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치’는 죽었는가?

토요 시론

2025-01-04     박주현 기자
 2022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윤석열.(자료사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선서한 자가 내란을 일으킨 우두머리(수괴)로 돌변해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에 맞서며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취임 후 2년 반 만에 '12·3 내란 사태'의 주범이 된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불발되기까지 3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내내 국민 앞에 생생히 중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 선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내란죄 피의자를 단죄하기 위한 국가 수사기관의 정당한 법 집행이 대통령이란 자와 내란 비호세력에 의해 무력화되고 법치가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한 많은 국민들은 이날 새해 벽두부터 깊은 충격과 불안 속에서 나라와 가족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법치주의' 기본 원칙 깡그리 '휴지조각'으로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백주대낮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런 반문도 해보게 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실제 상황이 진행 중이다. 내란세력이 버젓이 활개치는 것도 모자라 공권력을 유린하며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혼돈의 터널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참담함과 무기력감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더욱이  전 국민 앞에 이날 보여준 무기력한 공권력은 실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

만인 앞에 평등하고 엄중히 집행돼야 할 법과 공권력이 내란수괴와 비호세력들 앞에서 허망하게 유린되는 모습에 ‘나라의 행정은 의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에 따르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됨을 원칙으로 하는 게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다’는 법치주의 원칙이 깡그리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2025년에 목격하리라곤 일찌기 상상조차 못했는데 실제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MBC 1월 3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더구나 법치국가의 기본인 헌법을 누구보다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란 자가 내란과 군사반란을 일으켜 헌법을 위배하고 국가의 안위와 경제를 위기로 내몰고도 법원이 발부한 체포·수색영장을 거부하며 구중궁궐의 경호 인력 뒤에 숨어 저항하는 모습에 국격은 나락으로 곤두박질 쳤다. 더 이상 대통령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하고 추한 장면이 불과 한달 전 보여주었던 내란 장면을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게 했다. 새해를 맞아 '희망'을 되뇌던 국민들을 절망과 위기, 공포와 불안에 다시 몰아넣은 장본인이 다수의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란 자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란 소리를 들었던 대한민국에서, K-문화로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주목받았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다는 외신들도 충격에 휩싸인 채 연일 내란 중인 대한민국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전례 없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국내에서 벌이지고 있는 초유의 내란 사태와 그 여진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후진국에서나 빈발하던 최고 권력자들의 친위 쿠데타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주시하는 분위기다.

‘권력 분립이 채택되는 나라에서 정치가 법을 기초로 하며 사법권은 독립하여 행해진다’는 법치주의가 느닷없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의문을 갖고 바라보는 눈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급격한 퇴조를 국가의 최고 권력자에 의해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향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외신들의 우려와 비판이 갈수록 무겁고 아프게 들려온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히 다스리고 처단해야 하는 이유

JTBC 1월 3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그러나 현실을 더욱 냉철하게 바라보며 신속하고 엄중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바로 국민들 몫이다. 윤석열의 영장 집행 저지로 ‘12·3 내란’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전 국민이 똑똑히 함께 보았고 인지했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자가 적법한 수사를 거부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궐기를 촉구하며 나라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만 살면 된다는 초극단적 망상주의에 사로잡힌 모습을 더 이상 방관하거나 묵과해서는 안 된다.

내란을 일으킨 우두머리와 내란을 획책한 중요 가담자들은 물론 ‘윤석열 사병’을 자처하며 사법질서를 무너뜨리고 내란을 동조하는 것도 모자라 ‘제2의 내란’도 불사할 태세인 무리들을 무관용 원칙으로 엄히 다스리고 처단해야만 한다. '12·3 내란 사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은 엄동설한에도 길거리에 나와 ‘윤석열 체포·구속’, ‘내란세력 척결’, ‘내란당 해체’ 등을 목청껏 외치고 있지만 지금의 내란 사태는 내란 우두머리와 동조세력을 처단하지 않고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태세다.

윤석열과 내란 주범들 그리고 내란을 비호하며 내란범 처벌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단죄에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주주의 법치국가 운명이 달렸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게 바로 저들이다. 내란세력의 철저한 단죄를 위해서는 공권력 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를 저지른 내란수괴 혐의자의 체포에 실패한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무능력에 많은 국민은 깊은 실망과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내란 잔당·비호세력들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 생각하면 ‘끔찍’

SBS 1월 3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대통령 경호 인력이 200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영장 집행에 고작 100여명을 동원해 이미 세 차례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윤석열이 순순히 체포에 응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전 국민이 바라보는 앞에서 공조본은 3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대통령 관저에서 공권력을 무기력하게 집행하며 끝내 뒤돌아섰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내란 잔당과 비호세력들이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들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의 친위 쿠데타와 내란범이 왜 철저히 단죄돼야 하는지는 아픈 역사에서 이미 증명됐다. 그리 멀지 않은 현대사를 복기해보면 그 이유가 분명하다.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단할 수 있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키고도 친일세력을 단죄하지 못해 그 적폐의 뿌리가 오늘날까지 굳건히 이어오고 있다. 친일파들을 중용했던 이승만 정권에게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있으나마나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친일세력은 기득권 되물림으로 각 지역의 토호로 자리매김하며 정치·경제·언론·문화 등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주류를 참칭하며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게다가 12·12 쿠데타와 5·18 유혈 진압으로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는 대법원 확정판결(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이 나오고 불과 8개월 만에 모두 특별사면됐다.

그들에게 사면권을 베푼 대통령들은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와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줄곧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전두환·노태우 지지·기반 세력들은 지금도 대한민국 주류세력으로 여전히 활약하고 있으니 대대손손 활개치는 친일세력의 양태와 다를 바 없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만고의 '법정신' 지켜 나가려면?

법원 상징 마크(자료사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중 형기를 다 채운 사례는 하나도 없다. ‘국정농단' 사건 등의 혐의로 2017년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을 받은 뒤 선고 받은 22년 중 영어 기간은 형량의 5분의 1도 살지 않고 2021년 12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됐다. 

또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횡령하고 '삼성그룹'에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2018년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원이 확정됐지만 윤석열은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22년 12월 그를 특별사면해주었다. '12·3 내란 사태'도 이러한 사면세력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이번에야말로 철저히 친위 쿠데타세력을 단죄하지 않으면 악순환은 늘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만고의 '법정신'을 검찰총장 출신 법 전문가이자 현직 대통령이란 자가 무참히 짓뭉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이유는 충분하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