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자초한 김관영 지사, '돌파구' 찾으려면?

토요 시론

2025-02-08     박주현 기자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벽두 사면초가(四面楚歌) 위기에 내몰렸다. '도민과의 대화'에 나서 민심을 청취하고 도정을 홍보하겠다던 취지와 달리 되레 초반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으며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본디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뜻의 사면초가는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희망이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김 지사가 이러한 지경에 처한 것은 따지고 보면 순전히 자신이 자초한 형국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미 재선 의지를 밝힌 김 지사는 연초 고향인 군산지역 방문에서부터 곤혹스런 문제거리를 만들어 민심을 추스르기는 커녕 '민심 이반'에 불을 붙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왜 그럴까?

“고향에서 마저 다른 지역 후보들에게 밀리지 않을까 걱정”...왜?

4일 오후 고향 군산을 찾은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군산시청 대강당에서 군산시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특강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사진=전북특별자치도 제공)​

지지하던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조차 ‘저러다 고향에서 마저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른 지역 후보들에게 밀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푸념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발단은 지난 4일 오후 군산시청에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도민과의 대화'에서 김 지사와 군산시의원이 서로 고성과 막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달이 났다.

김 지사는 ‘도전경성의 초심, 도민 약속의 실천 초지일관’이라는 그럴싸한 주제로 민선 8기를 이끌어 온 도정 실적과 남은 1년 6개월여의 도정 운영 방향 등에 대한 특강을 실시했다. 앞서 김 지사는 3일부터 한 달간 14개 도내 시·군을 돌며 지역 현안에 대한 도민의 의견을 듣기로 하고 전주시와 김제시에 이어 군산시를 세 번째 방문한 자리였다.

이날 열린 ‘도민과의 대화’는 새만금 신항의 무역항 지정 현안이 핫이슈였다. 그동안 군산시는 새만금 신항을 기존 군산항의 보조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원포트(one-port)를 주장한 반면, 김제시는 새만금 신항을 군산항과는 다른 별도의 무역항인 투포트(two-port)지정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김 지사는 해양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자문위원회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지만 그 결과는 해양수산부에 공문으로 발송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날 도민과의 대화에서 군산시의원이 이 문제를 끄집어 내어 김 지사의 의중을 떠보기 시작했다.

김 지사의 특강이 끝난 뒤 시민과의 질의응답에서 군산시의회 서은식 의원은 “전북자치도의 자문위원회에서 새만금 신항을 군산항과 원포트로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낸 것이 맞는지 궁금하다”며 “자문위원회의 결과를 해수부 추가 요청 없이 자체적으로 제출할 계획이 있는지와 공개할 계획이 있다면 공개 시점이 언제인지 명확히 밝혀 달라”고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당신 똑바로 못해”, “이상한 사람이네 정말”…고향 군산서 ‘도민과의 대화’ 아수라장

전주MBC 2월 5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그러자 김 지사는 “현재 새만금 신항이 관할권 분쟁의 대상으로 되어 있지 않지만 훗날 분쟁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에 원포트, 투포트가 군산시와 김제시의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어 무역항 지정을 위한 중앙항만정책심의회가 개시되면 시기에 맞춰 자문위원회에 결과를 보내겠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군산시의회 새만금특별위원장인 김영일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김 지사에게 “도지사가 새만금 신항과 관련해 최소한 군산시민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돼요”라고 말하자 김 지사는 “무슨 거짓말을 해요, 이 양반이 지금!”이라고 맞받으며 분위기가 격앙됐다. 이에 흥분한 김 의원은 “도지사! 당신 똑바로 못해? 어디다 큰 소리를 쳐! 도지사가 그렇게 무능하게 해도 되는 거야?”라고 발끈하자 김 지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이네, 정말”이라고 되받자 순식간에 장내가 술렁이며 아수라장이 됐다.

