모양과 크기로 짓겠다는 기술만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정된 도편수 목수의 이야기는 달랐는데 이야기로 구상하고 문화로 설계하여 짓겠다는 것이었고 그 방법은 이랬다고 한다.
광한루는 달나라 옥황상제의 궁전이고 그 궁전을 지켜내는 친위대는 삼신산에 사는 영물들이어야 하니 광한루 앞 방장산에 궁궐 수호신인 용과 천상의 세상에 사는 봉황을 가진 정자를 지어 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육모정으로 짓되 각 기둥 마다에는 용 1마리와 봉황 3마리씩을 두겠다고 했다 한다. 그러면 용이 6마리가 되는 것은 광한루를 춘하추동과 천지를 지켜주게 하는 것이고 봉황 18마리를 두고자 하는 것은 18의 수는 9를 상징하는 첫수로서 하늘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하늘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으면 방장정이 광한루를 지상의 인간에게 이어주는 이음줄이 되고 방장정이 그 존재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군수는 그 도편수의 계획에 동감했고 광한루 방장정은 그렇게 탄생 되었다고 한다. 그 인문적 지혜로 방장정은 광한루가 옥황상제의 나라로 더 강한 존재가 되게 했다고 한다.
방장정 상량식 또한 남원형 상량고사에 따라 소리꾼이 상량고사 소리를 하였다고 한다. 방장정 상량고사날 중앙에서 건설부 차관이 지리산 순환도로 현장 방문차 남원을 방문하였으나 군수는 방장정 상량고사의 가치를 설명하고 양해를 받아 부군수가 차관을 안내하게 하고 자신은 방장정 상량고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고을 정체성과 주인노릇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실천 했다는 말이다. 외딴섬이던 광한루의 방장섬에 육모의 방장정을 들인 후 삼신산과 광한루원을 잇는 다리를 놓게 되었는데 그때의 사진 기록을 보면 1965년 5월 27일 착공하여 같은해 6월 25일 완공 하였고 86,400원의 비용이 투입되었다고 되어 있다. 나는 얼마전 미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방장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평도 안되는 방장정에 온 우주가 들어있으니 이런 것을 K-문화라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달나라 광한루에는 어느것 하나 탄생의 우주관을 받아 존재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디자인의 주인공은 달나라를 지상에 건설한 남원인이다. 방장정 건축에 관계된 군수와 공사 감독관과 도편수등은 자신들의 실명을 새긴 준공석을 방장정 마루 아래의 받침돌로 쓰며 백성과 문화를 받드는 것이 봉임자의 평생 역할이라고 했다고 한다.
광한루는 청백리 교육장이고 문화 활용의 교육장이며 K-문화의 보고다. 백성과 고을에 끈을 대는 존재로 선한 인문의 생산물이 선정과 고을 부흥의 재료이다. 천년고도 우리 고을 토목과 건축의 뼈대는 인문적 문화 유전자였다. 천년고도의 나잇값 이름값 하는 일은 조상들의 문화유전자에 촉을 대는 것에 많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받은 용역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온 오랜세월 동안 사람을 부르는 똑똑한 유인체 자원 하나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조상이 잘해왔던 것을 더 잘해 내던 방식으로 생겨나고 이어져온 자원이 갖는 고을의 정체성을 무시한 결과에 있다 할것이다. 천년고도 나잇값 이름값 하는 일은 조상들의 문화유전자에 촉을 대는 것에 많다. 향토자원은 고을의 공통과목이다. 공통과목 낙제로는 이룰 수 있는 진로목표가 없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