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에 이런 교수들만 있다면...
토요 시론
“이미 사회적 기득권으로 많은 혜택을 본 사람이 일정 이상 시간이 지나면 받게 되는 마치 개근상 같은 훈·포장이 무슨 의미가..."
30년 넘게 대학에서 근무하고 정년을 앞둔 한 지역의 국립대학교 교수가 훈장을 반납해 잔잔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해당 교수는 “훈·포장 증서에 쓰일 수여자의 이름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고 해 더욱 주목을 받는다. 정년을 맞아 훈·포장을 주는 대로 덥석 받는 여느 교수들과 다르다. 해당 교수는 또 “훈·포장의 수여자가 왜 대한민국 또는 직책상의 대통령이 아니고 대통령 윤석열이 되어야 하는가이다”며 “윤석열은 선출된 5년짜리 정무직 공무원이다”며 “나는 만약에 훈·포장을 받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의 명의로 받고 싶지,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고 거부 사유를 분명히 밝혔다.
그 뿐만 아니라 “노벨 문학상 수상을 제대로 축하하지도 못하는 분위기 조장은 물론, 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으로 매도하고, 급기야 유해도서로 지정하는 무식한 정권이다”고 강조한 이 교수는 “일개 법무부 공무원인 검사들이 사법기관을 참칭하며 공포정치의 선봉대로 전락한 검찰 공화국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의 이름이 찍힌 훈장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라며 “나라를 양극단으로 나누어 진영 간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어 놓고, 민중의 삶은 외면한 채 자신의 가족과 일부 지지층만 챙기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포장이 우리 집 거실에 놓인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친다”고 강조했다.
'존경-노욕'...퇴임 교수들 '두 모습'
이밖에 해당 교수는 “매 주말 용산과 광화문 그만 찾게 하고, 지지율 20%면 창피한 줄 알고 스스로 정리하라”고 충고한 뒤 “잘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 그만 내려와서 길지 않은 가을날에 여사님 손잡고 단풍이라도 즐기길 권한다”며 “훈장 안 받는 한풀이라고 해도 좋고, 용기 없는 책상물림 선생의 소심한 저항이라고 해도 좋다.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라고 일침을 가했다. 퇴임을 앞두고 33년 이상 경력을 인정받아 근정훈장 수여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처럼 분명한 훈장 거부 사유를 밝힌 노교수의 용기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특히 사회를 바라보는 넓은 혜안(慧眼)에 경의를 표한다는 메시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확산됐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정년 퇴임한 또 다른 지역의 국립대학교 교수는 ‘명예’와 ‘석좌’란 직함을 새로 달고 30여년 근무해 온 대학은 물론 또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란한 사진과 자랑의 글을 남겼다. 정년을 맞는 퇴임식에서 훈·포장을 목에 걸고 수많은 제자들과 동문, 가족·친구 등의 축하와 격려 속에 명예로운 정년을 하고도 계속 강단을 지키는 교수들이 다반사인데 그 무리에 속했음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교수의 길을 걷기 위해 나이 먹은 줄도 모르고 머리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보따리 강사’ 신세를 면치 못하는 후배와 제자들이 태반이건만 30년이 넘도록 강단을 굳건히 지키고도 모자라 퇴임 후 다시 강단에 서겠다는 노욕(老慾) 앞에 명예는 고스란히 노추(老醜)로 변한다는 사실을 정녕 자신만 모르는 듯하다. 본인은 학문적 열정이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지만 후배들과 신진 연구자들은 그동안 그들에게 밀려 한 뼘 설 강단도 없어 상아탑(象牙塔) 주변을 배회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는 노욕이 추하기 그지없다. 지식인의 부패와 타락은 그 사회와 국가의 패앙의 지름길이라 했다.
