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엘리트'와 '개소리'

토요 시론

2025-03-22     박주현 기자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닌, 개소리를 믿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란 책의 저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볼(James Ball)이 자신의 책 표지에 강조한 문구가 눈에 쏙 들어온다. 저자의 숱한 주장의 글들 중에서 뽑아낸 기묘한 문구가 책 제목과 잘 맞아떨어진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 유수의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저자는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을 역설하고자 한 이 책에서 개소리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보여준다.

'12∙3 비상 계엄' 이후 초유의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의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수많은 정치인과 종교인, 해괴한 주장을 펼치는 세력들이 쉼 없이 쏟아내는 거짓과 욕설 등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사회의 현 상황을 반추하게 한다. 거칠게 쏟아내는 말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연일 귀를 의심하게 한다.

허위 정보 뒤섞은 개소리들, 담론 지배하며 진실 이기려?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표지.(다산초당 제공)

제임스 볼이 현재의 우리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 본다면 아마 무수한 억측과 비약, 허위 정보를 뒤섞은 개소리들이 담론을 지배하며 진실을 이기려 하고 있다고 지적할 법하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친위 쿠데타와 장기적인 내란 사태를 경험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난무하는 개소리를 사라지게 할 방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거나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일침과 주장도 전혀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소리가 허위 담론을 만들고, 허위 담론은 다시 공론장을 휩쓰는 현실 속에서 침묵하기란 여간 어려운 현실이지만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개소리들의 주체는 넘치고 또 넘친다. 친위 쿠데타와 내란을 동조 또는 옹호하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종교인, 학자 더 나아가 시시비비를 엄중히 가려야 할 법조인들까지 다양하다.

특히 법조인들의 기상천외한 법 해석과 주장은 법치주의가 아닌 법관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내란 수괴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 52일 만에 구속취소 청구를 받아들인 법원 결정으로 석방된 배경과 결과를 보면 증폭된 공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만도 하다. ‘이 무근 황당한 개소리인가?’란 말들도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형사소송법은 이미 오랫동안 체포 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경우 ‘시간’(48시간)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날’(10일)을 기준으로 하는 규정을 유지해 왔다. 검찰 실무도 이 규정에 근거한 것이고, 법원도 이러한 수사 실무를 적법한 관행으로 인정해 왔다는 것은 대다수 법조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법조인들의 기초 교육서에 소개된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 측이 청구한 구속취소 심판에서 담당 재판부는 법 규정이나 지금껏 관행에서 벗어나 법원이 구속영장청구서 등을 접수한 날부터 반환할 날까지의 기간을 ‘날(日)’이 아니라 수사관계서류 등이 실제 법원에 있었던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사회적 혼란과 파장을 쓰나미처럼 가져다 주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 뿐만 아니라 법조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더욱 황당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한 것은 바로 그 다음에 벌어진 일들이다. 검찰은 즉시항고(이의제기)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 내란과 관련된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임에도 법원의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과 이어진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 지시는 의문에 의문을 더욱 키웠다.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을 두고 법에 ‘날’로 계산하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 판사가 잘못 판단됐다는 반론이 비등하다.

더욱이 수사팀의 즉시항고 의견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장이 묵살한 것은 스스로 직권남용을 시인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이 때문에 야당은 검찰총장을 고발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검찰이 피고인을 도덕적·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의 이름을 빌어 법의 판단 영역으로 억지로 끌어들인 수많은 사례들이 관례처럼 통용돼 왔던 것과 너무 대별된다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하나의 형사소송법 두고 검찰-법원 '이해∙해석'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가?