새만금 신항만 무역항 지정 방식을 둘러싼 군산시와 김제시의 극한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군산시민들과 시의원들은 고향을 찾은 김 지사가 고향에 다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주길 바란 듯했지만 분위기는 정 반대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언성이 격해지자 전북자치도 직원들이 나서 급히 김 지사의 퇴장을 유도해 이날 '도민과의 대화' 행사는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파장이 확산되자 사흘이 지나 김 지사는 입장문을 내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도민과 함께하는 공개적인 자리가 원활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김 지사와 군산시의회 간 갈등은 지역 정치권의 역학 관계와 맞물려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김 지사는 “앞으로는 도정 책임자로서 성숙한 자세로 도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전북 발전의 해법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지만 남은 지역의 '도민과의 대화' 행사가 당초 기획한 대로 순탄하게 이어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도민과의 대화’에 대한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도백 '재선' 위한 '현역 프리미엄' 활용 행보?

2024년 5월 2일 민생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익산지역을 찾은 김관영 전북지사.(사진=전북자치도 제공)

지난해에도 김 지사는 ‘민생 일보·행복 만보 특별대책’이라며 일선 시·군 현장 방문차 익산시청을 방문했지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능하면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재선 도전 의지를 노골적으로 시사해 파문이 일었다. 지방선거가 2년여 시간이나 남은 데다 새만금잼버리 실패에 따른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김 지사의 민생 행보가 차기 재선을 위한 현역 프리미엄 활용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에 더해 최근 완주군의회는 ‘도민과의 대화’에 앞서 김 지사의 즉각 사퇴를 대놓고 주장하고 나서 또 다른 주목을 끌고 있다. 완주군의회와 '완주·전주 통합 반대 완주군민 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지사가 통합 찬성 단체와 전주시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통합을 강행하고 있다"며 "김 지사가 통합 반대 여론을 뒤로한 채 자신의 재선을 위해 '전북특별자치도 통합 시·군 상생발전에 관한 조례안'을 도의회에 제출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한 뒤 "도의회에 제출한 조례안을 즉각 회수, 파기하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김관영 지사가 2024년 7월 26일 완주군청을 방문해 '군민과의 대화'를 가지려 했으나 군의원들과 일부 주민들이 진입을 저지하자 유의식 완주군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김 지사가 완주·전주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민선 8기 내내 역점을 기울이며 공을 들여왔음에도 통합에 줄곧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워온 완주군의회가 급기야 전북도의회를 찾아 김 지사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올해 완주군에서 열릴 '도민과의 대화' 행사가 지난해처럼 대화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군청 앞에서 발길을 되돌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7월 김 지사는 ‘군민과의 대화’를 위해 완주군을 방문했지만 ‘완주·전주 통합’을 반대하는 완주군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되돌아 온 적이 있다. 출입문을 걸어 잠근 군민들과 군의원들은 당시 ‘김관영은 물러가라’, ‘통합 반대’, ‘완주군 없앨려고 왔니’, ‘누구를 위한 통합인가’라는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이처럼 주요 현안에 대한 설명과 도정 홍보를 한다며 나선 김 지사의 '도민과의 대화'가 시·군의회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지면서 오히려 불협화음 등 화근만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선 도전을 위한 입지 강화와 표심 확보에 내심 주력하기 위한 민심 탐방 행사로도 보이지만 지방의원들과의 격한 언성이 부메랑 되어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불통·아집' 점철된 ‘도민과의 대화’라면 당장 때려치우는 게 나아

김관영 지사(자료사진)

새만금 신항의 관할권 분쟁에 이어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 추진을 놓고 벌어지는 지자체들 간 갈등, 여기에 또 전주·완주 통합을 놓고도 완주군의회가 공개적으로 '지사직 사퇴'까지 촉구하는 강수를 꺼내든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 지가 김 지사의 재선 가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장 중심 소통을 강조한 김 지사의 갈등 중재와 조정 능력이 무엇보다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김 지사 개인은 물론 도정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기란 난망해 보인다.

겹겹이 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남은 ‘도민과의 대화’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핵심을 찌르되 기분 나쁘지 않은 대화의 기술과 재치 있는 유머로 도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고향인 군산지역에서와 같이 불통과 아집으로 점철된 ‘도민과의 대화’라면 당장 때려치우는 편이 낫겠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