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기후변화와 자연 훼손이 부른 ‘꿀벌들의 반란’...피해는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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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6     박주현 기자

전북경찰청은 26일 살인 피의자가 유치장에서 음독을 시도한 사건과 관련해 유치장 관리인 등 관계 경찰관 7명에 대해 ‘성실 의무 위반’ 혐의 등으로 감찰 조사를 벌이는 중이라고 밝혀 세간의 이목을 다시 끌어모았다.

해당 경찰관들은 설 연휴 기간인 지난달 30일 정읍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된 A(70대)씨의 음독 사건과 관련해 제대로 된 입감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웃 양봉업자 살해 암매장한 70대, 왜?

전북경찰청 전경

특히 이번 사건은 매년 찾아오는 연례행사가 돼가고 있지만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꿀벌 집단 폐사와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넘길 사건은 아닌 듯싶다. 게다가 기후변화 등 환경적 요인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심각한 '꿀벌 폐사'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향한 일종의 경고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사건의 발단 경위를 살펴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정읍에서 양봉업자 B씨가 사라진 건 지난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부터다. B씨의 20년 지기인 C씨는 설날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오전 9시 40분경 B씨에게 걸려왔던 ‘부재중’이란 전화를 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B씨의 전화가 꺼져 있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에 C씨는 급히 B씨의 아들 D씨에게 연락을 취해 함께 B씨의 양봉장을 찾아갔지만 B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다음날 아들 D씨의 실종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고 경찰과 소방대원, 마을 주민들까지 B씨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B씨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E씨가 수사망에 올랐지만 그는 27일 오전 9시 20분경 B씨에게 가스 배달을 해주고 곧바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하더니 B씨의 양봉장에서 25m 떨어진 곳에서 매장된 B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마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둔기로 B씨를 폭행하고 산기슭에 암매장한 범인은 바로 B씨의 이웃인 A씨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사건 당일 오전 자신의 자택에서 둔기를 챙겨 피해자의 양봉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CCTV에 포착됐던 것이다.

”내게 판 벌통에 여왕벌이 없어 벌이 다 죽었다...그래서 살해?" 

A씨는 당초 범행을 부인하다가 추궁이 이어지자 경찰에 자백했고 A씨가 지목한 야산에서 유기한 시신도 발견됐다. A씨는 “B씨가 자신에게 판 벌통에 여왕벌이 없어 벌이 다 죽었다”며 “이에 앙심을 품고 B씨를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사건은 또 발생했다. A씨를 검거한 경찰은 지난달 31일 오전 9시 10분께 유치장에 살인·사체 유기 등 혐의로 입감됐던 A씨가 독극물을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앞서 A씨는 유치장 입감 당시부터 독극물을 소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 검거될 때부터 농약을 담은 100㎖ 음료수병을 자신의 하의 속옷에 숨겨 유치장에 반입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를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게 또 다른 화근이 됐다. 정읍경찰서는 A씨를 유치장에 입감할 당시 몸수색을 했지만 속옷 안쪽은 확인하지 않아 농약을 담은 음료수병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살인 피의자 유치장서 '음독' 소동, 관리·감시 ‘허술’...경찰관 7명 '감찰'

전주MBC 1월 31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이에 상급 경찰인 전북경찰청은 정읍경찰서 유치장 관리인 등 관계자 7명을 대상으로 부랴부랴 감찰에 나섰다. 경찰은 유치장 근무자 등이 유치장 입감 전 피의자 신체검사를 소홀히 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경찰 내규상 살인 피의자를 유치장에 입감할 때는 3단계의 신체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즉 손으로 겉옷 위를 가볍게 두드리며 확인하는 '외표검사'와 속옷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신체검사용 가운을 입고하는 '간이검사', 그리고 속옷을 벗고 진행하는 '정밀검사'로 나뉘어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유치장 CCTV 등 관련 증거를 확보하고 계속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며 “감찰 조사를 통해 경중을 따진 뒤 징계위원회 회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허술한 점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선 농약을 담은 음료수병이 유치장에 반입된 사실 외에도 독극물을 마시기까지 관리·감시가 소홀한데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응급치료를 받고 당사자가 건강을 회복했다고 하지만 입감 과정에서 경찰의 신체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논란이 거세다.

