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석방이라니, 징하다 징해…다시 구속, 파면의 그날까지 합심하자”…전주 풍패지관에 울려퍼진 ‘분노의 함성’
현장 르포&포토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오후 4시 30분. 전주 풍패지관(豊沛之館) 뜰에는 어느새 춥고 긴 겨울을 지낸 잔디가 노랗게 봄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고즈넉한 기와 건물을 감싸고 도는 바람도 한결 부드러웠다.
풍패(豊沛) 또는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말은 새로운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을 말하는 것인데 오늘도 이곳 주변에서는 ‘윤석열 탄핵 및 퇴진 촉구 전북도민대회’가 5시부터 열리기로 계획돼 있다.
지난해 12월 3일 한밤 중 황당하고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언으로 전 국민을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은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을 촉구하는 시국대회와 촛불집회가 들불처럼 번진 이곳은 흔히 '객사(客舍)'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조선 왕조 발상지, '전주 객사' 앞 ‘내란 우두머리 규탄 집회’ 매주 열려…역사의 아이러니 현장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실제 출생지는 함경도 영흥이지만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이자 전주 이씨의 관향(貫鄕)으로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를 '풍패지향'이라 불렀고 조선시대 전라도의 위상을 말해주는 전국 8도 중 가장 크고 웅장했던 전라감영의 건물 중 외국 사신 등의 귀빈들을 위한 객사에는 중국 사신이 적어놓은 '풍패지관'이란 현판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자랑한 김에 한 가지 더 첨언하면, 전주성은 풍패지향의 성이라 하여 남대문은 풍남문(豊南門), 서대문은 패서문(沛西門), 동대문 완동문(完東門), 북대문 공북문(拱北門)으로 사대문을 명명했으며 문루인 풍패루(豊沛樓)가 있었고 그 중에는 아직도 풍남문이 남아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583호로 지정된 전주 풍패지관 앞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현직 대통령 탄핵과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가 매주 토요일 열리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집회 시작 30분 전인데 벌써 100여명의 시민들이 ‘내란 수괴 윤석열 파면’, ‘내란 공범 국민의힘 해체’란 피켓을 챙겨 들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연단에서는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음악에 맞춰 율동과 함께 ‘윤석열 탄핵’, ‘윤석열 파면’이란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해 눈길을 끌었다.
걸그룹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르는 신나는 음악과 잘 어울리는 구호를 리듬에 맞춰 선창하며 분위기를 잘 이끈 이 여성이 누구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30여분 지나자 해당 여성은 자신을 도내 한 대학교에 다니는 재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금세 탄성과 함께 힘찬 박수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내란 우두머리 탄핵과 파면, 너무 당연하지만 이토록 징할 줄이야…끝까지 합심하자”
한참 동안 구호를 함께 외치다 집회 참가자 수를 세어보니 어느새 거리에는 얼추 1,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여성 지방의원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는 체를 했다. 그러자 그 옆에 함께 모여 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눈인사를 했다. 그들 중에는 장애인단체 관계자도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후 5시가 되자 본격적인 집회 행사가 시작됐다.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의 공식 명칭은 ‘윤석열 파면 1만 도민대회’였다. 그동안 20여 차례 진행돼 온 집회의 주인공은 참여 시민들이지만 꾸준히 집회를 이어온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는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소수 정당 등 초기에 60여개 단체로 출발해 지금은 80여개 단체와 정당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주최 측을 대표해 첫 발언에 나서 “내란 우두머리를 구속시키고 탄핵과 파면을 시켜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이토록 징하디 징할 줄은 몰랐다”면서 “과정이 힘들지만 그래도 끝까지 윤석열 탄핵과 파면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합심해 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껏 분위기를 고무시켰다.
그런데 하필 이날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이어 검찰이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석방되는 날이었다. 윤 대통령의 석방 소식이 집회 시작 이후 30여분 만에 전해지자 집회 현장에서는 분노와 탄식이 쏟아졌다. 이날 윤 대통령은 오후 5시 49분께 서울구치소 정문을 걸어 나와 이번에도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고 대신 구치소에 모인 극렬 지지자들에게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인사한 뒤 경호차를 타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로 이동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약 4,000명이 모인 집회 참자가들은 윤 대통령 석방 소식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도 공범이다”며 즉시항고를 하지 않은 검찰을 성토했다. 검찰은 구속 취소 결정의 불복 수단인 즉시항고 여부도 검토했지만 위헌·위법 논란이 불가피한 것과 동시에 상급 법원에서도 구속 취소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석방을 결정한 것으로 밝혔지만 윤 대통령 석방에 따른 분노의 탄식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윤석열 다시 구속시키고 파면하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나라가 비정상이고 엉망인데 어찌 일상이 평온할 수가”
이날 집회 참가 시민들은 “내란 우두머리는 석방되고 내란 가담자들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윤석열 석방 규탄한다. 검찰도 공범이다”고 규탄했다. 집회 주최 측도 "구치소를 나온 윤석열을 보니 참담한 마음이지만 헌재의 파면을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자"고 외쳤다.
'윤석열 파면 1만 도민대회' 집회는 초기 달아올랐던 분위기와는 달리 윤 대통령 석방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등 일부 시민들은 “윤석열을 다시 구속시켜야 한다" "파면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함께 하자”며 분을 삭히지 못했다.
집회에 참여한 이모 씨(20대 여성)는 “윤석열 대통령 석방 뉴스를 보고 도저히 집에서 화를 참을 수 없어 친구들을 불러 집회 현장에 나왔다”며 “나라가 이토록 비정상이고 법 질서가 엉망인데 어찌 일상이 평온할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해냈다.
또 최모 씨(30대 남성)는 "한 순간에 국가의 안위와 경제를 어지럽히고도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은 전혀 반성할 줄 모른다”며 “즉시 다시 구속시키고 파면을 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어떤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지 참으로 암담하고 끔찍하다”
이밖에 박모 씨(50대 여성)는 “어제 법원의 구속 취소 소식에 밤잠을 설치며 설마설마했는데 검찰이 결국 석방 지휘를 했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며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를 백주 대낮에 돌아다닐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국가에서 또 어떤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지 참으로 암담하고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손녀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는 김모 씨(60대 남성)는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구속도 시키지 못하는 검찰과 법원은 무엇이 두렵고 무서워서 그런지 모르겠다”며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 두지도 않는 내란 세력들을 하루빨리 가두고 처벌해서 부디 정상을 되찾기 바라는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 관계자들은 “헌법재판소의 즉각 파면만이 내란 세력들의 준동을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는 즉각적인 파면을 선고하라”고 촉구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느냐”며 “윤석열이 석방됐으니 증거 인멸은 물론이고 온갖 비상식적인 일들이 또 벌어질 텐데 두려움이 앞선다. 다시 힘을 뭉쳐 구속되는 그날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