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광’, ‘레이디 맥베스’보다 소름 돋는 ‘망상’과 ‘광기’ 앞에서
토요 시론
꼭 1년 전 이맘 때다. 우리 가족은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영화를 감상하기로 하고 극장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아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이 선택한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본 ‘서울의 봄’이었다. 암울했던 1980년 전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그린 영화다. 을씨년스런 세밑 분위기 때문인지 이 영화를 막 개봉한 극장가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앞서 지난해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전두환(극중 전두광, 황정민 역)의 군 사조직인 ‘하나회’로 뭉친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주도한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로 개봉 3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꽤 높았다. 그런데 1,000만 이상의 관객이 봤다는 소식을 듣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하고 다시 군사독재시대를 불러온 45년 전인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발생한 군사반란을 똑똑히 기억하게 해 준 영화란 점 외에도 당시 반란을 일으킨 주범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떠안게 된 잠재적 리스크와 부담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현실이 자꾸만 오버랩됐다.
영화 ‘서울의 봄’이 던져 준 충격·교훈…1년 만에 현실로 찾아오다니
영화가 소환한 시점이 대한민국 운명이 바뀐 날이지만 암울한 소용돌이로 역사의 시계가 퇴보하기 시작한 날이 바로 1979년 12월 12일이란 점에서 더욱 만감이 교차했다. 부하에 의한 암살로 박정희 유신정권의 길고도 엄혹했던 독재정권이 종식되는가 싶었던 1979년 10월 26일. 그러나 민주주의의 새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잠시 뿐, 두 달도 안 된 그해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대 사조직을 총동원해 최전선의 전방 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이는 군사반란을 일으킨 바로 그날을 그린 영화였기에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다.
특히 권력에 눈 먼 전두환의 반란군이 최고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그들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극중 이태신, 정우성 역)을 비롯한 진압군 사이에 일촉즉발의 9시간 대치 상황을 그린 영화 장면을 스릴 넘치게 보았지만 이 장면이 불과 1년 만에 현실로 귀환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전쟁처럼 반란을 일으키고도 승리감에 도취돼 자축하며 기세등등하던 반란군들 모습과 대한민국 수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반란)이 펼쳐지던 당시 전 지역에 엄혹한 비상계엄이 내려진 상황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1년 후 대한민국 수도에서 유사하게 전개될 줄은 미처 몰랐다.
'광기의 반란'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깊숙이 심어준 영화였는데 불과 1년 만에 민주주의를 짓밟은 반란 행위가 현실에 등장하고 말았으니 많은 국민은 지금도 '꿈인가 생시인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군부대와 준비된 측근 조직 등을 동원해 대한민국 서울에서 45년 전과 같은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내란이 발생했으니 ‘서울의 봄’ 영화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한민국, 한 사람 때문에 엉망…'서울의 봄'을 왜 많이 봐줬는지 깨달았다”
무엇보다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의 상황을 매우 리얼하게 평가하며 이렇게 묘사했다.
“영화 개봉 후 1년이 지나고 정신 나간 대통령이 어처구니없는 친위 쿠데타를 벌이고 사람들이 뛰쳐나와 국회로 가고, 전국 각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뛰쳐나와 탄핵을 찬성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왜 이 영화(서울의 봄)를 많이 봐줬는지 깨달았다.”
김 감독은 최근 ‘제11회 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감독상을 받은 직후 “기적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줬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많이 볼까 의구심이 있었다”며 이 같이 언론에 밝혔다. 앞서 김 감독은 한 영화전문 매체와 인터뷰에서도 “대한민국은 피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힘겹게 지켜냈다”며 “한 사람 때문에 엉망이 된 대한민국 현 상황을 탄핵으로 정상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12월 3일 어처구니없는 계엄령 선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며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분노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현직 대통령의 느닷없고 황당무계한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가 얼마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더욱이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의 ‘하나회’가 아닌 충암고등학교 출신의 ‘충암파’가 핵심을 이룬 기습 내란으로 국민들을 공포와 불안에 가두었고 국격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했음에도 ‘내란 수괴’로 지목 받는 현직 대통령은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임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또 이를 방조하고 두둔하는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란이 아니라 소란”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탄핵을 반대하며 야당과 시민사회의 주장을 ‘거짓말’ 또는 ‘음모론’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12‧3 내란 사태' 이후 "광기에 빠진 망상 장애환자 윤석열을 즉각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취임 초부터 ‘이상 증세’ 드러내더니 “망상 장애와 편집증” 소리 듣는 이유는?
