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이름'은 선조들의 '문사철(文史哲)'...우리말 뿌리 새겨져 있는 '문화 콘텐츠'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79)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국 중 농업선진국이 아닌 유일한 나라다. 우리가 믿었던 동맹국 미국이 갑자기 신뢰를 배반하고, 불법 침략자인 러시아편을 드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러우전쟁 휴전협상 마당에서 그대로 목도하면서, 국력과 나라의 안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 안보의 여러 요소 중 한국의 식량안보는 선진국 중 최하위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임팩트지가 세계 113개국을 분석한 2022년기준 식량안보지수에서 한국은 39위로 선진국그룹 중 최하위이고, 특히 식량안보 전략평가에서 0점을 받은 것은 충격적이다.
영원히 지속가능할 산업인 농생명식품산업은 국가가 살아남기 위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후 보루인 필수 전략산업인데도 우리나라에는 전략적 농업정책 자체도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식량자급률이 50%에도 미달하는데도, 쌀이 남는다는 이유하나로 식량안보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도 않는, 식량은 수입하면 해결된다는 정치꾼들의 안일한 농업 인식이 심각한 지경이다.
오랜 인류역사와 맥을 같이해 온 농생명산업은 역사 문화적으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사라져가는 농업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마련한 보전제도도 그런 뜻에서 법제화한 것이다. 국가 중요 농업유산은 보전할 가치가 있는 농업 유산 중 국가가 지정한 농업 유산이다. 선조들이 해당 지역에서 생태환경과 지역사회, 관습 등에 적응하며 오랜 기간 형성해온 유무형의 농업자원은 농업뿐만 아니라 역사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도 막대하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가 2002년부터 같은 취지에서, 계승할 가치가 있는 세계 중요농업유산 (GIAHS) 지정 보전제도를 시작하였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움직임에 발맞춰 2013년부터 국가중요농업유산 제도를 신설하고,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30조의 2(국가중요농업유산의 보전 및 활용)에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이 제도에 따라 제1호로 지정된 유산이 유명한 청산도 구들장 논이다.
청산도처럼 물이 적은 척박한 고지대에 조성된 농토를 우리는 다랭이논, 세계농업유산인 일본 나가시키현은 선반논, 중국 운남성은 사다리밭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 선인들은 논밭에도 반드시 걸맞는 이름을 붙여 불러왔다. 필자의 집안에서 짓던 땅에도 산짓등 밭, 도리봉논, 서끝논, 모릿등논, 새논 등의 이름이 있었다. 고유의 논밭 이름에는 선조들의 문사철 인식과 우리말 뿌리가 새겨져 있는 무형문화유산 가치가 큰 문화콘텐츠다.
전통 역사문화 사상의 결정체인 논밭 이름
고인돌시대와 마한의 모로비리국 시대 이래로 농생명산업 수도였던 고창이나 전북지역의 농업유산도 급격히 훼손되고 사라져간다. 멸실되기 전에 서둘러 주요 농업유산을 국가유산으로 등재하여 보존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경지정리와 야산개발, 농기계와 대규모농업의 발전에 따라 아름다운 논밭이름도, 경지정리 구획이름의 부호와 숫자로 바뀌고 말았다. 전통적 논밭이름은 지역의 고유지명과도 결합해 부른다. 땅이 위치한 곳의 특징에 따라 높은 데를 뜻하는 모릿등논, 산기슭의 산짓등, 산지뜸, 높은터논 등이 있다. 가잿골, 갓골 등은 가재를 잡던 곳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마을 중심에서 벗어난 외진 곳을 뜻한다.
논이 있는 곳의 특징 지형지물을 따서 솟대나 장승이 있는 곳은 솟대백이, 장승백이, 짐대거리 등을 붙였다. 흥덕면 동사리에 솟대를 말하는 솜때백이, 고창읍 석정마을 어귀에 짐대거리가 있어서 짐대거리 논으로 불렀다. 경작자 집과의 위치와 원근에 따라 집 근처인 문전옥답, 텃논, 웃논, 아랫논, 앞논, 뒤뜰논 등으로 불렀다. 대중가요 고향무정에 나오는 기름진 '문전옥답'은 집 앞에 있고 물길이 좋아 농사짓기 좋은 논의 대명사로 불렸다.
