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한심한 작태, 언제까지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토요 시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 시행 30주년을 맞는다. 지방자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매우 뜻깊은 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 주민들의 대표기관 역사는 깊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향청(鄕廳), 갑오경장 이후의 향회(鄕會), 일제시대의 도회(道會)·부회(府會)·읍회(邑會)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대체로 일반 주민들의 대표·대의기관이라기 보다는 지방 토호들의 대표기관 성격이 훨씬 강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에도 주민 대표기관들이 있었지만 모두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의 범주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주민에 의해 선출된 지방의원들이 주민을 대신하여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예산 등에 관한 의결과 감사 및 조사권을 위임 받아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대의기관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착하게 됐으니 지방의회 제도는 실제로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다.
지방의회, 지난한 30년 굴곡의 역사 되돌아보면?
지나온 과정을 되짚어 보면 1949년에 지방자치법이 제정됐지만 6·25전쟁으로 인해 대한민국 최초 지방선거는 1952년에 치러졌다. 당시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없었고, 기초의회(시·읍·면의회) 선거와 광역의회(도의회) 선거가 서로 다른 날에 시행됐다. 이어 제3기의 지방의회를 구성·운영하다가 1961년 5월 박정희 군부세력의 ‘5·16군사정변’으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로 해산되었다가 1980년에 들어서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하되, 그 구성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규정을 마련했지만 실제로는 1991년에서야 시·군의회 의원 선거는 그 해 3월 26일에, 시·도의회 의원 선거는 그 해 6월 20일에 각각 실시됐다.
이 때도 지방의원만 선출하는 선거였을 뿐, 단체장(의장) 선거 없는 지방의회 제도였다. 그러다 4년 후인 1995년 비로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지방의회가 주민의 직접선거로 구성·운영됐다. 이처럼 짧지만 지난한 굴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30년을 맞는 의미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방의회 제도가 여전히 지역의 토호세력 위주로 형성돼 권력기관으로 행세하거나 특정 정당 일색으로 구성돼 중앙정치의 심부름꾼 또는 들러리 역할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토호들 폼 잡는 자리’, ‘특정 정당 일색’…지방의회 '폐지·무용론' 끊임없이 거론
겉으로는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고 감시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지방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과 같은 당이거나 지역 토호들로 구성돼 이른바 ‘폼 잡는 권력의 자리’로 활용되거나 지방의원들의 공천권을 쥔 지역구 위원장인 현역 국회의원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면서 심부름과 선거운동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지방의회의 '3류 정치' 행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바람에 지방의회 폐지론과 무용론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거의 모든 지역이 대동소이하지만 유독 전북지역의 경우 지방의회 무용론이 심각하게 대두돼 왔다. 특히 전북에서 지방의원들의 비위와 일탈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해 벽두부터 민주당 일색인 독점적 구조를 지닌 전북자치도의회와 일선 시·군의회 의원들의 도 넘은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 사례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가관이 따로 없다.
전북자치도의회의 한 의원은 지난해 12월 전북자치도 회계과 팀장과 직원에게 수십억원대의 에너지 절감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으면 자신이 예결위원이 돼 해당 부서 예산을 삭감하고 각종 자료제출 요구를 하겠다고 겁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당 의원은 관계 공무원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해당 업자가 보는 앞에서 공공연하게 부적절한 청탁을 하며 특권의식을 발동해 공직사회 공분이 거세다.
더구나 해당 의원은 특정 부서에 보복성 자료 요구로 지난해에도 구설에 휘말리는 등 논란을 빚기도 한 장본인이다. 여기에 또 다른 도의원도 같은 업자의 청탁을 받고 관련 부서 공무원들을 불러 설치 여부를 검토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역시 파장과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청탁 의혹’ 도의원들 구설, 40명 의원들 중 37명 민주당 일색...제 식구 감싸기, 일탈 '한몫'
해당 도의원들은 에너지 절감 시스템을 설치하는데 30여억원이 들어가지만 1년에 4억 2,000만원의 전기료가 절감되기 때문에 3억원씩 10년간 분할 상환을 할 경우 연간 1억 2,000만원이 남는다며 해당 업자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북자치도 담당 부서 관계자들은 “해당 장치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고 30억원의 예산으로 청내에 태양광발전시설을 하는 것이 보다 확실하게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며 다른 입장을 내놓아 의구심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에 해당 도의원들은 "청탁 의혹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의구심과 논란이 확산되자 도의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윤리자문위)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윤리자문위를 소집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윤리자문위는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윤리 및 행동강령 조례'에 따라 설치·구성된 기구로 7명의 민간위원이 참여하지만 윤리강령과 윤리실천 규범 준수 여부, 징계에 관한 사항을 자문하는데 그친다.
