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효자 '고창케이발사믹식초', '임실치즈'...전국에서 사람들 몰리게 하는 이유는?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62)

2024-11-10     유기상

소멸위기의 지방, 농촌의 변방인 고창의 대산면 소재 식초학교에, 전국 13개 시도에서 케이푸드의 선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11월 1일은 식초문화도시 고창 선포 5주년 기념일이자, 식초 전문인재양성을 위한 고창식초아카데미 6기 수료식이 있었다. 선생과 학생들이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참관한 내빈들도 가슴이 울컥하는 감동의 수료식을 모처럼 본다. 1920년대 전국 13도에서 민족사학 고창고보로 인재가 모였던 꿈같은 일을, 고창 발효아카데미가 기적처럼 재현하는 놀라운 광경이다.

발효식품 선구자들 고창으로...왜? 

군민이 울력하여 세운 최초의 민족사학 '북오산 남고창'이라 불린 고창고보의1923년 제1회 졸업생 7명의 시도분포를 보면, 전북 2명, 평북, 평남, 서울, 경기, 경북 각 1명이었고, 제2회 졸업생 중에는 서울 중동고보, 경기고보, 전주고보, 전주농림에서 고창으로 전학온 학생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13도에서 벽촌인 고창까지 학생들이 찾아온 현상을, 고창고보 교가는 "이 밭에서 자라난 보리 13도 근역에 두루 퍼지고"라고 노래했다. 그 당시 함경도에서 고창까지 왕래하기가 큰 고행이었을 시절에, 일제의 탄압하에서도 꿋꿋하게 민족교육을 하던 송태회, 정인승, 이병학 등 당대최고의 스승을 보고 찾아온 것이다. 고창이 학생교육의 한반도 수도이던 일제강점기 그 광경을, 백년만에 고창발효아카데미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뛸듯이 기쁜 일이다.

2019년 고창군민 30명이 수료한 식초아카데미의 입소문이 전국에 퍼지면서, 금년 6기에는 120명이 입교했고, 전과정을 마친 88명이 수료했다. 수료생 88명 중 전북은 24%인 21명이고, 여타 76%는 제주, 강원,서울, 경기 등12개시도에서 참여한 것이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경기도 파주에서 대중교통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승용차로, 1년동안 고창의 면단위 소재 식초학교를 통학하며 개근했다는 소감발표를 들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무엇이 전국 13도의 발효식품 선구자들을 고창으로 이끌고 있을까? 진정성과 열정을 가진 식초의 신 대산 정일윤 회장과 전통주 연구의 대가인 우리술학교 이상훈 교장 등 기꺼이 자신의 모든 재능을 나눠주는 최고수준급 선생님들 덕분이다. 그나마 2년 전부터는 고창군이 행재정적 지원을 단절하여, 수강생이 부담하는 실습재료비 이외의 학사운영비용을 발사믹식초협회 순수한 회비와 강사들의 재능기부로만 어렵게 운영하는 학교에서 일어난 기적이다. 반면에 서울 한복판에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일부 발효학교는 학생모집도 어렵다는 데도 말이다.

세계 식초 문화의 도전

지역소멸대비 시책은 마땅히 지역특산물을 특화하여 고부가가치로 만들고, 지속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 집중해야만 성과가 날 것 아닌가? 불모지에서 창조한 지역특화 자원인 치즈산업을 지속하여, 지역소득사업과 관광축제로도 대성공한 임실치즈축제가 대표사례다. 식초문화산업의 한반도수도, 아시아수도, 세계수도를 목표로 1등을 세 번 하자는 뜻으로 1이 세번 겹치는 날 11월 1일을 선포일로 택했다. 케이푸드의 핵심강점인 5대 발효식품인 식초, 김치, 장류, 전통주, 젓갈 중 유일하게 대표 도시가 없고 세계시장 진입이 쉬운 식초분야를 고창군이 선점하고, 오래된 미래산업으로 육성하여 농촌을 살리는 전략으로 2019년 11월1일 식초문화도시 고창 선포를 한 것이다.

