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중립 지킬 수는 없어”...한국 사회 '비극적 사건' 때마다 목소리 냈던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더욱 안타깝고 슬픈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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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교황의 선종 소식에 지구촌이 깊은 애도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와 유독 인연이 깊은 교황의 생전 모습이 많은 언론에 다시 조명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교황은 세월호 참사와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등에 관심을 보이며 유족들과 노동자들에게 위로를 해주었는가 하면 그가 남긴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은 지금도 많은 국민들의 가슴 깊숙이 남아 있다.
더욱이 12·3 내란 사태 이후 불안과 고통이 지속되는 가운데 내란 우두머리와 몇몇 내란 가담자들의 사법처리가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내란 세력들의 준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맞이한 교황의 선종 소식이어서 더욱 안타깝고 슬프게 한다.
난민, 이주민, 어린이, 여성, 노인, 성 소수자들의 교황,
모든 이의 교황,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불리길 원했던 교황
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21일 ‘[1보]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에서 교황의 선종 소식을 빠르게 전했다. 기사는 “베드로 사도의 제266번째 후계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부터 2025년 선종 때까지 12년간 교황직을 수행했다”고 밝힌 뒤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교황이면서 남미 출신의 첫 교황,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라는 족적을 남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교·복음화를 위해 바티칸의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며 “‘난민, 이주민, 어린이, 여성, 노인, 성 소수자’들의 교황이기도 했던 교황은 계급과 집단을 구분 짓지 않는 모든 이의 교황이면서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불리길 원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교황은 마지막까지도 세상의 평화를 기도했다”는 기사는 “교황은 20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한 주님 부활 대축일 후 전 세계를 향한 사도좌 축복(우르비 엣 오르비, Urbi et Orbi) 메시지를 전하며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다시금 되새겼으면 좋겠다’며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같은 날로 축하하는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을 거치며 거룩한 주님의 무덤 즉, 부활의 교회에서 나온 평화의 빛이 모든 성지와 전 세계에 퍼지길 바란다’고 기도했다”고 덧붙였다.
CBS도 이날 ‘"가장 밝은 빛 하나를 떠나보냈다"…교황선종에 전세계 애도’란 제목의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에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큰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며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일제히 애도 메시지를 냈다”고 밝힌 뒤 각국의 표정과 정상들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대통령 대신 국회의장과 각당의 대선 후보들이 대신해 추도문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사회 약자 두루 돌본 교황,
'인간의 고통 앞에 서게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선종한 교황과 우리나라와의 깊은 인연을 강조하며 애도했다. 한겨레는 21일 ‘세월호 노란리본 달고, 약자 보듬었던 교황…“고통 앞에 중립은 없어”’란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유민의 아빠 김영오씨가 2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2014년 8월 가슴에 노란 배지를 달고 나타났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었다”며 “참사가 벌어진 지 꼭 4개월 되던 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이던 참혹한 순간에 그의 곁으로 교황이 왔다. 2014년 8월14~18일,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 동안 그의 가슴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기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바티칸에서 선종했다는 소식에 세월호 참사 피해자, 용산참사 피해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등 그에게 위로받았던 한국 사회 약자들은 ‘아직 할 일이 많은 분’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소탈한 모습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전한 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천주교 순교자 시복 미사 땐 유가족들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려, 단식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와 악수를 했다. 18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 등과 함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사는 “한국 사회의 약자를 두루 돌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세월호 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던 행동들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며 당시 교황이 남기고 간 말을 되새겼다.
“인간의 고통 앞에 서게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경향신문은 이날 ‘“고통 앞에 중립 지킬 수 없어”…세월호 유가족 위로해 ‘울림’’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도 큰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며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1984년과 1989년)와 프란치스코 교황뿐이다. 한국은 교황 즉위 후 세 번째 방문국이었으며, 아시아 첫 방문지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 교황의 공식 일정은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참석하는 것이었으나 같은 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만나기로 해 관심을 끌었다”는 기사는 “교황은 출국하면서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한 메시지를 자신의 서명과 함께 실종자 가족에게 전했다”며 “그는 교황청으로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연 기자회견 중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황은 한반도 통일에도 관심을 보였다”는 기사는 “교황은 2018년 10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하자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하고, 나는 갈 수 있다’고 했다”며 “교황은 그해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4월 29일 삼종기도 후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남북한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약속에 기도로 동행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접한 교황의 선종 소식…
안타까움 더욱 커
이처럼 우리와도 인연이 깊는 교황의 선종 소식에 많은 종교 및 진보매체들은 깊은 애도 표시와 함께 약자를 보듬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던 생전의 교황 모습을 되돌아보며 조명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가 12·3 내란 사태 이후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접한 교황의 선종 소식이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어둡고 무거운 내란의 짐을 털고 새로운 사회가 열리는 대한민국 사회와 평소 관심을 가졌던 남북통일을 향한 진전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선종해 더욱 안타깝다는 반응을 짓고 있다. 또한 평생 복음과 사랑을 실천한 교황이 이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들도 눈에 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남미 출신 최초의 교황으로 직위해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상 처음이자 1,282년 만에 비유럽권 교황이었다. 특히 가톨릭 내부 개혁에 힘을 쏟은 것은 물론 재임 기간 난민, 빈민, 여성, 아동, 노동자들 같이 약자의 삶에 늘 관심을 쏟으며 전쟁과 참사 등의 비극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에 우리들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적극 나서서 위로하며 정의롭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약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교황이 남긴 사랑의 유산은 어떤 어두운 현실에서도 희망의 빛이 되어줄 것이다. 부디 하느님의 평화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