게다가 도의회는 도의원들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진 이후 자체 조사를 했으나 공무원들의 의미 있는 진술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로 봐서 유야무야 끝나거나 솜방망이 징계 수준이 내려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논란을 일으킨 도의원들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현재 전북자치도의회 40명 의원들 중 민주당 소속이 37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내부 비위와 일탈이 발생할 때마다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이 나온다.
도의회 뿐 아니라 시·군의회도 마찬가지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은 지난해 12월 군산시의회 모 의원을 품위 손상과 부적절한 발언 등의 이유로 제명했다. 해당 시의원은 군산시 공무원들에게 잇단 막말과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해 10월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무원 비하 발언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군산시 공무원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공무원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발언, 성추행 논란까지...지방의회 ‘면죄부’, 공직사회 ‘공분’
더욱이 해당 시의원은 군산시 여성 공무원에게 “나랑 스캔들 일으킬 사람 손들어봐”란 성희롱성 발언을 해 공직사회의 거센 분노와 논란이 확산되자 민주당 중앙당은 해당 의원을 제명처리 했지만 군산시의회는 무소속이 된 해당 의원에 대한 제명처리를 부결시켜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을 받고 있다.
이밖에 익산시의회 모 의원은 지난해 11월 관내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대뜸 50대 직원을 "어이"로 부르며 "왜 행사 일정을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냐"고 고압적으로 따져 묻자 직원이 "어이로 부르는 건 적절치 않다"고 항의하자 해당 시의원은 “자네, 나한테 눈 똑바로 뜨고 잘했다는 거냐”며 화를 내 공직사회의 거센 공분을 샀다. 해당 시의원은 지난 2021년에도 공무원에게 갑질과 폭언을 해 민주당에서 제명됐던 6선 의원이어서 더욱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익산시의원도 “면장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주민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다 반발을 샀다.
오죽하면 주민들이 나서 “민주당은 함량 미달 시의원을 제명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처럼 지방의원들의 도를 넘는 부적절한 처신이 만연하고 있지만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재발 방지 대책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공직사회 내부에서 흘러나온 지 오래다. 지난 2022년 제12대 전북자치도의회 출범 이후 물의를 일으킨 도의원은 최근 청탁 의혹이 제기된 의원들을 제외하고도 3명이 더 있다.
그런데 도의회는 식사 접대와 업체 청탁 혐의로 지난해 과태료 처분을 받은 도의원에 대해 윤리특별위원회가 내린 공개 경고가 전부였고, 당원 명부를 유출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도의원에 내려진 징계도 경고 뿐이었다. 이에 앞서 2022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도의원에 대한 처분은 출석 정지 30일에 그치는 등 전북자치도의회의 제 식구 감싸기와 솜방망이 처벌은 '으뜸 사례'로 꼽을 만하다.
민주당 '공천’, 사실상 '당선증'…일당 독식구도 악순환 되풀이, 청렴도 낮은 수준
그러니 일선 기초의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앞선 군산의회와 익산시의회 사례 외에도 지난 2023년 정읍시의회 모 의원은 전기자전거로 70대 남성을 친 뒤 현장을 떠나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아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도 징계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북자치도의회와 14개 시·군의회의 청렴도가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광역·기초의회 243곳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전북에서는 군산시의회가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받았고, 전북자치도의회와 완주군의회가 각각 4등급으로 하위 성적표를 받았다. 또 전주시의회, 정읍시의회, 김제시의회, 남원시의회, 익산시의회, 무주군의회, 부안군의회, 임실군의회는 각각 3등급으로 낮게 평가됐다.
민주당 일당 독식구도가 낳은 병폐라는 지적이 높다. 전북자치도의회 뿐 아니라 전주시의회는 35명 가운데 30명, 군산시의회는 23명 가운데 21명, 정읍시의회는 17명 가운데 12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같은 정당이다 보니 부정한 사업이나 인사, 심지어 개인 비리들도 눈감아 주거나 감싸는 경우가 다반사다. 민주당 공천이 사실상 '당선증'과 다름없는 지역에서 지방의회 일당 독식구도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악순환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란 지적이 비등하다. 이러한 악순환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방의회 폐지론과 무용론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황당한 기습 계엄으로 내란을 일으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제왕적 대통령 뿐만 아니라 토호 및 같은 당 일색으로 지방의회를 폼 잡는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며 비위와 일탈을 일삼는 지방의원들도 따지고 보면 제대로 선출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모든 투표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제대로 된 인물을 일꾼으로 뽑아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건강하고 국가가 부강해질 수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