설 연휴 기간에 발생한 강력 사건임에도 쉬쉬하다 뒤늦게 밝힌 것도 문제지만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검거한 피의자를 허술하게 관리하며 조사를 벌인데 대해 분명한 지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경찰 안팎에서 고조되는 분위기다.

'벌통' 산지 2년 지나 살인·암매장...여왕벌 없는지 왜 몰랐을까?

더욱이 이번 사건은 여왕벌이 없으면 일벌(꿀벌)들은 모두 떠나버리는데 애초에 여왕벌이 없는 벌통을 산 점도 의아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벌통을 산 지 2년이 됐는데 그 문제로 최근에 와서 살인을 저지른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2년 전 구매한 벌통에 여왕벌이 없어 얻으러 갔다가 B씨와 마주쳤다"며 "B씨가 벌 절도범으로 의심하고 신고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범행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진술에 의하면 살해된 B씨는 봉침의 효과를 보고 벌통을 구입해 키웠다고 한다. 따라서 꿀벌들이 죽거나 사라진 것을 알았다면 여왕벌이 없었기 때문인 것을 충분히 알았을 텐데 이를 구입하고 뒤 늦게 알았다는 것도 의심이 들지만 이것이 결국은 살인 동기가 됐다는 점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특히 살해한 것뿐만 아니라 암매장까지 했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번 사건은 아마 A씨와 B씨 두 사람 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A씨는 당시 여왕벌이 없는 벌통을 팔았다는 이유로 양봉업자를 살해한 뒤 유기한 혐의로 체포돼 유치장에 입감됐지만 입감 전 몰래 저독성 농약을 담은 비타민 음료병을 속옷에 숨겨 반입해 자해 소동을 벌인 것도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잘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의 관계와 살해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매년 반복되는 ‘꿀벌 폐사' 방치...비극적 사건 불러

경찰 로고(경찰청 제공)

특히 매년 겨울과 봄 사이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꿀벌 폐사 현상이 이처럼 끔찍한 비극적 사건을 불러일으킨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꿀벌 무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여왕벌을 죽이는 현상이 바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양봉 전문가들에 의하면 꿀벌들은 태어나 자란 '봉군'을 떠나 새 봉군을 만드는 ‘분봉’을 한다. 그런데 새 봉군에 등극한 여왕벌이 죽으면서 결과적으로 봉군이 해체되는 데 이러한 현상이 최근 꿀벌 농가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꿀벌과 여왕벌이 없는 빈통을 속여 판매하다 적발되거나 이웃 간 갈등·마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양봉 전문가와 농가들은 ”급속한 도시화와 각종 개발로 꿀벌의 일터인 숲과 꽃이 사라지고 반면 양봉산업은 팽창하는 바람에 1㎢당 한국의 꿀벌 사육 밀도(약 21.7통)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갈수록 악조건인 환경에서도 꿀벌은 밖에 나가 다른 꿀벌들 또는 곤충들과 경쟁하면서 희생당하기 일쑤고, 벌통에서는 꿀벌응애가 들끓고, 농약으로 오염된 먹이들로 인한 폐사율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토로하고 있다.

결국 꿀벌은 야생 벌, 곤충, 꿀벌응애와 바이러스 등 작은 생물들, 각종 살충제와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외에 인간들의 각종 개발로 인한 먹이 오염과 기후변화까지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이다. 그런 꿀벌 무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여왕벌을 죽이는 것을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보는 인간사회가 크고 작은 피해를 야기시키고 반복적인 악순환을 제공한 책임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꿀벌과 여왕벌이 없는 벌통을 사고파는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그것도 모자라 여왕벌이 있는 것처럼 속이려다 뒤늦게 들통나 살해하고 심지어 사체를 유기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은 사회적 관심에서 외면 받는 꿀벌들의 증오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기후변화 및 자연환경 훼손이 가져다 준 경종 아닐까?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