아산면 영모정앞 들판은 용산천과 인천강의 물길도 좋고 퇴적토가 쌓여 기름진 금처럼 귀한 땅이라서 금밭등이라 불린 문전옥답이다. 논 농사에는 물이 소중하므로 물길이 닿지 않는 논, 빗물에만 의지하는 논을 천수답, 하늘바래기, 천둥배미 등으로 불렀다. 모래흙이 많아서 물이 잘 빠져버리는 논은 거르는 도구인 얼맹이 논, 자갈이 많은 자갈배미, 척박한 땅은 주로 녹두발 윗머리로 불렀다.
물길이 좋은 논은 무논, 저수지 주변 수문주위에 있는 논은 무너미, 무냉기(무넘이)논, 작은 무너미, 큰무너미, 수통주변은 수통배미, 둠벙 근처는 둠벙배미, 방죽근처는 방죽배미, 지하수가 샘솟는 곳은 시암골배미, 찬시암골 논, 물이 빠지지 않는 수렁지역은 수렁배미, 습지는 진털배미 등으로 불렀다. 무장면 산정마을에 무내미배미가, 대산 매산리에 방죽골, 해리면과 성송면에 방축골이 남아 있다. 주요 작물재배지와 연관하여 미나리깡, 밤골, 외밭골, 감나무골, 석회가 생산되는 곳인 횟기재 논 등의 이름이 있다.
구들장논, 다랭이 논에 비해 비교적 큰 규모의 논을 통배미라고 불렀다. 대산 연동리에 통배미란 지명이 남아 있다. 다랭이 논 가운데 사물의 모양새에 따른 이름들이 재미있다. 가운데 잘록한 장구모양의 장구배미, 삿갓처럼 작다고 삿갓배미, 원추형 방수모자인 갈모를 따온 갈모배미가 있다. 흥덕면 동사리에 갈모배미가 남아 있고, 전국의 작가들이 주목한 인문학당 '책이 있는 풍경'이 자리잡은 신림면 입전마을이 삿갓배미를 한자로 쓴 마을이름이다.
삿갓배미가 있는 높은 지대, 갓밭등이 삿갓립자 밭전자 입전笠田으로 바뀐 것이다. 자진농부가나 모심기타령 등에 자주 나오는 "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치 남았네 지가 무슨 반달인가 초승달이 반달이지" 처럼 달모양을 따서 반달배미, 초승달같은 눈썹배미, 보름달 달은 망월배미(만월배미)도 있었다. 초승달 모양 가늘고 긴 논배미는 혀에 비유하여 혀끝배미, 전라도 방언으로 서끝배미, 서끄털배미로도 부르곤 했다.
풍수상 모양과 땅의 특성을 따온 논 이름
더러는 마을의 풍수형국과 관련하여 이름을 붙기도 했으니, 또아리 튼 뱀형국의 해리면 사반마을에는 뱀의 먹잇감으로 조성한 인공의 개구리섬 논배미를 깨구락지배미로 불렀다. 흥덕면 치룡리는 엎드려있는 용모양의 복룡형국인데 용이 조화를 부리려면 여의주가 필요하므로 논가운데 조성한 여의주 섬이 있다하여 여의주배미, 옆마을인 녹사 마을에서는 섬배미로 부른다. 고창읍 월산마을 농협창고 옆 논에 북두칠성 모양의 천문대 고인돌이 있었다하여 칠성배미라 하였다. 대산면 춘산리의 약산은 작약꽃이 막 피어나는 작약반개형인데서 유래한 작약골, 자갯골이 있다.
때로는 소작농 시절 대지주의 성씨에 따른 논배미 이름이 있어서, 농지개혁 이전의 소작농 제도를 엿볼 수 있다. 고창지역에는 일제강점기 대지주 사업가이던 남양홍씨 홍종철 소유토지가 가장 많았는데 사방에 널린 홍씨네 논을 홍답이라고 불렀다. 흔히 암치강씨로 불리던 진주강씨들 소작지는 강답으로 불렀다. 고수면 우평리 강변마을의 강답과 황답을 강가에 있어서 강답, 황무지를 개척했다고 황답이란 설이 있으나, 옛 소작농시절 지주의 성씨로 보는 게 당시의 토지표시 관행상 타당하다고 본다. 새 간척지는 주로 새 논으로 불렀다.
