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로 흥한자 주술로 망한다"..."국정운영 그림자 '주술도사들'이었다면 위헌·위법이고 부도덕·무책임의 극치"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76)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 '케이(K) 컬처'로 세계 문화선도국으로 비상하는 세계 10위권 강대국 대한민국이다. 한국 현대사의 문예중흥시대가 바야흐로 개막하는 신호탄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식이 열리기 직전에,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으로 80년 공든 탑인 한국의 국격이 순간에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만약 그 날 현대사의 흑역사로 기록될 주술 좀비가 기획한 친위쿠데타가 없었더라면 연말연시 대한민국의 화제는 온통 한강의 노벨문학상, 케이(K) 소설, 케이(K) 문학, 대한민국 문예중흥시대, 인문학대국 한국, 출판문화의 부활 이야기로 희망이 넘쳤났을 판이다. 왜 하필 그 때가 12월 3일 10시 30분이었을까?
윤석열 정권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따라 다닌 '무속'과 '주술'의 그림자
한자로 파자하면 임금 왕(王)자가 3개 겹치는 시점이라 영구집권 거사에 기막힌 택일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3년 전 대선 시절에 윤석열 후보가 떼를 쓰고 고집하던 방송토론 일시, 윤 후보의 손바닥에 쓰여있던 임금 왕자, 의사 정원 2,000명처럼 정책마다 붙히던 2,000이란 숫자가 다시 주술과 겹쳐 보인다. 국가대사를 아무도 모르게 독단으로, 수석 참모와도 상의 한마디도 없이 불쑥 결정하고, 도둑놈 도망치듯 청와대를 버리고 이사간 용산궁 이전부터 비롯하여 윤 정권 내내 무속과 주술의 그림자가 시도 때도없이 따라 다녔다.
시중에 떠도는 말로는 윤 정권의 하늘에는 천공, 땅에 건진, 바다에 명태가 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자칭 '지리산도사'의 기막힌 작명인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정권이라는 촌철살인의 별칭과 만평도 줄을 이었다. 아직 전모가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점집을 운영하는 전 정보사령관 무당 좀비가 무시무시한 친위쿠데타를 총괄기획하였다는 보도와 그의 메모를 보고는 기가 막힌다.
인공지능시대 대한민국 국회 청문회의 증인으로 피고인 무당을 자문했다는 보살무당이 출연하는 장면을 세계인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고려, 조선시대가 아닌 대한민국시대까지도 자기 정체성과 줏대가 없고 비선에 의지하던 유약한 왕의 시기마다 권력과 결탁한 주술정치가 창궐하다가 비참하게 종말을 고한 흑역사를 반복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2022년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국민들께 청와대를 개방하는 행사에 등장한 복숭화 꽃을 든 74명의 입장 광경은 참으로 기괴했다.
한반도 '주술의 흑역사'와 천년 '주술 전쟁'
주술사에게 복숭아나무 가지는 귀신 쫒는 도구이다. 지금도 동도지(東桃枝 해뜨는 동쪽 복숭아가지)는 버젓이 전자상거래에서도 팔리는 귀신 쫒는 도구이다. 예전에 집에서 치르던 전통장례 의식에서는 잡귀가 붙지 않도록 복숭아나무 가지로 사자의 관을 두드리는 도지구타법(桃枝毆打法)이 행해지곤 했었다. 청와대 개방 복숭화꽃 사건은 전통 의식이 아니라 귀신 쫒는 주술이 분명하다. 자칭 지리산도사는 내가 감방에 들어가면 한 달안에 정권이 망한다고 저주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갑진정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리산도사의 신통력인가? 주술정권의 취약성인가?
고릿적이나 조선시대 이야기도 아닌, 불행히도 한국 현대 정치사의 현재 진행형이 되어버린 주술정치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동서양의 고전과 문화적 뿌리를 대비하여 학술적으로 명쾌하게 밝히고 풀어낸 책이 최근 출간되어 장안의 화제거리다. 가히 세계 주술사상사로 부를 만한 학술서이지만, 재미도 있어서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저자는 이미 이 시대 최고의 풍수학인으로 평가받아 세종시 행정수도 구상의 밑그림을 그렸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한 김두규 우석대 교수다.
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주술>, 부제 '그들은 왜 주술에 빠졌나? 한반도 천년 주술전쟁'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배권력의 무능과 탐욕을 파고들며 악용된 비보술의 실체를, 정통 풍수와 비교분석하여 주술의 부작용을 드러낸다. 앞에서 살펴본 윤 정권의 기괴한 언행들 속에 숨어있는 주술의 실체를 동서양의 역사문화를 논거로 하나하나 시원하게 밝혀내고 있다.
유록숭, 고려시대 숙종의 '남경천도' 반대
김 교수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흔히 보았던 장면들인, 고려의 도선, 김위제, 묘청, 신돈, 영의, 조선의 최호원, 장순명, 진령군 등 비보법, 주술과 관련된 인물들이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부귀를 누리다가 비참한 종말을 고한 숱한 사례를 분석하였다. 이들을 현재 탄핵정국을 부른 윤 정권의 구체적 사건과 대비하여, 주술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망국의 흑역사를 진단하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였다.