전통의 고창특산물 복분자, 여성과 젊은층 취향을 겨냥한 발사믹식초를 융복합한 복분자 발사믹식초 특화전략은 적중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창군과 협회는 식초 식문화 보급사업, 발효문화아카데미, 식초제조농가 육성, 고창식초 홍보대사 위촉, 기초연구사업 등 다양한 세부사업을 추진한 성과가 괄목할만 하다. 고창군 식초산업 육성지원 조례제정, 정부의 복분자·식초산업 특구로 지정하여 지원제도를 마련했다. 고창군에 본부를 둔 한국발사믹식초협회는, 복분자 등 향토 농특산물을 활용한 고품질 자연발효식초와 발사믹식초 제조기술의 개발·연구·보급, 홍보마케팅 지원사업, 농가형 식초제조업체에 대한 컨설팅과 연구세미나, 해외 주요 식초도시와의 연대 추진 등의 활동을 해왔다. 식초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람키우기, 아카데미운영, 산업기반 구축 등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땅에서는 전국에서 발효전문가, 식초일꾼들이 고창으로 모여든다. 하늘에는 케이팝에 이어 케이푸드의 순풍이 불어온다. 호사다마라고 전임군수가 시작한 사업이라 싹을 잘라야 한다는 군정에서 지원을 끊고, 식초를 식초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반식초행정의 역풍도 분다. 역풍이 두려워 날지 못하는 새는 이미 새가 아니다.

'임실치즈'의 선구자 지정환 신부와 지역경제 효과

지난 10월 3일 임실에서 열린 제10주년 임실치즈축제를 참관하고 공부삼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전국에서 58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치즈와 농특산품 판매, 관광수익 등 수십 억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로 대성공한 농촌축제의 모습을 확인했다. 해마다 지역의 축제인력을 양성하고, 장미정원 등 1회용 꽃구입이 아닌 영구인프라를 축적해나가는 지속가능하며 바람직한 관광축제로 평가된다. 지정환 신부가 뿌린 임실치즈의 브랜드 씨앗을 잘 키워낸 무소속 3선의 지방행정전문가 심민 군수가 농가들과 손잡고 울력하며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임실치즈로 마침내 10차산업 기반을 구축한 성과다. 같은 시기에 치러진 전북도내 10여 개 축제 가운데서도 전북대표축제로 우뚝하게 평가된 임실치즈축제에는 지정환이라는 사람, 치즈산업 선구자의 헌신이 있었다.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벨기에 출신 천주교신부 지정환(1931~2019)은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돕기 위해, 산양의 젖으로 치즈를 만드는 도전을 했다. 1967년 벨기에 부모로부터 받은 2천달러를 종자돈으로 한국 최초의 치즈 공장을 임실에 세운다. 본래 치즈전문가가 아닌 그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3년이 지나도 별무성과였다. 지정환은 동료신자들과 치즈 본산지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견학하면서 치즈의 핵심기술을 다시 배운 덕분에, 1969년 한국최초의 임실치즈 생산에 성공하게 된다. 지정환의 마케팅 활동으로 임실치즈는 서울의 특급 호텔, 외국인 전용 상점에 납품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임실치즈라는 고급 브랜드와 유통망을 확립했다. 성공을 확인한 후 임실 치즈 공장을 주민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지정환은 치즈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목축농민들 조직인 임실치즈협동조합에 양도한 후 웃으면서 손을 뗀다. 오늘의 임실치즈의 성공에는 사심없이, 농민과 지역을 살리고자 지혜와 열정을 쏟은 선구자 지정환 신부의 헌신과 도전이 있었다. 만약에 심민 군수가 전임군수 때 하던 짓이라고 임실치즈 브랜드를 버리고, 선거공신들이 하라는대로 신사업을 새로 벌였다면 오늘의 임실치즈는 결코 없었으리라.

