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 '육사'유치 또 좌초...'관·언유착' 망신

뉴스 분석

2020-08-26     박주현 기자

2019년 벽두부터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를 유치한다며 호언장담하던 장수군. 그러나 불과 5개월 만에 유치에 실패했다.

그러더니 올 들어서는 지난 8월 초 뜬금없이 육군사관학교를 고지대인 장수군에 유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불과 보름여 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장수군정(郡政)'이란 비판과 함께 따가운 눈총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장수군의 ‘안 되면 말고 식’의 이벤트 행정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애드벌룬을 띄운 지역 언론들이 함께 있었다.

유치가 무산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형국의 무비판적 홍보기사들을 쏟아낸 지역 언론들이 더욱 비난을 사고 있다.

장수군, '아니면 말고 식' 유치 홍보에 놀아난 언론들

SBS 8월 25일 보도(화면 캡쳐)

장수군 주민들은 물론 전북도민들 전체에게 큰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막대한 행정력과 유치 준비를 위한 예산낭비까지 포함하면 손실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정치적 쇼와 다름없는 잇따른 행정 해프닝이 해도 너무 한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장수군은 최근 육군사관학교 유치에 본격 나선다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전북지역 언론사들은 물론 전국 언론사들이 관심을 갖고 보도했다.

그러나 충남 논산시 등 다른 지자체들 간 유치전이 가열되자 25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서 ‘육사 이전은 계획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장수군은 지난해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전에 뛰어들어 실패한데 이어 두 번째 굵직한 사업의 유치전에서 실패를 맛보게 됐다.

그러나 자세히 내막을 들여다보면 주민들을 실망시키고 심지어 기만한 결과를 가져다 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 유치홍보에 열을 올리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흐지부지 되고 만데 대한 책임도 분명치 않아 비난을 살만 하다.

도민들 사이에서는 “애당초 유치도 하지 못할 처지임에도 무리수를 두며 유치를 할 것처럼 호도하는 행태는 사기에 가깝다”며 “자치단체장의 능력을 떠나 도덕성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후 상황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전북일보가 ‘육군사관학교' 유치 뛰어든 장수군’이란 기사를 1면에 내보내 최초로 관심을 끌게 했던 시기는 지난 8월 4일이다.

전북일보, '장수군 육사 유치' 홍보 첨병 

전북일보 8월 5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장수군이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정책과 맞물려 이전 논의가 본격화 된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기사는 “육사 이전 논의는 국방부와 국토교통부가 지난달(7월) 28일 학교인근 태릉골프장 택지개발 여부를 합의한 이후부터 가시화됐고, 곧바로 전국 자치단체들의 유치활동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고 리드에서 썼다.

이어 기사는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장수 외에도 강원 화천군, 경북 상주시, 충남 논산시, 경기 동두천시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이처럼 과거 기피시설이던 군 관련 시설 유치에 지자체들이 혈안이 된 것은 막대한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이 기사만 보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였다. 이미 충남 논산을 비롯한 다른 군부대 인접 지역들이 눈독을 들이는 유치 사업이기 때문에 뒤늦게 숟가락을 얹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장수군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대대적인 홍보전을 전개했다.

새전북신문 8월 6일 1면

전북일보를 필두로 전북지역 일간지들을 비롯한 방송사와 통신사, 인터넷 언론들이 일제히 장수군의 육사 유치와 관련해 장수군수 인터뷰, 심지어 전북도의 반응까지 보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역 언론들은 “육사의 경우 1,200명 이상의 생도를 비롯, 교수 및 지원병력 2,800명이 상주하고 있어 유치가 성사될 경우 사실상 4,000명의 인구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육사가 웬만한 대형공공기관 이상의 경제유발효과를 갖는다”고 장수군을 대변했다.

장수군 인구는 올 6월 기준 2만 2,240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수군은 “육사 유치에 성공할 경우 4,000여명의 인구증가와 더불어 그 효과가 전북 동부지역 전체에 미칠 것”이라며 홍보전에 불씨를 더욱 지폈다.

불과 보름여 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 

장수군이 육사 이전의 최적지라며 홍보한 결과는 순식간에 효과를 가져왔다.

뒤늦게 육사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로 드넓은 훈련장을 갖출 수 있어 육사 이전 부지로 가장 적합하다”주장을 펼친 장영수 장수군수는 특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세례를 받았다.

전민일보 8웛 6일 11면

1년 전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가 패배한 사례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장수군수는 “넓은 훈련장을 확보할 수 있어 산악 훈련, 보안 훈련을 통한 전투력 향상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군사시설의 최적지”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불과 보름여 만인 25일 사단은 나고 말았다.

정세균 총리가 8·4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해 언급된 ‘육군사관학교 이전설’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정 총리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미래통합당 임이자 의원이 ‘태릉골프장 부지 개발과 관련해 육사가 이전한다는 소문에 각 지자체가 (유치를 위해) 들썩이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같이 답했다.

정 총리는 “이미 육사 이전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고, 현재도 다른 검토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난번 예결위 회의장에서 육사 이전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며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화천군에 이어 원주시, 홍천군이 유치전에 합류해 과열 양상을 빚고 있는 강원도는 물론 경기도 동두천시, 충남 논산·계룡시, 경북 상주시는 물론 장수군 역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강원도민일보 8월 26일 홈페이지 초기화면

타 지역들은 그렇다 치고 전북에서 장수군이 뒤늦은 육사 유치전에 가세하자 지역 언론들과 전라북도가 보여준 행태는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게 됐다.