토지의 용도에 따라서 궁궐의 비용에 충당하는 궁장전이 있던 곳을 궁평이라 불렀었고, 신림면에 궁평마을이 있다. 향교의 제수용으로 쓰이는 향교답, 서당에 딸린 서당답도 있었으니, 고창읍 백양마을에 서당고논, 무장면 송계마을에 서당배미가 있다. 토지용도상의 논 이름중에서 가장 예쁜 이름이 동냥치배미, 동냥배미다. 마음씨 착한 부자지주들이 동냥배미라는 좋은 논의 수확량을 일부러 따로 떼어 행랑채에 보관했다가 동냥하러 오는 거지들 양식으로 미리 준비해두었다.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려고 짓는 논, 동냥 배미까지를 두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던 고창이었다.
공자의 정명사상...바른 이름대로, 답게 살기
이왕 이름을 지으려거든 뜻이 고운 이름을 지을 일이다. 순창출신 여암 신경준은 호남 3천재로 꼽힌 대학자다. 신경준이 직산에 있는 부엉이바위를 그 뜻과 느낌이 좋지 않음으로, 어짐과 도를 나타내는 봉황바위로 개명할 것을 제안한 휴유암이란 글이 있다. 그는 봉산탈춤으로 유명한 황해도 해주군도 옛날에는 부엉이군, 휴유군이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한국지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경준의 이름값답게 순창군이나 전북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순창군에 여암로나 신경준로 길 이름 하나 없는 듯하다.
다행히도 고창에는 동리로, 전봉준로, 녹두로, 이재로 등 해몽 전봉준, 동리 신재효, 이재 황윤석의 이름을 되살린 길이 있어서 퍽 다행이다. 봉황새같이 훌륭한 인재양성을 꿈꾸며 봉황새가 깃들도록 자신의 호를 벽오동나무 동리로 짓고 동리정사 사랑채 대문도 방장산 벽오봉을 향하게 한 신재효의 꿈과 업적의 터전이 '동리정사'다. 동리의 판소리 정리작업, 소리꾼 양성교육, 공연과 문화예술인 지원사업 등을 펼치던 '동리정사'라는 뜻이 큰 기관이 있던 곳이다.
대지 4천여평에 50여가구가 함께 살았고, 줄행랑채가 열네칸에 달하는 복합예술공동체인 동리정사가 사랑채 한 칸만 남기고 없어졌다. 민선 7기에 '동리정사'를 어렵게 복원해 놓았더니, 전임군수 실적지우기 작업으로, 판소리 교육, 공연, 체험공간에 터무니없는 악명인 판소리공원으로 바꿔치기 했다 한다. 봉황같은 귀한 인재를 기다리는 고창군민의 염원을 걷어찬 만행이다.
140여년간 내려온 분명한 역사적 근거와 기록을 제멋대로 바꾸려는 오만은 아무래도 역사적 죄업이다. 고인돌과 함께 마한시대 문명수도임을 뜻하는 고창의 옛 지명으로 군민공모와 법적절차를 거쳐 지은 이름인 '모로비리 공원'의 이름도, 비리가 생긴다는 변명으로 뜬금없고, 고속도로 나들목과 혼동한다는 원성이 높은 악명으로 바꿔치기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제 할아버지 이름을 모른다고 부르기 쉬운 옆집 개이름으로 부르는 셈이다.
공자는 바른 이름대로 제 노릇하는 게 정치의 기본이라 했다. 이장은 이장답게, 의원은 의원답게, 군수는 군수답게,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기자는 기자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주어진 이름대로 바르게 살아가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법이다. 대통령답지 못한 대통령 때문에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되도록 모든 사람이나 사물에도 걸맞는 고운 이름을 짓고, 좋은 뜻을 남길 일이다. 나쁜 이름 짓고 악명을 남기는 사람들의 말로가 역사의 거울에 잘 새겨져 있다. 하물며 논밭 이름에도 역사와 뜻이 아로새겨져 있거늘...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