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이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신정일의 '길 위에서'
내가 이 지상에서 없어져도 이 세상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시종여일하게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없어지는 순간 이 세상은 사라진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정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는다. 그렇다는 전제하에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곳이 중요하고 내가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시대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이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현재 시대와 아주 비슷해서, 그 시대의 가장 요란한 권위주의자들 중 일부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 시대가 최상급으로만 견주어 받아들여져야 하다고 고집했다.
영국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평범한 얼굴의 왕비가 있었다. 프랑스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얼굴의 왕비가 있었다. 양쪽 나라 모두 빵과 물고기의 보존을 관장하는 귀족들에겐 전반적으로 상황이 영원히 이렇게 고정적임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소절이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전 세계에서 2억 권이 넘게 팔린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머리글을 풀어 말하면, 극단의 비교를 통해서만 한 시대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지만 그 시대도 결국 지금의 시대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디킨스가 묘사한 대로 ‘최고의 시간이고, 최악의 시간이며,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문은 어느 순간 다시 닫히고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며, 만물이 오고 가는 그 순환 속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는 것이다.
“자, 내가 원하는 건 사실이오. 이 학생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시오. 살아가는 데는 사실만이 필요한 거요. 사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심지 말고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을 뽑아 버리시오. 사실에 기초할 때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거요. 학생들에겐 사실 이외의 어떤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소. 이것이 내가 내 자식들을 키우는 원칙이오. 사실만을 고수하시오.”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의 도입부다.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가 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바로 지금이지, 다른 시절은 없다’고 한 임제 선사의 말과 같이 지금, 지금을 똑바르게 직시하고 올곧고 굳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 즉 ‘사실’만을 믿고 뚜벅뚜벅 나가야 할 때다. 우리 모두 갈망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마음 잘 추스르고, 결코 서둘지 말고.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