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가 만든 ‘괴물 윤석열’...'촛불 혁명'이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토요 시론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주도해 놀란 외신들은 당사자가 '내란 수괴(우두머리)'로 밝혀지고 있음에도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놀라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70년 넘게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군(軍)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지시하며 한밤에 예고 없이 계엄령을 선포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놀라는 모습이 역력하다.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가입국 중 개발원조위원회(DAC) 멤버 15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지난 2010년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으로 인정돼 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유일한 국가란 점에서 놀랐던 외신들도 최근 한국 대통령의 후진적 통치 행위를 보면서 다시 놀라며 의아해하고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권력 가진 자가 주변 짓밟고 제멋대로 행동”
국내에서도 전국 대학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라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꼽았다고 교수신문은 밝혔다.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만들어낸 비뚤어진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선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도량발호’로 추천한 교수는 교수신문과 인터뷰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곳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짓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날뛰는 모습을 뜻하는 고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해당 교수는 “권력자들은 위임 받은 권력을 사적인 이득과 편애하는 집단의 특혜를 위해 번번이 남용하고 악용한다”며 “그 최악의 사례가 12월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2위에 오른 후안무치(厚顔無恥) 또한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이 성어를 추천한 교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말을 교묘하게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르는 세태를 비판한다”고 밝혔다. 두 성어 모두 ‘12·3 내란 사태’와 무관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현직 대통령이 주도한 ‘12·3 내란’은 여러모로 국내외를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촛불 혁명의 결과가 이런 괴물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놀라고 있지만 앞으로 이런 괴물 대통령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개선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대통령제를 도입한 나라들 중 우리나라가 유독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을 많이 듣는 이유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헌법상 권한 셀 수 없을 정도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 헌법은 3권 분립에 입각해 입법권은 국회에(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제66조 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제101조)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은 입법과 사법까지 마음만 먹으면 통제하고 장악할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을 이번 기회에 다시 살펴보니 대략 눈에 띄는 큼지막한 권한만 해도 다음과 같이 무수하다.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제73조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ㆍ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ㆍ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
제74조 ①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제76조 ①대통령은 내우ㆍ외환ㆍ천재ㆍ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ㆍ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제77조 ①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③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제78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한다.
제79조 ①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ㆍ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제80조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
제81조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
제83조 대통령은 국무총리ㆍ국무위원ㆍ행정각부의 장 기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제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104조 ①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111조 ②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마음만 먹으면 입법·사법권까지 통제·장악
위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현재의 우리나라 헌법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법령 집행권, 국군 통수권, 긴급 명령권, 계엄 선포권, 공무원 임면권, 외교에 관한 대표 권한 외에 입법에 관한 권한으로 법률 제출과 거부권, 명령 제정권을 갖고 있으며 사법에 관한 권한으로는 대법원장 임명권과 사면·감형·복권 등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다.
특히 원래 국회에 귀속되어야 할 법률안 제출권이나 예산에 대한 실질적 결정권 등이 대통령에게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정부 정책을 수립·이행하는 국무위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부 견제가 힘들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또한 대통령 1인이 행정부 내 모든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특별사면권을 갖고 있어 독점적 사면 결정도 내릴 수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모든 결정을 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통제하는 구조이다. 총리제가 있으나 마나 하다는 지적이 팽배한 이유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윤석열은 군을 동원한 계엄령 선포 전인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자신의 부인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을 세 번째 행사하면서 취임 후 거부권 횟수가 모두 25회를 기록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불과 2년 반 만에 재임 12년 동안 45건의 거부권을 행사한 이승만 전 대통령 다음으로 많은 거부권 기록을 세우고도 황당하고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입법기관인 국회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강제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어서 더욱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들이 나왔지만 이 외에도 자신의 탄핵 투표를 코앞에 둔 윤석열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막가파식 횡포”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 이후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지난 7일 1차 탄핵 표결을 몇 시간 앞두고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방안은 당에 일임하겠다"고 말했으나 불과 5일 만에 마음이 바뀌어 12일 대국민담화에서는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며 조기 퇴진의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막가파식 권력 횡포’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더니 대통령 권한 중 인사권을 맘껏 휘두르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국회에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이날 국회에 '대법관 마용주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고 "대법관 임기 만료에 따라 다음 사람을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하고자 한다"며 "대법관으로서 더 없는 적임자라고 판단되므로,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라 임명동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헌법에 따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윤석열은 또 사퇴한 '내란의 주역'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후임으로 지명된 최병혁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후보직을 고사하자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을 다시 지명하려 했으나 다시 고사를 하면서 수모를 당했지만 막무가내다. 같은 편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조차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불법 계엄을 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지금 시점에 군 통수권을 행사해 국방부 장관 인사를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윤석열은 앞서 지난 8일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했고, 비상계엄에 반발해 사표를 낸 류혁 법무부 감찰관의 면직도 재가했다. 이 외에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21건과 시행령 21건 등 42건을 재가했다. 검사 출신 답게 철저히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이 때문에 한 진보매체 언론인은 “우리는 명칭은 대통령이지만 실은 ‘왕을 선거로 뽑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5년마다 정치적으로 죽이고 새로 뽑는 일을 반복한다”고 칼럼에 썼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에게 너무 막강한 권한을 준 때문”이라며 “이번 내란은 너무 일찍 실패가 확인돼 권력 상실 위기에 처한 윤석열이 대통령 가면을 벗어던지고 ‘폭군’의 얼굴을 드러낸 사례지만 이로써 우리는 성장잠재력의 추락, 양극화, 저출생 등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3년 가까운 시간을 또 잃어버렸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대통령 권한 제한·축소' 전제, 합리적 공론장 마련·논의 시급
겉으로는 ‘3권 분립’을 주장하면서도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를 용인하는 헌법 체제에서는 이 같은 한탄과 한숨은 늘 나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통령 권한을 줄이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는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진 듯하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정부 형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좁혀지지 못해 늘 좌초됐다. 그러나 핵심은 대통령 권한 제한과 축소가 전제되지 않으면 개헌은 무의미 하다는 게 중론이다.
개헌과 함께 중요한 것은 법에 따라 독립된 지위를 부여받아 중립적이고 공정한 감찰 의무를 지니는 감사원과 독립성·중립성·공정성이 최고 가치가 되어야 할 검찰이 대통령의 통치 도구로 전락하여 정치적 반대 세력 및 사회에 대한 통제와 억압에 활용돼서는 안 되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도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라는 구호로 무장한 이들 권력기관은 제대로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은 채 대통령 권한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법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통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헌법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지만 정당 정치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 여당 정치인들은 대통령 지시에 절대 복종하는 현행 정당 정치 구조에서는 제대로 된 정치도 입법부의 견제 기능과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
이 같은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윤석열과 같은 괴물 대통령을 얼마든지 또 만들어 낼 수 있다. 박근혜 탄핵에 이은 윤석열 탄핵을 위한 '촛불 혁명'이 당장 '괴물 대통령'들을 물리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각계 집단지성이 참여하는 합리적 공론장을 만들어 당장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정치권에만 맡겨둬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