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끝나가는데 ‘선거법 위반’ 재판 중이라니?

토요 시론

2025-01-25     박주현 기자

탄핵정국에서 상상도 못할 상식 이하의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생한다. 무엇보다 온 국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12·3 내란’ 이후 대한민국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을 거듭하며 급기야 후진국 대열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국민이 뽑은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과 측근 세력들에 의한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이란 점에서 전 세계가 놀라고 주목하고 있다.

그러고도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최고 법원인 헌법재판소에서조차 ‘12·3 내란’의 1·2인자인 대통령과 전 국방부 장관은 국민을 기만하고 조롱하며 헌법을 농락하고 있으니 그 처참한 모습 앞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탄핵 재판 심판정에서 내란을 일으킨 우두머리(수괴)와 총책임자는 “12·3 비상계엄은 실패한 계엄이 아니다. 불법이 아니다”며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헌법 유린과 국민 모독의 궤변을 늘어놓을 정도다. 책임 인정은 고사하고 사과 한마디조차 듣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

국민 기만하고 헌법 농락하는 대통령…유권자들 '선택 잘못' 책임도 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는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사진=대통령실 제공)

따지고 보면 유권자들이 선택을 잘못한 탓도 크다. 정파적이고 정략적인 정당들의 이해관계에 더해 이념과 지역주의에 함몰된 고질적인 정치 구도도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그릇된 판단과 선택을 한 유권자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볼 수 있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된 피해는 결국 유권자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 몫이란 소중한 교훈을 '12·3 내란 사태'에서 우리 모두 함께 체득했다.  

그런데 막상 선거만 닥치면 정치권에 휘둘려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혐오 정치 앞에서 선거를 포기하는 사례가 줄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늘 말하지만 결과는 항상 그렇지 못하다. '민주주의 꽃'을 제대로 피우게 하려면 유권자 다수의 참여와 올바른 선택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건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 원인도 바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역경을 감내하고 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으며 원상 회복에 필요한 막대한 유·무형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예측불허다. 선거야말로 국가의 존망이 좌우되는 소중한 제도라는 점에서 올바른 선택과 다수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각인시켜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북지역에서는 지난 3년 전 치렀던 지방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기소된 이후 지금까지 재판 중인 선거사범 단체장과 교육감의 사법부 판결이 느리게 진행돼 이제서야 당선 유·무효를 가늠 짓는 재판 결과들이 나오면서 파장과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욱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 

2022년 6월 1일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전북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들 간 최대 쟁점은 학생들 보기에 창피하고 민망한 ‘폭행'에 관한 이슈였다. ‘폭행을 했다’, ‘폭행을 안 했다’란 진실공방이 선거 기간 내내 벌어지더니 선거가 끝나고 교육감 임기가 절반을 넘어 이제 1년 6개월가량 남은 시점까지 진실공방은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현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임기 시작부터 내내 법정을 오가며 ‘폭행은 없었다’며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벌써 내년 상반기면 임기가 끝나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판국이다.

“폭행했다" vs "하지 않았다”...서거석 교육감 임기 내내 진실공방, 전북교육 ‘신뢰도 추락’ 책임은 누가?

서거석 전북특별자치도교육감.(사진=전북교육청 제공)

이 사건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 교육감이 전북대학교 총장 재직 시절 한 회식 자리에서 후배 교수를 폭행했다는 주장이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됐지만 당시 서 교육감은 ‘폭행하지 않았다’고 발언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기소돼 진실공방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2년 6개월 전인 2022년 선거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3년 8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서 교육감은 1년 5개월 만인 최근 열린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남은 교육감 임기 동안 지역 교육계 신뢰도에 악역향을 미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서 교육감의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과 검찰의 벌금 300만원 구형을 깨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면서 파란을 예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과거 폭행 관련 의혹에 대해 피고인은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교수들의 진술과 이후 행적으로 미뤄 그러한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여러 간접 사실 정황 등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이 먼저 동료 교수를 손으로 폭행했고, 이후 그 교수가 피고인을 때려 쌍방 폭행으로 볼 개연성이 높고 자연스럽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1심 판결 때와 달리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또한 재판부는 “선거 과정의 토론회 발언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지만 판례상 신중해야 한다”며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 중 ‘폭행 사실이 없다’는 내용은 허위 사실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허위 사실은 당선될 목적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선거 과정상 민의 왜곡을 초래했다”고 판시함으로써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교육계 내부에서 불안과 우려로 술렁이고 있다.