2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 모습.(사진=헌법재판소 제공)

도대체 하나의 형사소송법을 두고 검찰과 법원의 이해와 해석이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게 했지만 이번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호하고 난해한 법조인들의 태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며 옹호하고 나선 국가인권위원회, 내란 수괴 혐의자에 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법원, ‘적법 절차에 따라 소신껏 결정했다’며 내란 수괴 혐의자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의 태도에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과 '자가당착도 유분수'란 비판이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 내부에서도 나왔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고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라고 강조해 온 검찰과 법원이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가장 평등하지 못하고 진실의 가장 큰 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불만과 불신이 팽배한 현실 앞에서 ‘차라리 개소리를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세간의 볼멘소리들이 광장에 울려퍼지고 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가 내란 수괴 피의자인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역대 최장 기간 평의를 이어가자 사법부를 향한 거센 공분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변론 종결 후 이미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선고 기일은 여전히 미정이다. 이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14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11일 등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매우 길고 이례적이다. '12·3 내란 계엄'은 포고령 선포와 군 출동 과정, 국회 및 선거관리위원회 침탈에 이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 등 거의 모든 과정이 생중계 되다시피 했다. 내란 관련 증거들이 차고도 넘치지만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도 너무 늦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온갖 억측과 비약, 허위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자업자박(自業自縛)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을 받는 대통령경호처 경호차장과 경호본부장에 대해 경찰이 네 차례에 걸쳐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진통 끝에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함으로써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경호처 내 강경파로 분류되며 윤 대통령을 철통같이 방어하던 두 사람이 구속을 피하면서 경찰의 남은 내란 수사에 제동이 걸리게 된 때문이다. 경호처가 윤 대통령의 '12∙3 비상 계엄' 선포를 사전에 인지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 역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럼에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해 피의자가 다퉈 볼 여지가 있고, 지금 단계에서의 구속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고 한다.

두 사람의 증거 인멸·도주 우려가 있다는 영장 청구 사유 역시 인정되지 않은 마당에 두 사람의 업무 복귀로 경찰의 내란 수사 계획도 틀어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경호처의 '철통 방어'로 번번이 틀어 막힌 대통령실 비화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재집행은 더욱 어렵게 됐다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비화폰 서버는 내란 당시 윤 대통령과 주요 관계자들의 통화기록 등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동시에 내란 사건의 중요 ‘트리거’로 지목돼 왔다.

'법치주의 아닌 법관주의’, '법대로 아닌 정치대로’…대한민국 사회 뒤흔드는 사법 엘리트들 

YTN 3월 22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하지만 경찰은 이미 비화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경호차장의 방해로 번번히 실패했다. 경찰 특수단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지 못했을 때 불승낙 사유서의 명의자가 경호차장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경호처의 비상계엄 사전 인지 의혹 수사가 검찰의 세 차례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반려 끝에 네 번째 만에 가까스로 청구됐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됨으로써 사법사의 불명예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가뜩이나 '법치주의가 아닌 법관주의', '법대로가 아닌 정치대로'란 비판 여론이 무성하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 그래서 민주적 정통성이 박약한 사법권력이 피의자를 수사하거나 심판하는 과정에서 법이 아닌 정치 논리에 이끌려 기소∙판결하는 사례를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국민주권주의를 침탈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 내란이란 점을 고려하면 신속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지점에서 ‘이번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그릇된 판단과 행동, 거짓말을 일삼은 검사와 판사들은 누가 어떻게 벌을 내려야 할까?’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수사와 기소의 막강한 권한을 쥐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검찰,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검찰과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법관의 거짓말 등은 누가 잘잘못을 따져 벌하는 것일까?

윤리도 법도 비웃는 사법부 내부의 ‘부정 행위’를 단죄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문제다. 오히려 ‘법기술자’, ‘법꾸라지’, ‘법비’들과 한통속이 되어 ‘계산된’ 또는 ‘선택적’ 기소나 판결로 법을 우롱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 일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드는 ‘사법 엘리트들'의 작금의 행태를 보면 '개소리가 지배하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쓴 제임스 볼은 “개소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소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방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고 정의했다. 궁극적으로 ‘진실에 대한 집단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그래서다. 정의와 인권 등 민주주의적 가치를 위해 헌신해야 할 법조인들이 정작 자신들은 투명성과 책임성, 정의 실천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이 사법부의 존재 이유임에도 기득권을 보장하고 권력을 수호하기 위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냉철히 곱씹어 볼 때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