그럼에도 자신의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앞둔 시점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대국민 담화를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본 한 야당 대변인도 "망상 장애와 편집증이 심한 이의 헛소리"라고 비난했다. 헌정사상 세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국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데도 국가수사본부와 고위공직자범죄수서처 등의 압수수색에도 응하지 않고 계속되는 소송 및 탄핵서류조차 거부하며, 소환조사를 하려 해도 긴급체포가 두려운지 응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마지막까지 국민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망상 장애'란 소릴 들을 만하다. 의학적으로 '망상 장애(Delusional disorder)'는 현실 판단력에 장애가 생기는 정신병적 질환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망상은 실제 사실과 다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시정되지 않고, 교육 정도나 문화적인 환경에 걸맞지 않은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을 갖는 증세라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권리를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망상 장애 환자는 대부분 자신의 병에 대한 인식(병식)이 없기 때문에 환자를 의사에게 데려오는 것부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더욱 심각한 증세를 보일 것이 자명하고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종결되는 날까지, 그리고 사법기관들의 내란죄 관련 수사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어떤 돌발적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전 세계에 ‘불확실한 대한민국', '위기의 대한민국’이란 이미지를 당분간 떨칠 수 없게 됐다.
취임 초부터 국민과의 대화나 다름없는 기자회견과 언론 브리핑을 멀리하더니 ‘바이든-날리면’ 논란을 일으켜 애꿎은 방송사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소송전에 이어 전용기에 타지 못하도록 보복 차별을 가하는가 하면 해당 방송사 기자의 질문이 무례하다며 ‘도어 스테핑’을 중단할 때부터 문제가 심각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태원·오송 참사'에서 보여준 '무정부 재난'에 이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새만금 잼버리 실패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간 수해 현장에서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고 채 상병과 가족들, 해병대의 명예를 ‘불통’과 ‘격노’로 모욕하고 관련 특검법이 세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거부권을 행사할 때부터 망상 증세의 의심은 커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무차별 ‘입틀막’과 '거부권' 남용, 의대 정책 실패로 인한 의료대란 심화, 날로 증폭되는 부인 '김건희 비리 의혹'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태도, 예스맨 인사들의 중용, 명태균 게이트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이념과 고집 때문에 많은 갈등과 희생을 치렀고 또 치르고 있는 중이다.
더타임스 “대한민국 계엄령 사태, '대통령의 레이디 맥베스' 원인" 지목
하지만 망상에 사로잡힌 권력 도취의 끝은 ‘파멸’이란 사실은 오랜 역사에서 증명됐다. 최고 권력을 향한 망상에 광기가 더하면 더욱 깊숙한 파멸의 외길 뿐이란 사실도 지난 역사가 후세에 던져준 큰 교훈이다. 그런데 역사는 늘 반복된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의 더타임스는 최근의 우리나라 상황을 적나라하게 비평해 눈길을 끌었다. 바로 망상 장애에 비유되는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를 빗대어 ‘한국의 레이디 맥베스’라고 조롱해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됐다. 더타임스는 최근 "한국인들은 계엄령의 이유로 대통령의 '레이디 맥베스'를 지목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예리하게 해석했다.
더타임스는 김건희의 정치 관여 스타일을 “권모술수가 강한 마키아벨리식”이라고 평가하며 "그는 한국의 레이디 맥베스로 불려왔다"고 지적한 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점점 더 절박한 싸움을 해가자, 부인이 궁지에 몰린 대통령직에 기여한 부분에 분노한 관심이 집중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더타임스는 ‘12·3 계엄령 사태’가 김건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한국 내 시선을 소개하기도 했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부부,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 모습과 중첩"...참담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맥베스'의 주인공 맥베스의 부인으로서 강한 권력욕으로 남편을 권좌에 올려놓고 함께 몰락하는 인물이다. 부인의 강한 권력욕은 오로지 권좌를 지키기 위해 남편 맥베스를 더 무자비하게 ‘폭군의 길’을 걷게 한다는 점에서 더타임스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 흡사하게 바라본 것이다.
'절대권력’을 가진 자의 광기와 권력 남용은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이끌고, 민중의 거센 증오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해 준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망상과 광기 앞에 거세된 양심과 상식, 실종된 정의와 도덕의 결과를 보여준 비극적인 소설 주인공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에 비유되는 현실이라니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파멸의 길을 가면서도 양심도 반성도 없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부부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중첩되다니 참담하고 자괴감이 드는 것에 더해 걱정이 앞선다. 과연 국민의 편에 서는 따뜻하고 진솔한 대통령과 부인을 우리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