함량 미달 폴리페서들, 허위 의식·일탈·위선 당연한 일상처럼 '반복'
시류를 잘 타서 권력·돈·명예까지 꿰차는 자들이 출세자가 되고 자신의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이를 추종하는 아류가 줄을 서는 것은 교수사회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는 책 제목의 저자는 “권력자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해악”이라고 주장했다. 함량 미달의 폴리페서(polifessor)의 허위 의식과 일탈·위선을 당연한 일상처럼 반복하는 사례는 상아탑 내부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필자가 20여년 경험한 바로는 상아탑에서 교수들은 갑질 중에서도 최상위 갑질을 하는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자에게 논문을 쓰게 하거나 심지어 성추행을 일삼는 교수, 조교에게 온갖 사적인 일을 강요하는 교수, 교수가 되고자 하는 제자와 강사들의 약점을 이용해 악행을 밥 먹듯이 자행하는 교수, 보직을 맡아 직원들을 마치 군대 조직의 부하 다루듯 지휘하고 막말하는 교수 등을 수없이 보았지만 그들이 상아탑 내 갑의 위치에서 군림하는 데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상아탑 내부에서는 최소한 이러한 행태가 관행처럼 여겨지며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갑질을 권위와 권력으로 여기는 교수들의 패악은 대를 이어, 시대를 거스르며 통용되고 있으니 그들이 존경받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노욕과 노추에 더욱 빠지는 경우까지 흔히 볼 수 있다. 젊어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 먹고 늙어가면서 과거 자신의 행적을 짓밟거나 역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선 정치인이나 관료, 언론인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정년을 하고 모범적인 사회 생활을 하며 아껴 수집해온 각종 자료를 아낌없이 대학에 기증하고 강단 대신 제자들과 값 싼 술집이나 카페 등에서 만나 진로를 함께 고민하며 대화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권력과 기득권의 유혹에서 헤어나질 못한 채 이제까지의 삶의 길을 한치도 바꾸지 않으려는 퇴임 교수들이 우리 주변에는 더 많다. 부패하거나 타락한 권세가들의 벼슬을 '닭 벼슬 보듯 하라'고 제자들에게 늘 훈계해 놓고 정작 자신은 벼슬을 귀히 여기고 탐하며 '한번 붙든 벼슬은 절대 놓지 않고 대물림'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더욱이 학내 권력은 물론 외부 정치권력에 눈먼 폴리페서들은 상아탑을 멍들게 하는 가장 큰 주범들로 손색없다.
보직 선호하는 교수들 '과욕', 대학 이미지 먹칠...본업 ‘소홀’
대부분 권력에 눈 먼 교수들은 재임 기간 내내 보직을 선호한다. 학내 보직에 중독되면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본래의 역할 대신에 대학의 모든 일에 관여하며 달콤한 권력의 맛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보직 위의 또 다른 권력을 향해 질주하고 충성하며 아부하게 되고 결국 지나친 과욕이 사달을 불러 온 경우가 수도 없다. 이런 부류들이 전체 대학 이미지를 먹칠하게 하는 사례를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위세를 부리는 권력에 중독 된 교수들이 제자들과 함께 올바른 연구를 수행하며 후학들의 진로를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자신과 주변의 자리 보존에 집중하며 치졸한 갑질 등을 일삼는다. 이 때문에 상아탑 내부에서는 총장과 보직자들에 의해서 발생된 해악이 시정이 안 되고 결정된 사항을 고수하기 일쑤다. 그래서 직선제 총장 선출제도를 도입했지만 대학 운영의 민주화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한 국립대 총장 선거에 나섰던 보직교수가 전임 총장 등과 벌인 불미스런 일로 인해 수사와 재판을 받거나 영어의 몸이 된 사례가 최근 전북지역에서 발생했지만 당사자들과 가담자들은 여전히 높은 지위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전북지역 국립대에선 총장이 국가지원 사업비 수십억원을 편취하고 설계공사 수주 등 각종 이권 제공의 대가로 건설업체에 수억원 상당의 뇌물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돼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현직 국립대 총장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났지만 결국은 기소돼 재판을 앞둔 처지여서 대학 이미지가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학내 보직의 달콤한 맛을 보게 되면 교수의 본업인 교육과 연구 및 전공 분야의 연찬(硏鑽)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교훈을 교수사회가 너무 잘 알면서도 이를 어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훈장 받는 사람도 자격 있어야 하지만,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 있어야”
교수직을 갖고 정치에 뛰어들어 또 다른 자리의 임기를 채우고 돌아오는 교수들에 비하면 덜하지만 학내에서 인맥을 능력이라고 여기며 보직을 호시탐탐 노리는 교수들이 넘쳐나는 대학사회이기에 더 이상 존경 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런 차제에 올 연말 퇴임을 앞둔 교수가 퇴임식에서 수여되는 대통령 훈장을 거부해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으니 모든 교수사회에 경종을 울려주는 사례로 널리 공유할 만하다.
특히 교수들 퇴임식에서 당연히 받는 것으로 인식돼 왔던 대통령 훈장과 관련 해당 교수는 “훈장을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그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거부 이유를 밝혀 더욱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지성의 요람이자 학문의 전당으로 통용돼 온 상아탑이 오늘날 취업의 요람이자 직업의 전당으로 추락하고 만 지가 오래다. 고생 속에서도 꾸준히 학문을 연구하여 보람을 이룬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과는 거리가 먼 상아탑으로 변모한 지도 오래다.
이제는 ‘철밥통’으로 불리던 대학이 더 이상 아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 닫는다'는 말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부디 상아탑 내의 조그마한 권력에 취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거나 평생 철밥통을 지키며 부와 권력을 독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박주현 기자