일부 시민·교원단체는 '이제라도 죄를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사법부의 느린 재판 과정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교육 현장에 미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 준 사건이다. 무엇보다 지역 교육계 수장이 폭력 시비에 휘말려 무려 2년 넘게 법정을 오가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모습에 많은 우려와 불신이 교육계 내부는 물론 지역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대법원 뒤늦은 ‘당선무효형’ 판결시 임기 내 추진한 사업·인사 등 어떻게?

법원 상징 마크.(자료사진)

선출직 공직자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그 직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서 교육감은 1심 무죄 판결과 달리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아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교육감 개인은 물론 전북 교육계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선 무효형이 결정된다면 파장과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교육감 재임 시 추진했던 각종 교육 정책과 사업들은 물론 인사와 예산 등 전 분야에 걸쳐 적지 않은 불신과 갈등, 그로 인한 또 다른 법적 다툼까지 우려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 그동안 진행돼 온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번 사건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 기간 중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에 이르기까지 2년 6개월가량 소요됐다.

기소 후 2년, 항소 후 1년 5개월이 지난 시점이어서 사법부가 느린 재판으로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을 스스로 어겼다.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에는 '선거범의 제1심 선고는 6개월 이내에 처리해야 하며, 제2심 및 제3심은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서 교육감 재판의 경우 기소 이후 재판 과정 내내 모두 강행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점에서 전북 교육계 수장의 선거관련 재판 지연으로 인해 지역 교육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대로 가면 대법원 판결이 임기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은 이유다. 반면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 대법원 판결이 나오게 되고 결과에 따라서 재선거도 연내에 치러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사례는 전북지역에서 교육감 선거 외에 지난 2022년 6·1 지방선거 기간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이학수 정읍시장의 대법원까지 이어진 법적 다툼에서도 나타났다.

이학수 정읍시장 법적 공방 장기화…대법원 파기환송심 진행 중

이학수 정읍시장.(사진=정읍시 제공)

이 시장은 무죄 취지로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면서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듯한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소송은 진행 중이다. 검찰은 최근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심리로 열린 이 시장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1·2심대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해 파기환송심 선고가 열리는 다음 달 19일로 다시 눈과 귀가 쏠리게 됐다.

이 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 투표일을 앞둔 5월 말 당시 경쟁 후보였던 무소속 김민영 후보가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허위 사실을 TV와 라디오 토론회, 보도자료 등을 통해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이 시장은 기소 후 무려 8개월 만에 1심 재판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어 이 시장은 1심 판결 이후 4개월 만인 2023년 11월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벌금 1,0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 판결 후 1년가까이 지나 대법원 상고심 판결 일정이 확정되고 판결이 이뤄졌다. 서 교육감과 마찬가지로 이 시장의 경우도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선거 잘못하고 후회해봐야 소용없어…’올바른 선택’ 중요

자료사진

공교롭게도 오랫동안 재판이 진행 중인 서 교육감과 이 시장 모두 선거 기간 중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게다가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법적 다툼도 같지만 결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서 교육감과 이 시장 모두 재판 지연이 빚어진 사이에 임기 반환점을 지나 후반기에 접어들어 어느덧 4년 임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단계여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유사한 혐의로 법적 다툼을 벌여 온 다른 단체장들의 경우 첫 재판 후 거의 1년 내에 마무리된 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바라보는 시선들이 심상치 않다. 이를 두고 항간에선 호화 변호인단에 의한 ‘재판 지연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법부의 느린 재판도 문제지만 지방선거 기간 중 발생한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상고심 심리가 빨리 이뤄져 무죄를 확정받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것이 유권자와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나라가 이토록 어지러운 시국에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는 '잘못된 선택의 선거를 다시는 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귀결되고 있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12·3 내란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재삼 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설 명절을 맞아 벌써 내년 지방선거 후보군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며 민심 잡기에 나섰다는 지역언론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를 바라본 유권자들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꼭 잊지 말자.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더 나아가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단체장, 교육감을 잘 뽑아야 그들 임기 내내 두 발 뻗고 편히 잠잘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야 국가와 지역이 평온해질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 모두 잘못된 선택의 선거를 치르고 난 후에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