누구보다 전북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언론을 참칭해 온 전북일보는 지난 8월 4일 1면 보도에 이어 다음 날 2면 속보 기사로 “전북도가 육군사관학교 유치전에 나선 장수군을 적극 지원하고 돕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는 “전북도가 장수군의 육사 유치 전략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 역시 이처럼 육사가 지방으로 이전할 당위성이 높아진 데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도정이라는 따가운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지역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전북일보의 보도가 나가자 다른 언론들이 일제히 함께 썼다. 거의 유치가 확정된 것처럼 보도한 언론들도 눈에 띄었다.

장수군 육사 유치에 흥분하던 전북언론들, '침묵' 또는 "근거 없는 소문"

전주MBC 8월 4일 보도(화면 캡쳐)

다음은 8월 4일부터 최근까지 보도된 전북지역 주요 언론사들이 장수군 육사 유치전에 관해 보도한 기사 제목들이다. 기사 제목의 흐름만 봐도 행정발 이벤트 홍보가 언론의 지면과 영상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기만했는지 알 수 있다.

전북일보

육군사관학교' 유치 뛰어든 장수군 -8월 4일 1면

전북도, 육사 유치 장수군과 손 맞잡는다 -8월 5일 2면

정총리 “육사 이전 검토 안해…근거없는 소문” -8월 26일 2면

정부“전혀 사실 아니다”일축 8월 26일 2면

전북도민일보

장수군 "육군사관학교 유치 추진위 구성" -8월 6일 10면

전라일보 

장수군, 육군사관학교 유치 팔 걷었다 -8월 6일 11면

새전북신문

장수군, 지리적 강점 살려 육군사관학교 유치에 팔 걷어 -8월 6일 1면

전북중앙신문

"장수군 군사시설 전략지, 육사 이전 최적화" -8월 6일 11면

전민일보

“장수군, 육관사관학교 이전 최적지” -8월 6일 11면

전주MBC

육사 이전 지자체 눈독... 장수군도 도전장 -8월 4일

JTV

장수군 "육사 유치"...정부 "이전 검토 안해" -8월 5일

육사에 교도소까지 '너도나도 유치전' -8월 24일

장수군 육사 유치 홍보전에 가세해 흥분했던 지역 언론들, 특히 신문들은 정세균 총리의 발표 이후 '침묵' 또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며 낮은 자세로 움추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장수군은 지난해에도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전에 나섰다가 실패했지만 언론의 보도 흐름을 복기해 보면 이번 육사 유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장수군,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한다더니...

전북일보 2019년 3월 28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전북일보와 전북도민일보 등 지역언론사들은 지난해 5월 16일 인터넷 판에 이런 기사를 마무리편으로 올렸다.

‘장수군,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 실패’

‘축구종합센터 1순위 후보지 천안시 선정… 장수군 ‘고배’

단순하게 그 기사만을 읽는 사람이라면 ‘장수군이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에 실패했다’는 팩트만을 전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수군이 축구종합센터 유치를 위해 1월부터 얼마나 많은 홍보를 했는지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복기해보면 알 수 있다. 언론뿐만 아니라 지역 정치권이 얼마나 많은 협조를 했는지도 당시 기사들에서 묻어난다.

전북일보 당시 보도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북일보(2019년 1월~5월)

장수군, 대한민국 축구 종합센터 유치 나서 -1월 14일

장수군,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유치 총력 -1월 28일

군산·장수,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후보지 1차 심사통과 -2월 28일

장수군, 축구종합센터 유치 범군민 결의대회 개최 -3월 13일

군산시, 축구종합센터 유치 범시민 결의대회 개최 -3월 14일

민주당 전북도당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장수군 선정 강력 지원” -3월 25일

축구종합센터 장수군 유치 힘 모아야 -3월 26일

전북지역 시·군의회 의장들 “축구종합센터, 장수군이 최적” -3월 28일

축구종합센터 1순위 후보지 천안시 선정… 장수군 ‘고배 -5월 17일

투데이안 2019년 6월 29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축구종합센터 유치 상황을 살펴보면 도내에서는 장수군에 이어 군산시까지 유치에 합류해 전국 24개 자치단체들이 벌이는 유치전에서 유독 장수군의 언론 홍보가 돋보인 이유는 뭘까?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부지선정 공모에 제안서를 낸 전국의 24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군산시와 장수군 등 전국 12개 지자체를 발표했었다.

이후 1차 심사에서 통과한 12개 지자체는 군산시와 장수군을 비롯해 세종특별자치시, 울산광역시, 경기 김포시, 이천시, 용인시, 여주시, 충남 천안시, 경북 경주시, 예천군, 상주시 등이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부지 우선협상 대상으로 1순위 충남 천안시, 2순위 경북 상주시, 3순위 경북 경주시로 최종 결정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토지 여건과 지자체의 행정 지원 등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도내에서는 한 군데도 해당이 되지 않았다. 특히 전북지역 정치권과 언론사들이 연초부터 장수군의 유치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물거품이 되고만 데 대한 실망이 컸다.

"즉흥적, 근시안적 군정" 비판, 관-언 유착이 빚어 낸 참사

누구보다 장수지역 주민들은 “군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의욕을 가지고 축구종합센터 유치를 추진했는데 결과적으로 좌절돼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탄식했다.

그런데 장수군수는 또 다시 육사 유치를 끄집어냈다가 망신을 당했다. 

장수군수의 즉흥적이고 근시안적 군정이라는 따가운 비판과 더불어 지역 언론들의 무비판적인 행정 홍보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주민들의 알권리를 빙자한 '관ㆍ언 유착'이 빚어 낸 망신이자 참사로 볼 수 있다. 지역언론의 반성과 성찰이 다시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