임실에 한국최초의 치즈 씨앗을 뿌린 사람 지정환 신부가 있다면, 고창에는 한국최초로 케이발사믹식초 산업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람 대산 정일윤(1956년생) 선생이 있다. 한국발사믹식초협회 본부가 있는 대산면 해룡리 성인당 출신의 그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굴지의 대기업 연구소의 우수 연구원으로 날렸다. 다시 사업가로서 도전한 패션분야 기업대표로서도 성공을 거두고는, 여생을 재능기부로 나누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자의로 현업에서 용퇴하였다.

고창 K(케이)발사믹식초 선구자 정일윤 선생

은퇴 후 사회 공헌을 위해 지혜 나눔을 실천하는 '위더스위즈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건강과 농촌살리기를 위해, 발효식초 산업을 육성하여 케이푸드의 선봉장인 케이발사믹식초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여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정일윤 회장과 가족들이 자기 돈 써가면서 헌신한 결과, 기적같은 일들이 생겼다. 일약 고창이 발효문화의 한반도수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고창군 관내에는 민간 개인 주도의 고창발효연구회, 식초사업자 중심의 고창발사믹식초협회가 생겨나고, 사업체와 매출이 선포시보다 10배이상 급증하고 있다. 7대째 가업을 잇는 고창옹기의 초항아리에 발효한 식초가 서양의 오크통 발효방식보다 산도가 50%이상 높은 것을 실증하자, 초항아리 구매가 늘어 고창옹기도 되살아났다.

항아리발효 식초를 활용한 세계최초의 발사믹 구슬식초, 고체식초 등 특허기술을 회원들에게 이전하고, 창업펀딩을 지원하여 2022년 식품펀딩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에도 발사믹활용 브런치소스를 개발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시켜, 한국형발사믹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발사믹식초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극동대, 순천향대병원 등과 협업하여, 케이발사믹의 표준과 품질인증기준을 정립하였다. 정회원사 48개사 83명, 연구회원 46명, 단체회원 3단체, 특별회원7명, 일반회원 420명, 총556명으로, 규모나 활동력 양면에서 현재는 한국최고의 발효식초 조직으로 키워냈다. 협회창립 4주년 기념사에서 정일윤 회장은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한 고급유통망에서 다양한 입점 제안을 받고 있다. 전통 옹기발효, 자연숙성발효 등 한국형 발사믹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식생활에 응용가능한 다양한 레시피들을 개발 보급해 간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한다.

구만리 세계 식품시장의 하늘길 비상하길

이웃과 지역을 꼭 살리고픈 한 사람의 간절한 염원과 열정과 헌신적인 섬김이 가져온, 벽지 농촌이 부활하는 기적의 현장이다. 요즈음 군정에서 그가 따돌림당한다는 소문을 들은 발빠른 시장군수와 국회의원들이, 전폭적인 재정행정 지원을 약속하며 그를 모셔가기 위해 애쓴다는 소문이다. 케이발사믹의 신화를 쓰는 발사믹식초협회의 당호는, 그의 어머니의 아호라는 성인당(誠忍堂)이다. 정성을 다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가르침은 발효학교의 교훈으로 꼬옥 어울린다. 어머니는 이미 아셨을까? 아들이 케이발사믹식초 본부를 고향집 성인당에 두리라는 것을 ᆢ

장자의 붕정만리 이야기처럼, 사심없이 큰 꿈과 비전을 가진 붕새가 큰 바람을 타고 나는데, 하찮은 참새들의 비웃음과 역풍 따위가 어찌 장애물이 될 수 있으랴? 정일윤과 함께 손잡고 구만리 세계 식품시장의 하늘길을 비상하는 케이발사믹식초 선구자들의 붕정만리 비행을 꼬옥 보고싶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