살벌한 주술정권의 시기에도, 목숨걸고 주술의 폐해를 경계하는 용기있는 지식인이 있었으나, 그들은 당대에는 늘 핍박받거나 죽었고, 역사에는 충신으로 기록된다. 고려 숙종 때 왕을 업고 남경천도를 주장한 김위제의 비보술을 "미신에 빠져 막대한 인적물적 폐해가 있으므로 불가합니다" 를 외친 무송부원군 유록숭(庾祿崇)은 고창출신으로 고창 본향인 무송유씨의 시조다.
한편 불교국가 고려에서 성리학이 통치 이념이 된 조선시대에는 주술을 공식적으로 배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통치 과정에서는 풍수와 비보술이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했다고 한다. 저자는 고려시대 가공 인물인 도선을 비보술의 시원으로 보고, 우선 주술과 풍수를 분명히 구분하는데서 논지를 전개한다. 그간 땅을 다룬다는 면에서 양자는 혼용되어 왔으나, 비보술은 지형지세를 점쳐 길흉을 정하고 주술 목적을 위한 천도, 궁궐과 정자 신축 등을 통해 병든 땅을 다스리거나 고치는 불교의 일파인 밀교의 택지법이다. 신라말 승려 도선으로부터 비롯했는데, 특히 고리 왕조에서 권력자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사악한 주술로 변질됐다는 게 이 책의 관점이다.
이 책의 맺음말은 "주술로 흥한자 주술로 망한다"이다. 김 교수는 고려, 조선시대 다양한 역사 속의 주술흥망사를 분석하여 주술로 화무십일홍의 권력을 누린자는 한결같이 주술로 폭망했음을 밝혀준다. 나아가 신돈과 공민왕, 진령군과 명성황후, 최태민과 박근혜의 경우 등 처럼 주술 좀비가 나라와 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던 역사적 사실을 다시 환기시켜 후세의 거울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대정신과 민심을 아는 대인은 주술이 필요없다"
역사는 거울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만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과 미래의 결과를 거울처럼 밝게 비추어 준다. 그래서 인문학의 기본이 문사철이고, 제왕학의 필수과목이 역사이고, 단군왕검도 거울을 들고 홍익인간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국가위기를 악용하여 역사의 혼을 팔아먹고, 얄팍한 역사시험 지식팔이로 국민을 편가르고 사적이익을 탐하는 짓도 신종 역사주술 푸닥거리는 아닐까? 진정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 시국에는 정의와 지식인의 책무와 국민통합을 말해야 과연 역사학도라 하지 않겠는가?
김 교수는 1,000년 뿌리 깊은 주술의 유혹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암기교육이 아니라, “주체성을 키우는 교육”이 긴요하다고 제안한다. 나의 정체성과 자아의지가 박약하면, 유혹에 빠지거나 탐욕으로 사리분별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첨단과학 시대에도 사주며 점성술 타로가게가 한옥마을이나 대학가에도 줄지어 널려 있고, 기업경영에도 주술에 의지하는 사례가 많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와 나약한 인간의 심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개인이나 기업차원이 아닌 민주공화국 국정운영의 그림자 정부가 주술도사들이라면 명백히 위헌·위법이고 부도덕·무책임의 극치다.
법치주의의 근간인 정책 결정 절차의 공공성, 적법성과 책임성, 행정절차의 투명성, 공개성 등 대원칙을 아예 걷어차버린 것이다. 그 폐해의 심각성은 국가의 존망과 직결될 만큼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온다. 모든 문제는 하늘이나 땅이 아니고 사람에게 있다. 필자가 견문이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세계 어느나라 왕궁이 청와대 보다 좋은 터에 있다던가? 청와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좋지 못한 것은 모두 그들의 자업자득이다. 못난 사람 탓이지 청와대 뒷산이 반듯하지 못한 탓이겠는가?
호남 3천재로 조선의 명풍수 100여 명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겨 <이재난고>에 기록한 이재 황윤석은 "덕을 쌓고 복을 지은 사람만이 길지를 만난다(길인봉길지吉人逢吉地)"고 통찰한다. 착한 사람되는 공부, 문사철공부가 제왕학의 근본이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 주술정권의 갑진정변 대참사다. 주역의 경문에서 점을 언급한 곳은 혁명을 상징하는 택화혁(澤火革)괘다. 큰 일할 사람은 자기수양을 쌓고 자기혁신을 하여 호랑이처럼 담대하게 변하면 점을 칠 필요도 없다.(대인호변 미점유부: 大人虎變 未占有孚). 문사철 공부를 통하여 착한 마음으로 시대정신과 민심을 꿰뚫는 지도자에게 패가망국할 주술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으랴?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