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5-05-11     신정일 객원기자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지나가 버린 것과 오지 않는 것에 대해 연연해 하고 걱정하다가 지금, 곧 현재를 살지 못한다. 왜 그럴까?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이 시간 보다 더 강하고 더 중요한 실체적 실질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속되는 시간이란 단지 한 순간을 대신하는 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순간 일뿐이라면 현재밖에 없을 것이고, 현재에 이르는 과거의 연장도 진화도 구체적인 지속도 없을 것이다. 지속이란 과거가 미래를 갉아먹고 부풀어 나가면서 전진하는 연속적인 진전이다.

과거가 끊임없이 부풀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과거는 또한 한없이 보존된다. 기억이란 우리가 이미 증명하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추억을 서랍 속에 정리해 넣거나 장부에 기록해 두는 기능은 아니다. 장부도 없고 서랍도 없으며 엄격히 말해서 이 경우 기능이란 것조차도 없다. 왜냐하면 기능이란 자기가 원할 때나 가능할 때 간헐적으로 발휘되는데, 그에 비하여 과거가 과거 위에 쌓이는 일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는 이렇게 살아남기 때문에 의식이 같은 상태를 두 번 반복할 수는 없다"며 "이리하여 우리의 인격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완숙해진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과거란 무엇인가?

지나가 버린 것,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과거에서 자유스런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나 미래에서 자유스런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키케로는 “과거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신조차도 과거를 고칠 수는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잊어야 할 사소한 일들은 다 기억하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지식이나 기억들은 순간, 순간 깡그리 잊어버리고 산다’ 고. 그러나 기억의 단절이나 소멸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잊어야 할 것들이 순간, 순간 되살아나서 마치 가시처럼 쿡쿡 찌를 때 그 시간은 말 그대로 고통 중의 큰 고통이다. 그것도 남들은 다 잠든 한 밤중에, 이렇게 저렇게 떠오르는 과거의 파편들 때문에 잠 못드는 시간, 그러한 시간들이 살아갈수록 너무도 많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떠한가? 알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인 미래, 그 미래를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시부詩賦>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신은 깊은 지혜를 통해 미래의 일을 새까만 어둠으로 감싸두었다.”

알 수 없다. 한 시간, 아니 다음 순간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데 하루를 지난 내일의 일, 한 달 뒤에 일어날 일을 어느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일, 아니 한 달 뒤의 일을 계획한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사 시끄러워도 봄 꽃이 피고 봄꽃이 지고 봄이 간다. 찔레꽃 피고 지면 곧 밤꽃이 피어날 테지...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